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하반기호 [민우ing] 지속의 조건을 찾아서 : 운으로 지속되고 악으로 버티는 여성들의 노동
지속의 조건을 찾아서 : 운으로 지속되고 악으로 버티는 여성들의 노동
강선미(폴)|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작년 민우회 여성노동팀은 경력단절 경험을 가진 여성노동자 19명을 만나, 경력단절의 이유를 들었다.
흔히 여성의 경력단절 이유에 대해 임신·출산·양육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달랐다.
임신·출산·양육은 경력단절의 ‘계기’일 뿐, 주요한 이유는 낮은 질의 일자리, 계약만료로 인한 자동단절 그리고 만연된 직장 내 성차별로 인한 문제들 때문이었다.
궁금해졌다.
앞서 언급한 위기상황들을 헤쳐 가며 일을 지속해온 여성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소위 M자곡선에 조응하지 않는 여성들의 일 경험 속에서 노동 ‘지속의 조건’을 밝혀낼 수 있길 기대하며, 올해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스무 명의 여성들을 만나봤다.
그 결과…
고군분투하는 여성노동의 실체
올해 스무 명의 여성들이 이야기한 일 경험 속에서 주요하게 파악한 내용은 여성들이 일하느라 겪고 있는 고군분투의 실체였다. 먼저, 우리가 만난 여성들 중에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이모 등 자녀를 돌봐줄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 실제로 인터뷰이 중 한 여성노동자는 아이를 돌봐주던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일을 그만둘 위기에 놓였었지만, 친정어머니가 ‘여기까지 어떻게 버텼는데 조금 더 버텨보자’며 딸의 사직을 만류하여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원활한 돌봄을 위해 친정어머니의 집 근처, 혹은 여성노동자의 회사 근처 등지로 이사를 하는 등 일·가정병행이 가능 할 수 있도록 여러 개인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여성노동자 개인과 가족에게 돌봄 책임을 오롯이 전가하는 사회, 사회적 돌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자녀를 돌봐줄 보조양육자가 있어야만 여성노동자가 일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보조양육자가 없는 경우 일과 돌봄이라는 두 갈림길 사이에서 여성노동자는 상당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조양육자를 둔 여성노동자는 보조양육자가 없는 여성들에 비해 운이 좋은 케이스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지속을 운으로 말하는 두 번째 이유는 ‘기회의 희소성’, ‘성별화된 기회’ 문제 때문이었다. 애초에 업무상의 성차별(예컨대 여성은 일반사무, 남성은 영업 등)은 작게는 발언권에서부터 업무평가, 호봉, 승진에 이르기까지 차별적 결과를 가져온다. 출발선에서부터 잠재된 성차별과 유리천장의 현실을 직시한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 닫게 된다. 성별에 따라 달리 기회가 적용되는 노동시장속에서 혹여 여성으로서 기회를 갖게 되는 경우에도, 자신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기 이 전에, 그렇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에 비해 스스로가 운이 좋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불공평한 경쟁의 사다리에서 빗겨난 여성들, 이른바 경력단절 여성들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여성노동자는 본인의 노동지속을 운으로 의미화하게 된다.
성차별적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일을 하면서도 좌절감을 느끼며 일에 대해 냉소하거나 자조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일을 지속해오고 있는 여성들은 다음의 노동에 대해 자영업 또는 프리랜서일 것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자영업과 프리랜서는 자금과 시간투여가 만만치 않게 들고 노동조건 또한 불안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들은 ‘일과 삶’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자기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욕망의 반영으로, 자영업 혹은 프리랜서를 막연하게나마 상상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노동자의 ‘슬픈’현실이다.
엄연한 생계부양자, 여성노동자들에게 건투를
최근 개봉한 영화 <카트>에서 마트 여성노동자들과 사측간의 협상 중에 회사간부는 “반찬값이나 벌려 나왔으면서 왜 이러느냐”고 말한다. 이 때 노동자 대표 중 한 명인 선희(염정아 분)는 바로 대꾸한다. “생활비 벌러 나왔다”고. 영화<카트>처럼 올해 인터뷰에서 중요하게 포착한 것은 바로 ‘남성은 주생계부양자, 여성은 보조 생계부양자’ 라는 논리가 더 이상 현실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 인터뷰를 통해 만난 여성들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서였다. 남편의 외벌이만으로는 가정경제를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해 통계청이 발표한 맞벌이 가구 수는 배우자가 있는 1178만 가구 중 505만 가구(42.9%)라고 한다. 세대별로는 30대는 40.6%, 40대는 50.8%, 50대는 49.9%로 기혼 노동자의 절반가량이 맞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과 달리 정부정책은 여전히도 ‘여성은 보조생계부양자’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에서는 전체 고용률을 70%로 올 리겠다는 목표 하에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시간제일자리 정책을 추진했다.
여성의 역할을 양육전담자로 설정한 채, 육아와 살림 외의 시간에 나와서 일하라는 취지인데, 저임금에 임시적이고 단기적인 일자리인 시간제일자리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삶의 현실과 전혀 들어맞지 않다. 올해 초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 역시 여성을 ‘노동자’보다는 ‘엄마’로 상정한 정책이다. 그 중에서 육아기 근로시간단축, 스마트워크 활성화, 비정규직 육아휴직 지원과 같은 정책은 지금의 노동구조 틀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실현되기 어렵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위하여
이처럼 정책이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는 형국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정책의 ‘방향성’이다. 앞에서 언급한 여성 노동 지속의 위기이자 경력단절의 근본원인인,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여성노동자에게 위기는 계속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그냥 방치한 채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에만 치중하는 것은 사후약방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노동정책의 포커스를 경력단절이 아닌 노동지속으로 확장하여 새로운 프레임 안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남성을 일·가정 양립정책의 주요한 대상으로 보고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일하는 여성의 내일(My Job / Tomorrow)이 고군분투하는 오늘과 다르게 구성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여성 개인과 가족에게 ‘지속의 조건’을 전가시키지 않아야 한다. 여성들의 노동 ‘지속의 조건’은 회사, 법·제도, 국가 등 사회 모두의 책임 속에서만들어질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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