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8월호 [마포나루에서] 9년만의 전업주부 탈출기
▣ 마포나루에서
9년만의 전업주부 탈출기
김나현(용가리)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민우회 활동가가 된 지 이제 2개월 2주
“승은 엄마, 요새 왜 그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저… 사실 민우회에 취업했어요. 너무 갑작스럽게 돼서 미처 얘기를 못했네요.”
“와~ 능력 좋으신가보다.”
“아, 아니에요. 경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꾸준히 활동을 하다보니.”
“나도 큰애 낳기 직전까지 일 했었는데. 이제는 끝났죠, 뭐. 집에만 있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따금 연락하고 지내던 지인들도 “민우회? 그럴 줄 알았다”'며 많이 축하해줬다. 친하진 않지만, 조금씩 말을 건네며 지내던 동네 엄마들의 관심도 받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직장 동료의 배우자가 ‘자신도 상담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취업했냐?’며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함께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들었던 몇몇 회원분들도 오랫동안 회원으로 있다가 활동가가 됐다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전해들었다.
원고 의뢰를 받고 나서, 문득 꼭 일 년 전 생활 글쓰기 소모임에서 썼던 글이 생각났다. 제목은 <8년차 전업주부의 일주일 취업기>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또 읽어 보아도 그 글을 써내려갈 때의 절박함이 느껴져 가슴이 저민다. 오랫동안 사회에서 소외되어 온 고립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 내 인생은 이대로 고정되어 죽을 때까지 주부로 끝날 거라는 절망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때의 마음이 담긴 부분을 옮겨적어 본다.
[작년 가을이었다. 아는 언니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급하게 받고서, ‘아 이제 뭔가 다른 변화가 시작되는구나!’ 기대했다. 열심히 일했고, 계속 사무실 다니면서 일을 배워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한 달이 넘는 유치원 방학을 앞둔 아이들을 하루 종일 맡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김장, 제사 등 연이은 집안 대소사를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거기다 출근한지 며칠만에 집안은 엉망이 되었고,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매 순간 시간에 쫓기고 숨 가쁘고 정신이 없었다. 결국 5일 만에 녹다운! 그 일을 포기했다. 힘들게 찾아온 기회를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날려버려야 하다니. 아마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너무 심란하고 속상해서 엉엉 울어버렸다. 사회 경험도 경력도 능력도 전혀 없는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 보고 싶었다. 집순이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대단한 일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사회의 일원으로서 작게나마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그렇게 배부른 욕심인건가. 남편은 옆에서 “좋은 기회가 곧 올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고 위로를 한다. 위로가 안 된다. “누가,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애기 엄마에게, 기회를 주겠어. 이 사회가 그렇게 만만해? 내가 그것도 모르는 바본 줄 알아? 나한테 무슨 일을 주겠냐고. 나는 정말 그 기회가 절실했다고.” 통곡을 하며 소리쳤다.]
다시 한 발, 한 발
그런데 그 일을 겪은 뒤 느낀 것이 많았다. 아무리 절실하고 절박하게 전업주부 탈출을 원하더라도, 나 스스로 사회에 나갈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천천히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한 일은 늦은 시간까지 마음 편하게 맡길 수 있고 안전한 보육시설을 알아보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 안의 진짜 이유를 다시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이다. 잠시 출근했던 그 일을 만약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었다면 포기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런 생각 하는 걸 보니 뭐 별로 절실한 것도 아니었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라고? 그런 건 사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을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해보니 행복하지 않았다. 계속한다고 해도 절대 평생 업으로 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차마 그 일을 붙잡지 못했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조금만 더 투자하기로 했다. 평생 어떤 형태로든 여성 운동을 하겠다는 꿈이 생기자, 이왕이면 민우회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신나게, 통쾌하게 해나가고 싶었다. ‘너무 열심히 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천천히 딱 10년만 여성 운동을 하고 있자. 그러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내가 뭐가 되어 있을 지 한 번 지켜보자.’라고 생각하면서 1년 계획을 세웠다. 성폭력상담원 교육 듣기, 기획단 활동하기, 성교육 강사 워크숍 하기. 그러자 예상보다 훨씬 빨리, 미처 준비가 다 되기도 전에 기회가 찾아왔다.
아직도 이따금 ‘어? 여기가 어디지? 내가 이곳에서 일하다니. 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니 믿어지지 않아.’하며 새삼스레 감격스러워할 때도 있다. 괜히 생애 첫 명함을 꺼내 보기도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발걸음이 가볍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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