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하반기호 [문화산책] <유나의 거리>인생 드라마로 등극!
<유나의 거리>인생 드라마로 등극!
박하윤경(들통) | 여는 민우회 회원
김희애와 유아인이 나름의 케미를 보여주면서 드라마<밀회>가 끝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다음 드라마 예고편이라면서 온통 회색인 배경 속에 김옥빈이 소매치기를 하고 있었다. 흘깃 본 그 화면은 죄 회색인 게 칙칙했고, 2014년에 소매치기라니. <서울의 달> 작가라지만 너무 시대가 안 맞는 거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다음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게 <유나의 거리>를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10회쯤 진행됐을 때 친구의 적극적인 영업에 의해 1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1회를 보자마자 간만에 대작을 만난 기쁨으로 뇌수가 출렁거리며 심장이 팔딱팔딱 뛰기 시작했다. 요즘 보기 드문 80년대 중반의 김수현 드라마 같은 촘촘한 구성에, 연극 무대 같은 꼼꼼한 공간 활용, 주인공부터 엑스트라까지 연기를 못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다 심지어 도구로 쓰이는 인물이 한 명도 없는, 한 명 한 명이 전부 주인공인 드라마라니…. 한마디로 뻔한 구석이 한 군데도 없는 희한한 드라마였다. 심지어 대사도 엄청 찰 져!
주인공인 유나(김옥빈)는 전설의 소매치기 강복천(임현식)의 딸로, 자신 역시 기술이 뛰어난 소매치기이다. 아주 어렸을 때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를 용서하지 못해 복수하듯이 소매치기를 업으로 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기술을 눈으로 보고 바로 배운 초 영재인 데다, 의리가 있고 총명해 업계에서 유명인사다. 감옥에서 임종을 맞이 한 아버지가 유언으로 손가락까지 자르며 소매치기를 관두라고 했을 때도 말을 듣지 않고, 소매치기를 계속하는 고집쟁이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한축을 형성하는 주인공인 창만(이희준)은 야반도주한 사장을 기다리며 폐점한 카페 안에서 지내다, 남자들에게 쫓기는 유나와 만나 그 인연으로 유나가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에 방을 얻으며 등장한다. 혈혈단신으로 온갖 일을 하면서 검정고시를 치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유나의 이웃이 되어 집주인이 운영하는 콜라텍의 지배인을 맡고 유나를 좋아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유나와 창만 두 사람 외에도 주변 인물들은 전 직조폭에 꽃뱀, 콜라텍 주방장에 전직 부패 경찰, 장물아비, 호스트 등 직업도 화려하고 연령대도 초등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 공급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으며, 자기 자리에서 주변 사람들과 치고 박고 마음을 주고 아옹다옹 산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사람이 바뀐다. 자기만 손해보고 사는 것 같아 늘 화를 내던 만복이 치매에 걸린 도끼 형님을 성심성의껏 돌보며 눈물짓고, 소매치기라며 유나를 꺼리던 부킹 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륜이라고 오해를 받게 되자, 편견 없는 유나에게 고마워한다.
변화뿐 아니라 ‘의리’라는 것도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은데, 특히 여성들의 의리가 짱짱하게 나온다. 꽃뱀 언니의 등골을 파먹는 호스트를 혼내기 위해 대형 가위를 들고 병문안을 가서 결박과 협박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소매치기 시스터즈는, 언니와 동생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가위, 망치, 로프, 맥주병, 칼을 능숙하게 쓰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욕은 기본으로 한다. 정말 속 시원하다.
또 등장인물들이 늘 라면, 떡볶이, 소주, 막걸리, 맥주를 먹어서 나도 늘 술과 분식이 땡기고, 창만이가 노래를 참 잘 불러서 자꾸 노래방에 가고 싶어지고, 왠지 콜라텍에 가보고 싶어진다. 유나가 웃으면 나도 입 꼬리가 올라가고, 슬픈 에피소드에서도 따뜻하게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희한한 드라마, 2014년 서울의 달을 자꾸 쳐다보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맘이 짠한데, 재미있는 드라마를 찾고 있는 민우회원들이 반드시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덪.
유나의 룸메인 꽃뱀에서 물뱀 다 된 미선 언니는 회가 거듭될수록 몸매와 패션이 점점 더 예뻐진다.
미선 언니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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