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의 노동생각] 나는 10년차 개인사업자?!
나는 10년차 개인사업자?!
정난숙 : 여성노동센터 회원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며 10년을 하루 같이 보내고 있는 나의 일터를 떠올려 본다. 결혼 전에 다녔던 짧은 기억 속의 직장은 첫 사회생활이라는 경험의 발판이 되긴 했지만 대학 4년을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으로서는 적응하기 힘든 열악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넓은 마음의 반려자를 만났다고 생각했을 때 직장을 그만두고 아무런 사심 없이 결혼 준비를 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이것은 아닌데'를 연발하게 했다. 신혼의 단꿈을 느끼기도 전에 아기를 가짐으로써 결혼 초부터 계속된 싸움의 연장선에서 아이를 낳았고, 그후 직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가 있는 아줌마가 갈 곳은 어드메뇨?"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모 학습지 회사에 지원을 하였다. 서류전형을 거쳐 시험도 치르고 면접도 본 후 합격하여 교육연수를 들어갔다. 연수를 받는 10여일 동안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한데 아마도 결혼 후 처음으로 아이로부터, 집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맘껏 맛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개인사업자라는 허울 속에 감춰진 진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직장 생활, 나는 집안 일은 어머니께 맡기다시피 하고 직장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사무실에서 직원은 거의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국장이나 팀장은 남자 직원이었다. 이런 국장이나 팀장의 지시나 교육을 받으며 그날의 교재를 챙기고 수업 받을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신입생활을 하였다.
그 당시 신입직원들은 아침 9시까지 출근하여 사무실 청소며 책상 정리를 했었다. 그리고 3개월의 신입교육을 받아야 정식 직원처럼 수수료(교사가 담당한 회원들이 내는 회비의 일정비율을 다달이 월급으로 받는다)도 생기고 정식 직원으로 인정해 주었고, 출근 시간도 정해져 있었다. 개인사업자라는 명분 아래 실질적으로 계약직 직원이었던 것이다.
처음 계약할 때에는 내가 가르칠 아이들(회원)을 담보로 보증금도 내야 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회원 한 명당 일정액의 돈을 회사에 미리 내는 것이다. 회원을 늘리는 것도 교사의 몫이었고 회원이 늘어나면 수수료도 높아지므로, 회원을 사고 팔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행위가 법에 어긋난다고 해서 보증금 제도도 보증보험으로 바뀌고, 회원을 사고 팔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회원에 대한 모든 관리나 교육은 물론이고 회원들의 회비에 관한 것도 모두 교사의 업무라서 밤 10시, 11시까지도 회원을 만나야 할 때가 다반사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선 교육이다 시험이다 하여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시키며 교사를 직원처럼 부려먹었다.
명색이 개인사업자였던 10년 동안, 매달 영업마감을 하면서 그 달에 줄어든 회원을 충당하지 못했을 때는 사무실에서 마치 죄인처럼 얼굴도 못 들고, 그 다음 달엔 그 벌로 하루를 회사의 교육과 홍보로 시작하는 생활이 이어져 왔다. 실적 때문에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실적이 나쁘면 회사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현실, 이것이 개인사업자의 모습인가?
비정규직 아줌마의 바램
그럼에도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3년 전에 힘겹게 만든 노동조합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회사에서는 송탄 서정 지점 교사들이 계약을 강제 해지 당하는 일이 있었다. 회사는 학습지 교사들에게 무리한 실적을 요구하는데, 회원 늘리기의 일환으로 가짜 회원 만들기가 강요되고 있다. 그 지점의 교사들은 평균 20 30명의 가짜 회원에 대한 회비(약 70~80만원) 대납과 이에 따른 카드빚으로 잠을 못 잘 정도의 압박감에 시달려 오고 있었다. 이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교사들이 뭉쳐서 회사의 부당 업무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본사에서는 한달 간이나 업무 감시를 하더니 부당 업무 고발과 노동조합 활동을 한 교사 5명에 대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제 계약해지를 당한 교사들은 지금도 복직을 위해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계약직인 교사들에 대한 회사의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고 교사들은 회사의 횡포를 그대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영업을 잘하여 회원들의 수를 늘리고 그로 인한 이익을 챙기는 것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업을 회사는 어찌 교육이라 이름하는지 아이 키우는 아줌마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든 교사들이 내 맘 같지는 않겠지만, 손해와 불이익을 감수하지만 말고 본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과 행동으로 회사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 나갔으면 하는 것이 이 비정규직 아줌마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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