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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6월호 [기획] 노출 메시지를 담다
▣기획
노출 메시지를 담다
김레이나 ․ 글쟁이
중학교 때, 가슴이 갓 봉곳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아직 브래지어 다운 브래지어를 착용기엔 이른 때였다. 아빠 동창회 체육대회를 따라갔다가 길을 잃었는데 아빠의 선배라는 분이 나를 발견하고는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안아보시겠다며 나를 번쩍 들어 올리셨다. 안아올리면서 가슴과 손이 맞닿게 됐고, 그 사람은 그걸 노린건지 안아 올리자마자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꽥” 지르며 발버둥 쳤다. 아빠의 선배라는 분은 당황해서 나를 내려놓으셨다. 나는 울기 시작했고, 엄마와 아빠가 나를 찾아 자리로 데리고 돌아왔다. 계속 울면서 집에 가자고 떼를 썼고 결국 아빠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셔서 그 아저씨가 내 가슴을 만졌다고 울며 토로하고 말았다.
나는 적어도 엄마가 놀란 내 가슴을 진정시켜 주시거나, 괜찮다고 그 아저씨 나쁘다고 말해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싸늘한 한 마디.
“그러게 왜 그렇게 헤프게 돌아다녀!”
그 말에 울음을 그치고 멘붕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어째서인지 항상 가해자가 나쁘다는 얘기보다는 ‘피해자가 그럴 만 한 행동을 하고 다녀서’라는, 피해자를 향한 비난이 많았다. 살인 사건을 향해서는 피해자가 죽을 만 했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어째서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만 이토록 피해자에게 많은 비난이 가해지는지.
어려서부터 ‘여자는 정숙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꾸지람 속에 자란 덕분에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여성’은 ‘정숙하지 못한/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성’이라는 편견 속에 살아왔었다. 심지어 실제로 성폭력을 당했을 때에는, “내가 행실이 나빠서 성폭력을 당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그 남자와 섹스를 한 거야” 라고 합리화 하는데 급급했다. (물론 그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터 놓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의도는 ‘노출이 많은 옷을 입으면 성폭력을 당하기 쉽다’라고 말하고 싶은거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노출이 많은 옷을 좋아했다. 바지 보다는 치마, 반팔 티셔츠 보다는 민소매를.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치마와 민소매 옷을 사 주신 적이 없었고, 스무살이 되어 독립을 하던 해에 처음 구입 한 내 옷은 ‘치마’였다. 서울에서는 치마를 입는다고 ‘헤픈 여자’라며 비난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치마를 입지 않으면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옷을 보고 쏟아지는 비난들은 오롯이 받아내기엔 버거운 것이었다. 치마를 입어야 여성스럽고 예쁘다면서,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네가 강간을 당한 거야, 라는 비난에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여성주의 공부를 시작하고, 슬럿워크 팀에서 활동 하면서 나의 경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노출이 절대로 성폭력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폭력은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원래 치마 입는 것을 좋아하고, 노출이 많은 옷을 좋아하지만 그건 남성에 대한 섹스 어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말을 하기까지가 참 오래 걸렸다.
여성의 노출 많은 옷차림은 어째서 항상 섹스어필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달리게 되는가. 그건 절대 정치적으로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기제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복장에 대한 자유를 억압하고, 등급을 나눠 경쟁하게 만들고.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폭력을 당하는 것이 바로 그런 ‘노출을 한 여성의 탓’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로 피해자에게 2차 가해까지 한다.
남성들이 반바지를 입었다고 해서, 유두가 드러나는 민소매만 입고 다닌다고 해서 성폭행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성폭행을 당할까 전전긍긍하며 숨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복장의 억압부터 성폭력의 피해 책임까지 고스란히 따라붙는다. 이런 이중 잣대가 바로 폭력이다.
나의 노출도 여성의 노출도 구설수에 많이 오른다. 그리고 쉽게 자극적인 가십거리가 되어버린다. 작년 7월 16일 (나는 참가하지 못했던) 첫 슬럿워크 때부터, 올해 5월 1일 프레카리아트 총파업1)에 있었던 잡년행동2)의 퍼포먼스까지 이어지는 미디어의 저열함과, 그 미디어 기사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조야함이 나를 계속 ‘벗게’ 만든다.
