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국에서]내가 병풍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이유
내가 병풍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이유
김창연 : 여성노동센터 상근활동가
야구선수 및 연예인들의 병역비리, 소위 "병풍"이 조소와 안타까움, 비난을 동반하며 인구에 회자되던 어느 날 퇴근 길. 음악을 귀에 꽂고도 자막이 있어 충분히 내용을 알 수 있고 시간 때우기엔 짱인지라 언제나 그렇듯이 입을 헤벌리고 넋 놓아 바라보던 지하철 1호선 (혹은 4호선) 내의 텔레비전. 병무청인지 국방부인지에서 만든 공익광고. 뻔하지, 뭐. 군대 오라는 얘기.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군인들이 힘차게 훈련받는 멋있는 모습 보여주는 그저 그런 화면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쳐주자.
마지막 장면은 군인 간 오라버니가 휴가를 나와 군복을 벗지도 아니한 채로 어머니, 아버지, 누이동생에게 둘러 싸여 화기애애 담소를 나누는 화목한 4인 가족. 그런데 갑자기 누이동생이 카메라를 쳐다보더니 애교 넘치게 하는 말, "나도 가고 싶다~". 그리고 광고 끝~!!
헉! 이게 뭐냐.
이런 장면을 보면서 "그래, 가고 싶으면 가~ 여군가면 되잖아"라는 대꾸는 절대 유용하지 않다. 이건 징병에 관한 얘기니까. 군대가 남성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부 남성들)만의 전유물임을 명확히 보여줌(여자들, 니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쯧쯧)과 동시에 군대를 갔다 오는 것은 그 만큼의 혜택이 있음을 암시(여자들이 부러워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 으쓱!)하는 너무나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 한 마디. 촌철살인의 경지가 아닌가!
저 광고에서 나도 군대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녀가 "누이동생"이라고 설정되어 있다는 확신을 주는 장면이나 대사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누나가 아닌 누이동생일 거라고 감히 장담한다. 그래야 뭔가 그림이 맞아떨어지거든.
장성한 남자가 군대에 가서 지켜주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늙으신 부모님과 연약한 누이동생이 아니더냐. 군인 간 남동생 어쩌고 하는 노래가사는 없어도 군인 간 오라버니 어쩌고 하는 노래가사는 있지 않더냔 말이다. 그게 군대 앞에서 여성이 이미지화되는 고전적 방식이다. 내가 지켜주어야 하는 꽃다운 누이동생.
이렇게 대 놓고 말할 줄은 몰랐다. 너희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고, 군대에 갔다 왔다는 사실로부터 나오는 모든 혜택은 우리끼리 가질 테니 넘보지 말라고, 연약한 너희들은 이 든든한 오라버니가 지켜주겠다고, 남성들이여 군대는 여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남성들만의 멋있는 전유물이니 자랑스러워하라고, 이렇게 대 놓고 말하다니 참 용감하기도 하다.
사실 사람 말문을 막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설마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얘기를 대 놓고 하는 거지. 그러니 나는 연예인 등의 병역비리에 대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감히 군대도 못 가는 것이 군대에 대해서, 군사주의에 대해서 뭐라고 쫑알댈 수 있겠어? 젠장.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오늘은 국군의 날! 출근길에 다시 본 그 문제적 광고는 "국민과 함께 하는 병무청"의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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