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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름 [아홉 개의 시선] 원주에 사는 즐거움
원주에 사는 즐거움
정유선 / 원주여성민우회 대표
# 순자씨의 올레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바쁘다. 올레모임이 기차여행을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 등교를 남편에게 맡기고 집을 나선다. 민우회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 나만의 여행을 하게 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건강을 위해 참여했던 올레모임에 모임짱이 되어 3년 동안 모임을 꾸리다 보니 성격도 바뀌고 이젠 사람들 앞에 서는 일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낮선 도시였던 원주에 진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언니, 동생이 생겼다는 점이다. 올레는 구성원이 30대부터 70대까지 차이가 넓다보니 같은 문제에 대한 세대 간의 서로 다른 입장을 편안하게 나눌 수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면 자연스레 고민도 털어놓고 의논도 하게 되는데, 먼저 아이를 키우고 시집살이를 한 언니들의 조언이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들 정보지를 통해 혼자서 민우회 문을 두드리고 만나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곳 “원주올레”, 올해는 2박3일 여행을 어디로 갈까 지금부터 설레며 그날을 기다린다.
# "미디어강사"가 된 용희씨
민우회 운영위원만 6년차, 해마다 이젠 그만둬야지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민우회는 늘 일이 많아서 바쁜데 여건상 상근자는 더 뽑을 수가 없고, 그래서 다들 힘들게 활동하는 걸 알면서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다. 지난해 일 만들기 좋아하는 대표가 미디어센터와 또 일을 하나 벌였다. 그래서 듣게 된 “미디어강사 양성과정”, 처음 시작 할 때만해도 별로 내키지 않던 이 교육이 새로운 미래가 될 줄이야... 대학시절 잠깐 사진을 찍긴 했었지만 이렇게 영상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는 일이 즐거울 줄은 정말 몰랐다. 요즘은 중학교 방과후 교실과 미디어센터 수업 때문에 바빠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처음에 이사 와서 우울할 때 힘이 되어준 민우회 결국 민우회는 새로운 일도 찾아준 고마운 곳이다. 내년에도 그녀는 운영위원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겠다.
# “돈주앙”으로 살게 될 선애씨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만 살던 그녀에게 2005년 원주로의 이사는 충격이었다. 스물넷에 결혼해서 스물다섯에 엄마가 된 그녀는 낮선 원주에서 연년생 아이를 키우며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다 놀이터에서 동네아줌마를 하나 둘 사귀고, 위스타트를 알게 되고 일도 하게 되면서 원주가 또 다른 고향이 되었다. 몸이 힘들어 잠시 쉬는 동안 알게 된 민우회, 처음엔 타로를 배우러 왔지만 지금은 타로를 통해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타로 워크샵에서 그녀가 뽑은 미래의 모습 카드가 “돈쥬앙”이다. 타로를 통해 어릴 적 꾸었던 춤꾼의 꿈을 이제라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고, 그 시작으로 민우회에서 통기타를 배우고 있다. 그동안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으로 사느라 정신없었던 십여 년, 지금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살고 싶은 그녀에게 민우회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친구가 있는 곳이다.
“강원도 원주”하면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가 생각날까? 첩첩산중의 관광지? 스키장? 그나마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치악산이나 협동조합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13년전 내게도 원주는 강원도 어느 낯선 산골마을의 이미지였을 뿐 아무런 연고도 사전지식도 없는 곳이었다. 이사하자마자 큰 아이를 공동육아에 맡기고 둘째를 들쳐 업고 민우여성학교에 참석하며 인연을 맺은 민우회. 그때부터 나의 원주에서의 삶은 민우회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냥 사람들이 좋았다. 여성들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들도 좋았고, 이런저런 교육과 프로그램을 통해 전업주부들이 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고 새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좋았다. 여성들의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즐겁게 하는 모습도 신선했다. 민우회 덕분에 나는 시장바닥에서 춤을 추며 평등명절을 외쳤고, 여성문화제에서 사회도 보고, 연극도 하고, 성교육 강의도 하는 온갖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줌마들과 십년을 지내다보니 어느새 민우회 대표가 되어있다.
원주여성민우회는 지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단체는 아니다. 지방소도시는 아직도 보수성이 강해서 여성단체 쯤은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원주토박이 보다 이주여성(?)이 많다보니 지역에 뿌리내리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민우회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종 소모임과 교육이 이어지고, 이제는 토요일에도 청소녀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메운다.
원주여성민우회는 그런 곳이다. 여성들이 혼자라고 느낄 때 손을 내밀어 같이 가자고 용기를 주는 곳이고, 여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발 벗고 나서서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곳이고, 여성들이 저마다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 안의 숨은 힘을 찾아내 이름을 찾게 해주는 곳이다. 내게도 민우회는 나를 찾게 해 준 곳이었고 앞으로도 원주여성민우회는 여성들에게 친정 같은 곳이 될 것이다. 민우회가 있어서 오늘도 원주에 사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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