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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름 [나의 노동 이야기] 직장의 신파 : 커피전문점 바리스타 고생담
직장의 신파 : 커피전문점 바리스타 고생담
나나짱. * 여는 민우회 회원
편집자 주 : 우리 시대 여성들의 노동 이야기를 모아 보는 ‘나의 노동 이야기’. 바리스타. 새롭게 부상하는 전문직처럼 인식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의 대표격이기도 합니다. 최근 청년유니온의 폭로로 대기업 커피전문점들이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커피전문점에서 일하게 된 나나짱.* 회원의 이야기가 찾아갑니다.
나는 지금 (여전히 음료 제조에 서툰) 바리스타로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의 한 지점에서 3개월째 일하고 있다. 조만간 외국에서 생활하게 될 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워두자는 생각으로 별 고민 없이 선택했던 이 일이 ‘줄줄이 비엔나’같은 고난을 내게 선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허헛.
이곳은 온라인 입사지원과 인적성 검사를 통과하여 채용 계획이 있는 인근 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면접을 통해 채용이 결정 된다. 처음 이틀간은 본사로 가서 고객응대와 서비스 정신에 관한 것들을 종일 교육 받는다. 첫 시간, 근로기준에 관한 교육이 인상적이었는데 4대보험 가입, 주휴 수당을 비롯한 각종 수당 지급, 휴게시간 엄수 등등 관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걸 마치 회사가 베푸는 시혜인 양 표현하는 담당 직원도 그렇고, ‘우와~’하는 반응으로 감탄하며 듣는 대다수 교육생들을 보며 빈정이 상했더랬다. 관련법을 지키지 않는 곳들이 너무 많아서 상대적으로 좋아 보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생색내기처럼 이용된다는 것에 기분이 묘했다. 또 그러한 조항들이 ‘당연한 권리’가 되기까지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니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지기까지 하더라는 것. 이렇듯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관심사는 새로운 노동 현장에 내 운동적 고민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하는 ‘갑’적인 마인드였는데...
교육 후 매장 첫 출근 날. 낯설고 긴장되는 마음이지만 최대한 성실하고 친절한 인상을 주려고 애를 쓰며 열심히 배우고 일했다. 처음 하게 되는 일은 ‘플로어 체크(청소)’와 설거지의 반복이다. 한다고는 하는데 요령도 없고 서툰 탓에 우왕좌왕하다 보면 더 빠르게 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잔소리?!)을 듣게 된다. 무엇보다 근무 첫 날의 충격은 바로 평소 별 생각 없이 커피를 사마시던 이곳의 보이지 않는 뒷 공간에서 정말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각종 도구들이 사용되고 씻겨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일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음료 제조에 필요한 각종 부재료들을 정확한 용량과 유통기한에 맞게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무얼 어찌 다루면 되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들이 무색하게 모든 것이 생소했던 나는 기억해야할 것이 물밀듯 쏟아지는 상황에 거의 무아지경이었다. 수년간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던 게 익숙하던 내 몸은 결국 첫 날 퇴근과 동시에 몸살약과 파스 두 장을 소비해야 했다.
그래도 몸이 고단한 건 금세 익숙해져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진짜 고난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라는 걸 곧 알게 됐다. 수십여 개의 음료 제조 레시피를 어느 정도 외우면 일명 ‘포스(POS)', 즉 계산대를 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난생 처음 ’실수 많고 일 못하고 멍 때리는 사람‘ 취급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마 평생 할 ’죄송합니다‘라는 말의 90%정도를 포스 배우는 과정에서 써버린 것도 같다. 미숙함에서 오는 실수가 주위의 잔소리와 핀잔으로 이어지면, 주눅 듦과 자신감 하락으로 인해 더 긴장하게 되고, 다시 실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유난히 못된 말을 해대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지켜봐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첫 단추가 그렇게 잘못 꿰어지고 나니 한 번 만들어진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것이, 기대감 없는 존재가 되어 일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을 절절히 느꼈다. 어느 날인가 출근길이 마치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 같다고까지 느껴지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의 무능함을 겸허히 인정해야하나 싶다가도 나의 애씀이나 잘하는 점을 먼저 봐주지 않고 숙련기간을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는 그네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한 측면에서 보자면 미숙련 신입을 숙련자로 만드는 체계적인 매뉴얼과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조직 운영 방식이 요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칭찬과 격려보다는 호된 꾸지람을 주되게 이용하여 얻어지는 일종의 효율성에 인습처럼 기대게 되는 조직 문화 탓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또 한 측면에서 보자면 내가 이 일을 처음부터 너무 쉽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탓도 있지 않았을까. 일 자체가 만만치 않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실은 나의 ‘열심의 정도’나 일에 대한 애정이 민우회에 있을 때의 그것에 비한다면 훨씬 못 미쳤던 것은 사실일테니. 주어진 일에 대한 애착이 없는 사람이 동료들로부터 사랑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때 가장 빛날 수 있다는 진리가 새삼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나는 예상보다 일찍 퇴사의사를 밝혔고, 현재는 약속된 시한까지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신파 노동일기’를 구구절절 쓰리라 생각했건만 지나고 나서 보니 쓰디쓴 만큼 인생의 값진 경험이 된 시간이란 생각도 들기에 다행이다 싶다. 물론 다시 하라면 절대 하고 싶지는 않지만... 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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