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12월호 [민우칼럼창] 내년에는 아마 가지 않을지도 몰라
내년에는 아마 가지 않을지도 몰라
박봉정숙(박봉) • 한국여성민우회 공동 대표
그때는 눈물이 안 나더라구. 별로 실감도 안 났어. 눈을 감는 마지막을 못 봐서일까.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뗀 다음, 언니의 장례 준비를 하러 서울로 떠났지. 가는 길에 활동가들과 장례 실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게 산다는 거구나’ 싶었어.
여성운동은 여전히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운동이고, 사회는 여전히 여러 아픔들이 늘 터지고 있고, 우리의 어려운 시기는 생각보다 오래갈 거 같아.
때론 ‘내가 죽은 다음에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하려나. 내가 없어도 그대로일까?’ 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게 되잖아. 그런데 ‘아, 그대로겠구나.’ 라고 생각했어. 언니가 없어도 그대로더라구. 어쩌면 그래서인지 매번 작은 일에는 흥분하는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별다른 감흥이 없는 태도는 강도가 세진 것 같아.
자꾸 언니가 꿈에 나오는 거야. 그래서 다른 활동가에게 왜 그럴까 물었더니, 언니가 나오는 게 아니라 내가 나오게 하는 거래. 아직 하고픈 말이 있냐며 편지를 한번 써보라더라. 그래서 이렇게 쓰는 중이야. 그런데 요새는 나오지 않더라. 웬만하면 나오지마, 별로야.
얼마 전 <라카지>라는 뮤지컬을 봤어. 거기서 주인공이 부르는 클라이맥스 노래가 있는데.아마 가사가 지금 이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라나… 이 순간에 나는 살고 있다나… 뭐 그런 내용 이었어. 문득 눈물이 나면서 언니 생각이 났어. 그래 이런 순간들이 찰나로 있을 텐데, 우리는 이런 찰나의 행복함을 위해 일상을 살아내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 그런데 왜 언니 생각이 났냐고? 언니가 죽고, 처음 눈물을 흘렸을 때가 언제냐면, 서울에서 장례식장 예약한 다음 날 아침이었어. 옷을 차려입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문으로 햇살이 너무 찬란하게 쏟아지는 그때 문득 눈물이 나더라구. 이렇게 반짝거리는데 언니가 없구나… 아, 언니가 없구나.
그런데 그 느낌이 말이야. 상실감보다는 그냥 당연한 인생의 진리 같은 거, 인간의 소소한 일상과 아무 상관없이 자연은 자기 할 일을 하는구나. 만약 언니가 전날 실무하러 떠나는 나를 봤으면 느꼈을 서운함 같은 걸 자연에게 느꼈다고나 할까? 나쁜 자연.
사실 여기까지 언니가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쓰고 있는데, 벌써 민우회는 언니를 모르는 사람이 가득하다우. 상근활동가 중엔 반 이상이야. 그래서 아마 언니를 기억하는 마지막 글이 될 거 같아. 그러니까 오늘까지야. 내일부터는 국물도 없어. 늙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난 앞으로 나아갈래.
기쁘게도 민우회는 언니가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어. 나이나 학력이나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누가 와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열려있다고 느끼는 곳, 사회적 자원이 적은 여성들이 기대어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 내가 겪은 크고 작은 억울함이나 고단함에 대해 우리의 이야기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곳, 그런 이야기를 사회와 소통시키는 곳 말이지. 그러니 걱정하지 마.(고인을 위해 그렇다고 하고 대충 넘어갑시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지. “내 나이가 벌써 그때 엄마의 나이보다 많구나.” 곧 나는 언니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나이를 넘어가겠지. 그러면 그때 언니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게 되고 더 이해하게 되면서 더 많이 이해해주고 공감해주지 못한 게 미안하겠지. 벌써 그렇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이런 생각도 하게 돼. 늙게 되니 선배들은 어른들은 부모들은 차차 이해하게 되는데. 어렸을 때와는 점점 멀어져가면서 그 기억이 사라져서 참 공감이 어려워 지겠구나.
그래서 말이지. 오히려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3~4년쯤 되었을 때, 10년쯤 되었을 때를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 거 같아. 앞으로 잊을 일만 남았잖아. 그지?
연말이야. 또 총회를 준비하겠지. 벌써 몇 번째야. 열여덟 번째인데 지겹지도 않아. 정말이야. 난 또 성격대로 활동 평가를 할 테지. 아작아작. 그래서 자꾸 기억하려 해. 이별이 남긴 메시지.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는 조직의 모든 이들과 나, 오늘을 함께 하는 많은 동지들(이렇게 부르고 싶을 때도 있어), 그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불러내자. 얼마나 어려운 미션인지. 나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세상은 그렇게 빨리 변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도 알아. 그래서 아마도 제일 소중하고 중요한 건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 평범한 사실을 왜 자꾸 까먹게 되나 몰라. 언니와 이별하고 남은 건 그건데… 역시 일상은 바꾸기가 어려워.
내용이 참 중구난방이었지. 편지는 원래 그런 거야. 기승전결 완벽하면 그게 편지야? 칼럼이지. (쿠헴.)
페트라 켈리라는 독일 녹색당 창립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그녀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있대. “내 무덤가에서 가던 길 멈추고 울지 말기를. 나는 이곳에 있지 않으며 잠들어있지도 않습니다.”
멋있긴 한데, 언니는 그러지 말아. 편안히 잠들어 있길 바래. 우린 충분히 열정적이었어.
박봉‧
노란 옷을 입고 있습니다. 벌써 봄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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