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번두리번... 누가 나를 따라오진 않는지 화장실에 들어간 후에도 옆 칸에 있는 사람이 진짜 여자인지, 수상한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나는 촉각을 곤두세워 안전을 확인한 다음에야 서둘러 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온다.
내가 항상 007작전을 방불케 하면서 일을 보는 건 의심증을 갖고 있다거나 스토커에게 시달리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공용화장실 특히 지하철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나는 모든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왜 나는(여성들은)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가 없는가?
2~3년 전부터 집 근처의 지하철역 화장실은 성추행범들의 출몰지역이 되었다. 예전에는 옆 칸에 들어와 칸막이 밑의 빈틈으로 훔쳐보기를 해 칸막이의 아래 부분을 막는 공사를 한 적이 있다. 그 후 더 과감해진 그들은 이젠 아예 문 앞에서 엎드린 상태로 무방비 상태인 여성들에 대한 '훔쳐보기'를 계속하였다. 몇 번 그런 불쾌한 일을 당한 후 역무실에 가서 항의를 했지만 내 연락처를 남겨놓으라는 말만 할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시간에 쫓겨서 집에서 일을 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지하철 화장실을 다시 이용하게 되었다.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어정쩡하게 서있던 멀끔하게 양복까지 차려 입은 아저씨와 두 눈이 마주쳤다. 동공이 확대되면서 뜨악~.
나나 그 사람이나 상황판단을 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5초 정도의 시간, 아니 어쩜 더 짧았을 것이다. 상황판단을 마쳤을 때 그는 이미 도망치기 시작했고 난 잡고야 말겠다고 뒤쫓아 뛰면서 욕을 해댔다. 결과는 당연히 못 잡았다. 난 그를 놓친 것이 너무 억울해 역무실로 찾아가서 도대체 공익들은 다 어디에 있느냐며 조금은 실성한 듯 소리만 질러대고 출근을 했다.
그 후 난 도시철도공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몇 번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개선 노력도 보이지 않는 도시철도측의 태도와 지하철 화장실의 무방비함에 관해 항의의 글을 남겼다. 그 다음날 아침 역무원이 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5호선 화장실들의 모든 문을 교체하려면 수천 개의 문이 필요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얘기하면서 역무실에 와서 차나 한잔 마시면서 좋은 방향으로 얘기해 보자는 거다. 헉!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더 가관은 역무원장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바꾸더니 게시판의 글을 삭제해 달라고 한다. 우리 역의 이미지 손상이라나 뭐라나... 이건 협박이 아닌가 싶었다.
화가 나 전화를 끊어버린 후 또 전화 올까 무서워 핸드폰도 꺼버렸다. 그리고 다시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역무원이 한 말이 도시철도공사의 공식적인 입장이냐고, 게시판 글을 삭제하는 것은 내 개인적인 의사이고 답변은 게시판에 올려달라고. 그러자 도시철도공사의 영업부에서 게시판에 답변을 올렸다. 순찰도 자주 돌겠으며, 문 교체에 관한 부분도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겠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지도 어언 한달 정도가 되어간다. 그사이 나에게는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출근길에 화장실에 들러 순찰은 잘 돌고 있는지 문은 바꿨는지 또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
현재 나는 매일매일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구상중이다. 내가 시나리오작가냐구? 천만에 말씀.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다시 그들을 현장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다. 내일 아침에도 난 그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화장실을 감시할 것이다. 그들이 다시 딱 걸리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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