그날 우리는 강요된 꾸미기 노동, 과도하게 부과되는 감정노동/가사노동/돌봄노동을 거부했고, 우리의 몸이 우리의 의지는 배제된 채 성적대상화 되는 것에 반대하며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행사 당일에는 많은 호응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미디어가 잡년행동의 활동들을 자극적인 가십으로만 다루는 것이, 우리가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반성도 있었던 탓에, 이번 퍼포먼스를 준비하며 우리의 기조와 고민이 드러날 수 있는 글도 썼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정치적 메세지는 여전히 묵과된 채, 성별 분쟁을 조장한 퍼포먼스로, 노출하고 싶어서 안달난 미친년들처럼, 미디어는 잡년행동과 퍼포먼스를 가십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거기에 달린 댓글들도 기사와 다를 바 없었다.
특히, 행사 당일에 있었던 J모 일간지 기자의 취재 행태는 행패에 가까웠다. 애초에 우리의 기조, 참여하게 된 경위나 슬럿워크의 메세지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왔다고 보기엔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노골적으로 가슴만 집중해서 찍어가더니, 아니나 다를까 나온 기사는
다른 어떤 기사들보다 편협한 시선으로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자이 행동과 기사들이 바로, 사회가 슬럿워크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에게 던지는 시선·잣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벗으려면 다 벗지 어정쩡하게 이게 뭐냐”는 이중잣대가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만약, 슬럿워크 팀에서 정말 다 벗었다면 이런 비아냥대는 댓글을 달지 않았을까? “‘한국 정서에는 좀^^;;” 이렇게 말이다.
J모 일간지 기자 역시, 슬럿워크 퍼포먼스에서 가슴이 노출 있었든 없었든 남녀 성대결을 촉발시키는 기사를 썻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어쨌든 여성이 권리를 주장하는 게 불편하니까. 그냥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야하게’ 주장하니까 더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거다.
난 야하게 입은게 아니라 단지 입고 싶은 옷을 입었을 뿐인데! 야하다고 생각하는 기준도,
그래서 여성의 노출을 정치 언어로 사용하기로 (스스로) 마음 먹었다. 일상에서는 억압의 기제인 브래지어 착용하지 않기부터, 슬럿워크 행진 때에는 어떤 파격적인 의상을 입어볼까 하는 고민까지.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나를 즐겁게 하지 않을 때에는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해서 입고 싶은 옷을 입고 거리를 다니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슬럿워크 활동일 때는 정치언어로 읽히고 한다. (실은 정치언어로 읽히길 바라고 입는 것도 있지만)
때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일련의 퍼포먼스가 타인으로 하여금 비난의 빌미를 제공한다. 가볍게는 ‘정숙하지 못한 년’이라는 소리부터 심하게는 입에 담기 힘든 욕까지.
별별 소리를 다 듣는게 슬럿워크 운동이다. 대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게 왜 “섹스하고 싶어요”라고 읽히게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자유롭게 입을 자유를,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를 말한 것 뿐인데, 사람들은 메세지를 읽지 않고 이미지만 받아들인다.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던 걸까 하는 고민을 했던 적도 있다.
결론은 이미지만 보는 사람들은 어차피 어떤 퍼포먼스를 해도 본인의 입맛대로 욕할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무슨 옷을 입고 있든 어떤 화장을 하든, 누구도 내 몸을 허락 없이 만질 권리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놓고 한 마디 하고 싶어서!
나는 벗는다.
1)기존의 노동 운동에서조차 ‘노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해온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노동자성을 주장하고 파업권을 이야기하는 총파업. 이날 슬럿워크 역시 여성의 감정노동/돌봄노동/꾸미기 노동 등 사회적으로 억압 기제가 되어온 여성에게 가해지는 노동에 대해 노동자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파업권을 이야기했다.
2)캐나다에서 시작한 슬럿워크 운동을 가져오면서 우리나라 만의 특수한 고민, 여성주의적 의제들을 고민하고 반영한 명칭. 슬럿워크는 잡년행진으로 번역해 2011년 7월 16일 첫 행진 때 사용, 이후 행진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여성주의적 고민을 풀어내는 ‘행동’으로 활동을 넓히면서 ‘잡년행동’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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