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GO! 평등양육
GO! 평등양육
김 창 연 : 여성노동센터 상근활동가
지난 호 기획시리즈에서는 일과 양육의 평등퍼즐을 위한 하나의 퍼즐 조각인 'Stop! 출산해고'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또 다른 하나의 퍼즐 조각인 'Go! 평등양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두 개의 조각은 얼핏 보면 조금은 다른 주장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일과 양육이 한 개인의 삶에서 보다 조화롭게 유지되기 위한 퍼즐판에서는 같은 맥락 안에 놓여있는 조각들이다. 생각해 보자. 양육에 있어 가정 내에서의 평등한 분담이 없다면 양육에 따르는 모든 부담이 여성이게 전가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양육의 문제는 이 여성이 수행하고 있는 직장에서의 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직장 내에서 주변화된 노동력으로 남게 되고, 출산 양육을 이유로 하는 다양한 불이익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일과 양육에 있어서의 평등을 위해서 반드시 개별 가정 내에서의 평등한 양육 분담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따라서 본 캠페인 역시 이후로는 GO! 평등양육에 관한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풀어갈 예정이다.
내 모든 책임을 자궁에게?!
내 친구는 주말부부이면서 맞벌이이다. 아이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가 키우고 있다. 그녀는 아침에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출근한 뒤, 퇴근길에 다시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아빠는 주중에는 지방에서 일하고 주말에 서울로 올라온다. 그는 서울 집에 올라오면 주말 내내 자신의 취미활동을 하기에 바쁘다. 맞벌이인 관계로 집안 일과 양육을 주말에 많이 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초기와는 달리 이런 일들이 점점 더 여성인 자신의 손에만 맡겨지고 있어 내 친구는 요즘 고민이 많다.
이 사례는 사실 내가 지어낸 얘기다. 하지만 별로 특이하지도 않고 뻔하고 흔한 얘기로 들릴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런 일들이 많은 부부들에게 실제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노동부는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이 두 배 가량 증가했다는, 눈이 번쩍 뜨이는 통계를 발표한 적이 있다. 양육이 평등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육이 더 이상은 여성에게 일방적인 짐으로 지워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서둘러 기뻐하지는 말자. 98.2%에 해당하는 육아휴직 사용자 4,212명은 여성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여성에게 배타적으로 전담되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은 현실인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는 인식은 도무지 바뀔 줄을 모른다. '애들은 역시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말들이 정말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들려오지 않는가. 여성이 양육에 더 친화적이라는 통념은 많은 경우 아이를 낳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10개월 간 아이를 뱃속에서부터 키워 산통을 겪어 낳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이 양육에 있어 모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여성이 혼자서 낳는다는 생각이 과연 맞는 것일까? 임신을 하고, 진통을 하고, 아이를 낳는 등의 직접적인 출산의 행위는 여성이 할 수밖에 없지만, 이것이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모든 과정에서의 남성 배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절반의 책임 - 그리고 그 책임은 동시에 권리이기도 하다 - 을 더 이상 자궁에 전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태도를 바꿔라, 세상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남성들이 보다 양육에 평등하게 참여하도록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제도부터 시작하여 의식과 문화 등 변화해야 할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제도적인 변화로는 '배우자출산휴가제'의 도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배우자가 출산을 하게 되면 남성들은 자신의 연차나 월차를 끌어다 2 3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만 산모와 신생아를 돌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으로써 산모와 아기를 돌보는 일이 출산과 양육에 절반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게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전가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배우자출산휴가제'는 배우자 - 사실혼의 배우자 또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 가 출산을 한 남성에게 유급의 휴가를 부여함으로써 출산 후의 산모와 신생아를 남성이 실질적으로 간호하고 보살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의 도입을 통해 출산은 여성만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으며, 남성들에게 출산 과정에의 개입이 의무이자 권리라는 점을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의식과 문화의 변화를 위해서는 남성들이 양육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쯤 - 오죽하면 '하루'일까? 제발 '하루'만이라도 실천해 줬음 좋겠다는 심정이다 - 은 남성이 양육을 전담하는 날을 정해서 실천해보는 것 같은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기회들 말이다. 이런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주위에서 강제하고 남성들이 스스로 선택하여 실천하도록 한다면 양육에의 참여가 '습관화'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별 가정 내에서의 평등한 양육에 대한 실천은 생활습관에서의 많은 변화들을 요구할 것이다. (아마도 남성들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조금 더 몸을 움직여야 하고, 퇴근 후 술자리에의 유혹에 빠지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아마도 여성들은) 내가 먼저 해 버리지 않아야 하고, 필요할 땐 정확하게 요구해야 하고, 때로는 불안해도 외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일상적인 습관, 태도의 변화가 꼼꼼하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나의 변화로부터 세상은 달라진다.
그리고 남는 이야기들
일과 양육이 남성과 여성에게 좀 더 평등해지기 위해서, 누구나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단지 이러한 것들만은 아닐 것이다. 우선 이상적인 노동자(ideal worker)에 대한 이미지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도 가정도 돌보지 않고 조직에만 충성하는 노동자, 회식 자리에서는 끝까지 남는 것이 절대가치여서 다른 사람까지 붙잡는 노동자, 상사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예의바른 노동자, 언제나 일이 우선인 워커홀릭이 바람직한 노동자라는 통념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주변화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며, 일과 양육의 조화로운 양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설정이 다양하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 일과 양육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이성애적 핵가족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에게도 비혼의 남성, 여성들에게도 일과 양육, 혹은 일과 가정의 균형은 언제나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문제이다. 누구에게나,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나 삶이 조화로울 수 있기 위해서는 이후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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