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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름 [민우칼럼 창] 앤절리나 졸리는 도마뱀이 될 수 있을까?
앤절리나 졸리는 도마뱀이 될 수 있을까?
백영경 여는 민우회 이사
도마뱀은 적을 만나면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간다고 한다. 먼저 있던 꼬리와 아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꼬리는 새로 자라고 도마뱀은 그렇게 살아간다. 앤절리나 졸리도 도마뱀이 부러운 사람이었을까?
어머니와 이모가 난소암으로 투병 끝에 사망한 가족력이 있는 졸리는 유전자 변이에 의한 유방암 발병 가능성을 낮추기 위하여 지난 2월 유방절제와 재건 수술을 받았다. 곧 난소제거 수술도 받는다고 한다. 위험을 감지하자 신체 일부를 분리해버리고 위험에서 도망가는 행위는 완전 도마뱀이다.
사실 도마뱀이라고 꼬리 자르고 도망가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겠나마는, 인간의 경우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잘라내도 위험은 남는다는 사실이다. 졸리가 예방적 유방절제수술을 받게 된 것은 ‘브래커’라고 읽는 BRCA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실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변이가 없는 여성에 비해서 다섯 배까지 높아진다는 통계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따지면 브래커 유전자는 췌장암과 담낭과 담도암, 대장암, 위암, 자궁경부암, 자궁체부암, 남성유방암 등의 위험을 모두 높인다. 그러면 이 많은 장기를 다 도려내야 할까? 그나마 유방을 절제해도 남아 있는 유방조직에서 암이 생길 수 있고, 심지어는 유방절제가 발병률은 낮춰도 생존율을 높인다는 근거는 없다고 한다.
또한 가족들은 유전자 외에도 생활환경이나 습관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서 브래커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과연 정확히 얼마나 위험을 증가시키는지도 사실은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 졸리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라고 하는 수치는 사실 의사들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엉터리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너무 복잡해서 그렇게 암에 걸릴 확률을 뽑아내지도 못하고, 또 그런 계산을 할 만큼 암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다. 게다가 유방암이 모두 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도 아니고, 유전자 변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암으로 이어지게 하는 요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 중이다.
물론 유방암에 걸린 가족이 있다면 그 자녀나 친척들은 그 병에 아무래도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조심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일 게다. 그렇지만 그 병에 얽매여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면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특정 질병이 유전자에 의한 운명이라는 생각은 결국 가족들에게 사회적 낙인을 가할 수밖에 없으며 많은 차별을 낳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질병이 한두 가지인가? 결국은 생로병사를 겪게 마련인 인간이 질병을 두고서 확실한 걸 추구할수록 돈은 돈대로 쓰고 근심은 늘게 되어 있다.
게다가 유전자 변이에 의한 유방암조차도 환경적인 요인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 환경적인 요인이라는 것은 단순한 검사나 수술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동네에 지나가는 고압선이며, 방사능이 나오는 아스팔트, 공사장에서 나오는 석면 폐기물,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 쉬쉬 덮으려고만 하는 산업재해와 환경오염 등, 내 한 몸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신경 써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이런 문제는 다 덮어두고 유전자 검사와 새로운 치료법에만 매달리는 태도는 사실 도마뱀이라기보다는 위험에 처해서 머리만 숨는다는 닭의 태도에 가깝다.
사실 졸리의 선택을 둘러싼 보도에는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은 졸리의 가슴이 어떻게 되었을까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면서, 복원술로 더 “빵빵해졌을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졸리 본인 역시 유전자 변이에 의한 유방암이 일부일 뿐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3세계의 안타까운 여성들 타령을 해대면서도, 막상 유전자검사가 왜 그렇게 비싼지 특허 문제는 비판하지 않았고, 이 와중에 결국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브래커 유전자 검사 특허를 가진 회사였다.
병에 대한 불안이라는 것이 결국 잘라도 잘라도 결코 깨끗이 잘라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정말 우리가 잘라내야 하는 것은 뭔가 돈을 좀 들여서 나의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는 그 생각 자체가 아닐까 한다. 몸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 아프고 나이 들고, 다치고 늙어서 죽게 되는 일이란 결국 우리가 안고 가야할 삶의 일부이지, 잘라낼 수 있는 도마뱀의 꼬리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내 몸을 제대로 돌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시선이 획기적인 무엇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헛된 약속을 파는 사람들에게 지불할 돈을 벌기 위해 허덕이는 동안, 당장 오늘의 내 삶은 조금씩 썩어 들어가면서 암세포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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