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하반기호 [민우ing] 118명, 성폭력 피해자의 지지자가 되다
118명, 성폭력 피해자의 지지자가 되다
지은정(모후아)|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성폭력 피해자 재판동행지원단’(이하 지원단)은 성폭력 피해자 또는 피해자 측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거나 방청을 하고자 할 때 ‘동행’ 하고 있다. 두 차례(2013년 5월, 2014년 4월)에 걸쳐 모집한 결과, 일상 속에서 성폭력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피해자를 조력하고자 하는 118명이 함께 하고 있다.
실제로 피해자를 만나고 재판에 동행하고 재판부를 모니터링 하는 지원단의 활동은, 성폭력 피해자가 법적 대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함께 경험하고 분노하며, 피해자의 지지자가 되는 과정이었다.
“평소 막연히 정의로운 사법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동행활동을 하면서 사법부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실재함을 알게 되었고,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어려움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 지원단 지우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이해는 안중에도 없는 분위기속에서 그래도 우리는 피해자 편으로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저 앉아만 있더라도, 무력하게 재판장을 쏘아볼 뿐일지라도 우리는 당신편이기 위해 그 순간 존재했다.” - 지원단 오봉
지원단은 피해자의 든든한 배후세력
“증언하러 오는 날까지도 나의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동행을 요청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원단의 존재만으로도 힘이나고, 내가 지금 잘 해결해 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는 피해자의 피드백은 지원단이 법정 안에 입장하여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액션’이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또한 재판 과정을 피해자와 그 지지자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재판부와 가해자에게 인식시킴으로써 피해자의 입장에 대해 상기시키고, 발언이나 판단에 있어 긴장하도록 하는 것도 지원단 활동의 의미 있는 부분이었다.
“민우회에서 재판동행을 시작한 이후, 지원단 분들이 재판을 지켜본다는 의식이 들어서인지 재판부와 가해 변호사들조차 언행이 조심스러워졌다. 재판동행이 재판부와 가해자 변호사 등을 견제하는 것에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느꼈다.” - 피해자 가족
피해자 지원 제도는 복불복?
지원단은 매 재판동행 시 재판모니터링도 함께 진행했다. 최근 몇 년간 법 개정을 거쳐 피해자의 권리보장을 위해 다양한 제도들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제도들이 실제 재판현장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실효성 있게 적용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모니터링을 진행한 것이다. 모니터링의 주요내용은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노력여부, 변화된 제도들이 재판현장에서 잘 적용되고 있는지 여부, 피해자의 진술보장을 위한 노력여부이다.
2013년 1월~2014년 현재까지 29건의 사건에 대해 모니터링을 진행했고, 그 중 피해자와 피해자 측과 동행한 사건은 17건이며 총 46회 동행했다. 17건의 사건 중 피해자 지원 제도를 활용한 사건은 14건이다.
피해자는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소환장을 받을 때, 지원 제도에 대한 안내장을 함께 우편으로 받게 된다. 안내된 제도 중 증언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제도는 사전에 증인지원관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안내장이 동봉되지 않아 기본적인 정보제공조차 받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또 안내장을 받고 제도이용을 위해 사전신청을 했지만 증인으로 출석한 당일, 재판장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권리는 ‘운’에 맡겨지는 것?
A사건에서 피해자는 증언하는 과정에서 상담소 활동가를 신뢰관계인으로 옆에 동석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하지만 A사건의 재판장은 “해당 법령이 무엇인가, 이 사건은 해당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국선변호사가 있는데 왜 상담원이 동석해야하나” 라고 물으며 피해자 측 국선변호사 출석여부를 확인하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피해자의 국선변호사는 출석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역할과는 별개로 활동가를 신뢰관계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퇴정조치 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과연 이 사건의 재판장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고 있는지, 변화하고 있는 성폭력특례법의 내용과 취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B사건의 재판장은 피해자가 증언을 시작하기 전 법 개정 내용을 설명하며, 피해자 측 국선변호사의 자리를 증인석 옆으로 배석하였다. 더 인상적인 것은 피해자가 증언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진행한 부분이다. 가해자 측 변호사의 집요하고 지엽적인 질문에 대해 피해자가 지치고 힘들어 하자, 재판장은 적절한 신문 제지를 하였고, 피해자에게 물을 마셔가며 천천히 진술해도 괜찮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건에 동행한 지원단 중 한명인 주홍글씨는 “놀랍도록 권위적이고 2차 피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재판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이러한 재판부의 태도가 신선하기까지 했다.” 라고 소감을 전해주었다.
피해자의 권리는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지원단의 모니터링 결과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제도가 재판현장에서 재판관계자의 식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게 적용되고 있음이 목격됐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의 법적 권리 보장을 위해 마련된 법의 취지에 대한 이해 없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희망을 찾자면, 적은 수의 사례지만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들의 취지를 이해하고, 실제 재판에서 적용하는 재판부와 피해자 측 국선변호사의 존재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재판부, 검사, 국선변호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피해자가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달라지는 현실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성폭력 재판 관계자들이,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형사절차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의 의미와 그 과정에서 겪는 2차적인 어려움을 이해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제도가 실효성있게 재판현장에서 적용할 때 비로소 모든 피해자의 법적 권리가 복불복이 아닌,‘보편적’으로 보장 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당신과 함께 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때 주변지인들이 피해에 공감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것은, 피해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과정이다. 일상 속에서 성폭력 피해 상황임을 인식했을 때 피해자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지지해주는 것, 그것부터가 피해에 공감하는 첫 걸음이다.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활동을 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바로 당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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