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여성은 역사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수많은 역사적 자료들은 남성의 입장에서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남성의 내러티브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여성을 보이게 하고 여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 대한제분 결혼퇴직 사건
1998년, 한 여성노동자의 퇴직으로부터 시작하여 올해 대법원에서 최종 종결된 ‘대한제분 결혼퇴직 사건’은 남성중심적 역사와의 다툼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법정에서 다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떠한 것이 요구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혼퇴직은 남녀고용평등법 제11조제2항에서 명백하게 규제되고 있다. ‘사업주는 근로여성의 혼인, 임신 또는 출산을 퇴직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물론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결혼퇴직각서’이다. 입사할 때 결혼하면 퇴직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여성 노동자로부터 받을 경우 이는 성차별적 해고로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이 남녀고용평등법에 담겨진 취지는 반드시 각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결혼이나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가 직장을 그만두도록 강요한다면 이를 위법한 성차별적 해고로서 규제하여야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결혼이나 임신, 출산이 여성의 일할 수 있는 권리를 가로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조항이 담고 있는 것은 바로 너무나 상식적인 이러한 이야기이다.
1991년 대한제분에 입사한 한 여성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회사의 관행이 법 위반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고 1998년 결혼을 앞두고 퇴사하였다. 그리고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결혼퇴직이 위법한 성차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1998년 12월 지방노동사무소에의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시작으로 2003년 대법원에의 의원면직처분무효확인소송에 이르기까지 총 6번의 법정 싸움을 진행하였다. 그녀는 3번을 잇따라 승소했으나 다시 3번을 잇따라 패소, 결국 대한제분의 결혼퇴직 관행은 성차별적 해고가 아니라는 어이없는 결과를 받았다.
이 사건이 성차별적 해고가 아니라는 판결의 주된 근거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판결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고회사에 여직원이 결혼을 하면 퇴직하는 관행이 있음을 속단하기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2000. 08. 30. 서울고법 2000누2817, 판결요지 중에서>
원고회사에서는 여직원이 결혼을 하면 퇴직하는 관행이 있었고 사직서 제출 당시 ⋯원고회사측에 의하여 사직서 제출이 강요되었다는 피고 및 참가인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 및 증언은 이를 믿지 아니하고, 위 사실만으로는 원고회사에 여직원이 결혼을 하면 퇴직하는 관행이 있음을 추단하기 부족하며...
<2001. 12. 27. 대법 2000두7797, 판결요지 중에서>
피고회사에 여직원이 결혼을 하면 퇴직한다는 관행이 있어 피고회사가 결혼을 앞둔 원고에게 퇴직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적, 묵시적으로 강요 또는 기망을 하였다거나, 그로 인하여 원고가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 사직서를 제출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믿을 수가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의원면직처분무효확인 판결문 중에서>
법정에서는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고,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증거가 없거나 부족했던 것일까? 대한제분은 1953년 11월 창사 이후 1999년 6월까지 약 46년간 결혼한 이후에도 계속 회사에서 근무한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고, 정규사무직 여사원 56명 전원이 미혼이었다. 입사시 회사 서류양식에 근거하여 결혼과 동시에 퇴사하는 조건의 여직원 계약서를 작성한 바 있음을 증언한 여성도 있었다. 이외에도 제출된 증거와 진술은 많았다. 문제는 증거가 없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라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다고 ‘판단되는’데 있었던 것이다.
∎ 무엇을 성차별적 관행의 증거로 볼 것인가?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증거란 ‘소송법상 법원에 사실의 존부(存否)에 관한 확신을 주기 위한 자료‘라고 되어 있다. 법원에 결혼퇴직 관행이 있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는 여직원 계약서가 문서상으로 존재하거나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결혼퇴직의 규정이 있어야만 했다. 지난 46년 동안 기혼인 여직원이 한 사람도 근무한 적 없다는 현실은 증거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비단 이 사건뿐만이 아니라 무엇이 성차별인가 아닌가의 다툼은 많은 경우 관행과의 싸움이다.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온 역사에서 성차별은 관행으로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관행, 습관, 통념이 성찰되고 부정되지 않으면 차별은 이름 붙여지지 않을 것이며 수정되기란 더더욱 만무할 것이다.
문제는 관행이라는 것이 물적인 증거로 남아있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습관이나 통념, 인식이 문서 혹은 규정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사람은 일정 연령대에 달하면 이성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좋다는 등의 성차별적 인식들은 어떤 문서에서도 어떤 규정에서도 찾을 수 없다. 관행이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는 관행으로 인해 빚어진 현실, 그 자체이다. 법정에서는 이러한 현실 자체를 증거로서 인식해야지만 보다 성평등한 판결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관행과 그로 인한 현실을 증거로서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제분이라는 회사에 지난 46년간 기혼인 여성 노동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 말도 안 되고 심히 수상하게 보여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여성들은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남자들하고는 사뭇 달라서 결혼을 하고 나면 모두 스스로들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한 회사에서 46년간 그런 일이 있었다 한들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현실이 성차별적 관행의 증거로 작용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편견과 평가절하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꾸준한 문제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판결은 또한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남성중심적 역사는 법정에서도 재현된다. 여성이 진정코 법 앞에서 평등하기 위해서는 법정이 평등해져야 한다. 그리고 평등한 법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정 밖에서의 끊임없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판결은 판사 혼자 혹은 변호사 혼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