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겨울 [민우ing] 외모 "밖의" 외모 이야기 - '다르니까 아름답다' 캠페인을 하며
“왜 이렇게 살쪘어?”
작년, 급격히 살이 쪘다. 살이 찐 이후부터 ‘살’이 들어간 수많은 말을 들었다. 친구, 애인, 가족들은 “왜 이렇게 살 쪘어?”, “살 좀 빼.” 라는 말을 무한반복 하였다. 달라진 외모가 “예쁘지 않다”, “건강이 걱정 된다”, “예전에 네 모습이 아니다”며 말이다. 매일 듣다보니 스트레스도 쌓이고, 살을 빼려고 마음먹으면 더 먹고 싶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였다. 어느새 스스로도 “나 10kg나 쪘어. 몸이 좋지 않아.”를 자꾸 되뇌고 있었다. 한 활동가는 “요즘 반아 말 중에 70%는 ‘살’이야….” 라고 할 정도였다.
이 시기에 성형, 다이어트 경험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터뷰이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나와 마찬가지로 외모에 대한 온갖 ‘말’이 주는 스트레스로 은연중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인터뷰이들은 칭찬도 비난도 모두 독이 된다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의 무례함을 토로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외모에 대한 ‘말’은 여성건강팀의 화두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누군가에게 쉽게 말하진 않았는지 반성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되게 기분 나쁜 말이었네!”라고 불현듯 화가 치밀기도 했다.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6월 인터뷰가 끝나고, 외모 코멘트나 노골적인 외모 평가가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은 더 선명해졌다. 외모 스트레스는 10대부터 50대까지 세대와 관계없이 ‘모두’의 문제였고, 불쾌감을 드러낼 수 없는 이면에는 ‘여자의 외모관리’는 일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외모 가꾸기는 자기 관리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등 경계가 애매한 걱정과 무례함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사실, 개개인이 외모 코멘트를 듣는 때마다 불쾌감으로 대응하거나 화를 내는 방법은 대안이기는 어렵다. 일상적인 외모 코멘트의 배경에는 노동시장의 용모 차별, 성형 산업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의 와중에 우리의 목적과 비슷한 캠페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End Fat Talk(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였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Delta Delta Delta Body Image Initiative’에서 시작한 이 캠페인의 목적은 ‘체중(살)에 대한 말이 왜곡된 몸 이미지를 만들고,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섭식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실천하자’다. 많은 대학교나 건강센터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여성건강팀은 “바로, 이거야!” 라고 환호했고, 캠페인을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막상 진행하려고 구상하다보니 캠페인 참여자들에게 그저 ‘말하지 않기’만 강조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걸로 느껴지는 건 아닐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스티커다. 캠페인 기간에 누군가 “살 좀 빼.”라고 말할 때, 일일이 대꾸하기보다는 스티커를 이마에 딱 붙인다면? 분위기도 살벌해지지 않고, 할 말은 할 수 있는 비장의 아이템이 될 거라는 아이디어였다. 스티커 제작을 위한 해피빈 모금함을 열었고, ‘캠페인 내용이 좋다, 동감한다’며 조금씩 모금액이 늘어났다. 스티커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전략보다는 유머 섞인 대응법, 미묘하게 통쾌함을 줄 수 있는 내용을 구성해보았다(아무리 걸러내도, “내 몸 내가 알아서 할게”, “살 좀 빼 매일 하는 그 질문 작작해요”는 순화할 길이 없었는데, 센스 넘치는 회원 나리맛탕의 일러스트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귀여운 스티커가 완성될 수 있었다).
대학 내 캠페인
직접 여성들을 만나기 위한 거리 캠페인도 계획하였다. 외모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은 20대, 30대 여성들을 만나기 위해 대학 내 캠페인을 하기로 했다. 함께 하게 된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학생회, 사범대학 학생회, 여학생위원회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캠페인에 대한 생각도 들어보았다. 첫째로, 캠페인 취지에 공감한다고 하였다. 학내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외모 순위를 매기는 경우도 있었고, 여자화장실 비밀노트(화장실에 익명으로 고민이나 건의사항을 적을 수 있도록 종이를 붙이는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학생회의 사업)에도 다이어트, 성형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대학 내 여성주의 활동이 반성폭력운동에 머물게 되는 면이 있는데, 이 캠페인은 또 다른 여성이슈 활동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외모 관리’의 문제가 생활 곳곳에 존재하고, 여성들의 주요 고민거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캠페인은 각 학생회, 동아리 축제날인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었다. 각 학생회 페이스북 계정에 캠페인 주간을 알리고, 댓글 이벤트로 <뚱뚱해서 죄송합니까?>를 선물하기로 하였다. 캠페인 부스에서 만난 여학생들은 "맞아요, 맞아…“를 연발했다. 큰 몸짓으로 동의하는 모습은 제작된 스티커를 받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문구 하나하나 자신의 얘기라고 공감하였다.(스티커를 카톡 프로필용으로도 만들어 민우회 블로그에 올렸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스티커 제작부터 대학 내 캠페인까지, 우리가 만난 여성들을 보며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다르니까 아름답다”를 외치는 활동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
인터뷰와 사진을 모아 얼마 전 책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 예뻐지느라 아픈 그녀들의 이야기>를 출판했다. 이 “뻔한”이야기들이 “뻔하지 않게” 세상에 닿기 위해 앞으로도 관심과 호기심, 연대와 관심으로 함께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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