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엘리베이터 안...
아침 출근, 회의 갈 때,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퇴근할 때 잠시 머무르는 좁은 공간이다.
이 안에서 피상적으로 나를 아는 다양한 회사 사람들 - 동료와 선배, 임원에 이르기까지 - 과 짧은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들의 나에 대한 관심과 인사말은 주로 여성으로서의 나의 삶과 궤를 같이 한다.
결혼 전에는, '남자친구는 있냐', '국수는 언제 먹냐', '너무 늦은 것 아니냐' 등의 애정어린 관심이라는 명목 하에 여성의 평균적 삶(소위 결혼 적령기)에 대한 엄청난 무게를 느끼게 하였는가 하면 결혼 2년차를 꽉 채우고 있는 나에게 2년 전부터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2세 계획은 어떻게 되냐', '시부모가 기다리지 않는가', '남편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이냐' ….
아직 계획 없다는 뻔뻔스런(?) 나의 대답에 사람들은 시부모, 혹은 남편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는 둥 마치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않는 여자에게 하해와 같은 아량을 베풀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과 재촉과는 별개로 나에게 있어 임신과 출산, 양육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Project로 다가온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이 프로젝트에 무관심하거나 무책임한 것은 아니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나의 일기장에는 미래의 나의 딸을 향한 결심과 대화가 빈번하게 기록되어 있고, 지금도 아기를 보면 물고 빨고 할만큼(옛 어른들의 표현 ^^;;) 아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환경은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나의 본성(?)을 거스를 만큼 너무나 척박하고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연기와 보류뿐이다.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백만 한가지 이유를 들자면...
첫째는 키워줄 사람이 없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엄마는, 직장을 다니는 아빠보다 언제나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라도 밖에 나가 활동하지 않으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엄마를 빼 닮아, 나 역시 전업주부가 될 생각은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그런 나를 잘 알고, 그런 엄마를 이해하는 내가 어찌 엄마에게 덜컥 아이를 낳아 맡길 수 있겠는가? 시어머니는 몸이 약하셔서 손자 보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키워주겠다는 말씀은 차마 못하고 계시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출산과 양육이 지극히 사적 영역의 일이므로 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길 기대하니, 나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나을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인 것이다.
둘째는 직장에서의 생존문제이다.
유구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더 이상 대놓고 임신한 여성에게 퇴사를 종용하는 조직은 과거보다 줄어들었고, 다만 승진을 시키지 않을 뿐이다.
"차이는 인정한다. 그러나 차별엔 도전한다"라는 광고를 일삼는 KTF는 나름대로 상당히 젊은 기업, 선진기업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출산휴가를 다녀온 여성의 고과는 언제나 평균 미만으로, 출산휴가 다녀온 만큼 일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일한 사람보다 더 잘 줄 수 있겠냐고 상사는 인간적 호소를 했다고 한다. 내년에 승진 대상인 나로서는 현재 임신과 출산은 바로 조직에서의 낙오를 의미한다. 왜, 쓸데없이 꾸벅꾸벅 졸다가만 오는 예비군, 민방위 같은 활동은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며 너무나 당당하게 이야기하는데, 국가의 근간인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위대한 활동은 왜 언제나 죄송스런 집안 일로 치부되는 것일까?
셋째는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없는 조직문화이다.
남편과 나는 술과 담배, 포커와 당구, 오락과 상사 눈치보기 등 퇴근 및 집으로 오는 시간을 늦추는 모든 요소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편이다. 낮에 빈둥거리다가 저녁 먹고 나서야 일을 시작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장에서의 성공이 인생 최대 목표도 아닌 사람이다. 가능하면 빨리 퇴근해 상봉을 갈망하는 두 사람이지만 우리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이르면 10시, 12시 새벽 2시 이렇게 3가지 양상이 있다. 침대에 누워 그날 있었던 일을 다 못 나누고 곯아떨어지는 우리는, 과연 좋은 엄마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누군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낳기만 하고 기르지 못하게 만드는 조직문화는, 언제쯤 저녁을 함께 먹고 주말엔 공원이라도 산책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바뀔 수 있을런지....
월드컵보다 더 뜨거웠던 지난 대선 전에 시부모님을 찾아가 꼭 이런 대통령을 뽑아 달라고 선거운동을 하였었다.
며느리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편하게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나라를 희망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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