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몇 달 전에 읽었던 책제목이다. 누군가의 추천이 없었다면 책의 존재 여부도 모르고 넘어갔을 듯한 이 책은 베트남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오만을 꼬집기라도 하듯이 서문에 이런 글귀가 담겨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가 베트남전쟁이라 부르는 전쟁을 미국전쟁이라 부른다. 우리가 베트콩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라 부른다. 그리고 월남패망을 해방이라 부른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니 '베트콩', '귀신잡는 해병대', '월남전', '월남패망'이라는 단어들이 툭툭 퉁겨져 나온다. 베트남 사람들이 해방이라 기억하는 전쟁에 대해서 나는 왜 월남패망이라고 기억하고 있는가? 과연 이 기억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어떠한 전쟁도 그 전쟁의 명분이란 찾을 수도, 있을 수도 없다. 그야말로 전쟁은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으며, 지금도 전쟁 중이며, 전쟁에 대한 인식 또한 다양하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감행했을 때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이 벌어졌다. 그와 함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정당화 논리도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설과 개발.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어쩔 수 없었다고. 전쟁반대에 대한 이야기보다 훨씬 더 많이 들었던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논리와 정보들. 전쟁을 일으킨 자가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독점하려 한다.
“지금까지 베트남전쟁 자체의 도덕성과 그 전쟁에서 한국군의 행위가 도덕적이었는가에 상관없이 베트남전쟁이 한국에서 ‘반공성전’이 되었던 것은 그 전쟁에 파병했던 권력이 만들어낸 신화였다. 전쟁의 부도덕하고 추악한 이면, 국가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살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였고, 특정권력집단의 기억만이 공식적인 기억으로 정착되고 기록되었다. 전쟁을 기획하고 일으키고 그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집단은 전쟁에 대한 기억마저 독점하려 하는 것이다. 교육과 문화와 매스컴을 통해 만들어진 의식은 다시 왜곡된 기억을 재생산한다.” -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중
전쟁에 대한 끊임없는 합리화와 정당성 부여에 대한 의식은 전쟁이 가지는 폭력성을 왜곡시키거나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사슬(의식, 이데올로기, 무자비한 학살)이 '폭력'이 아니라 '정당한 공격', '응징'이라는 말로 대치된다.
고김선일씨의 피살 이후 파병반대에서 파병찬성으로 생각이 바뀐 사람이 2배 이상이나 된다는 결과가 있었다. 고김선일씨가 납치되었던 당시에는 파병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이다. 고김선일씨에 대한 피살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할 될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응이 또 다시 응징, 보복이라는 전쟁의 방식으로, 폭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더욱 더 아닐 것이다.
지금도 전쟁 중이다. 전쟁 중이라는 것은, 전쟁을 합리화시키는 이데올로기와 기억을 왜곡시키려는 움직임이 팽배하다는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르게 끊임없이 폭력을 정당화하고, 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감추는 이데올로기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전쟁은 무자비한 폭력의 결정체일 뿐이며, 그 사슬이 지금도 진행 중이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쟁에 대한 기억은 ‘모든 전쟁은 야만이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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