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여름이다. 그러나 언제 장마가 시작되어 작년 같은 수해가 나서 무덥고 짜증스러운 지루한 나날로 바뀔지 모른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내 인생도 마냥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좋은 학교는 아니지만 수석으로 졸업했고, 주어진 일에 소신껏 일한다면 별 탈 없이 내가 원하는 만큼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출산해고’란 단어가 나의 인생을 가로막을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마음 같아서는 “일하는 여성여러분!! 출산해고라는 이 단어가 언제 당신의 앞을 가로막아 직장생활의 종말을 알릴지 모르는 일입니다. 경계하세요.” 라는 표어를 내걸고 길거리로 나가고 싶은 심정이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그래픽을 공부하여, 95년 1월 KBS에 입사해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8년을 계속해서 근무하던 중이었다.
34살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해 그 해에 아기를 낳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에 출산을 앞두고 회사에 출산휴가를 보고하니, 복귀하는 날짜를 알려 주겠다고 하고선 3개월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3월 중순경에 회사측은 전화를 해서는 ‘재시험을 봐서 합격해야만 나와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했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해 무슨 얘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아니 며칠을 생각해 보니,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기였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8년을 정말 열심히, 성실히 일해 온 사람에게 고작 이런 대우를 한 회사가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배신감마저 들었다. 출산을 이유로 이런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8년 동안 해왔던 일에 대해서 출산을 했다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다시 시험을 봐야 한다니... 그것도 신입사원과 동일한 위치에서.
내가 시험을 본다면 다른 동료들 또한 시험을 봐야한다는 얘긴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항상 그런 생각만 하니까, 꿈에서도 회사가 나타나 잠이 오질 않았다. 나에겐 그만큼 큰 상처였고 배신이었다.
그러다가 민우회와의 상담을 통해 민우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정말 고마운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본인의 얘기도 아닌데 이렇게 다른 사람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조언까지 해주다니, 민우회를 통해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가만히 물러선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중에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자고 서로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KBS라는 큰 회사를 상대로 어떻게 문제제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생각하며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곤 했다.
나보다 한달 나중에 출산하고 입사한지 2년 된 후배도 시험을 보라고 연락이 왔다고 해서 같이 거부하기로 생각을 굳히고 회사측과 면담을 하였다. 재시험의 부당함을 얘기하자, 회사측은 사적인 감정은 없고 새로운 틀을 만들려는 의도라며, 테스트를 거치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출산해고가 차별 행위임을 인정받기 위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였고, 6월 8일에는 민우회에서 진행한 ‘해고없는 출산휴가 90일 완전확보를 위한 캠페인’에 같이 참여하였다. 사례를 발표하자 기자들의 질문도 많이 받았고 신문에도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제는 인권위의 결정에 맡길 것이며, 만일 결과가 안 좋게 나오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난 당당하게 행동했고, 잘못한 일이 없으므로 떳떳하기 때문이다.
어제도 KBS뉴스에서는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에 대해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이런 정책에 공기업인 KBS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야함에도 불구하고, 아기 한 명 낳을 때마다 시험을 본다면 누가 둘을 낳을 것이며, 셋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내 앞일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비정규직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다짐이다. 그리고 내가 겪은 일을 널리 알려 비정규직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차별이 개선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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