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의 노동생각] 봉제공장 노동자인 엄마는 퇴직금을 받게 될까?
봉제공장 노동자인 엄마는 퇴직금을 받게 될까?
김보영 : 여성노동센터 회원, 여성주의인권위원회
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쯤부터 봉제공장의 시다로 일하고 계신다. 그 돈으로 용돈을 받아쓰면서도 학교 다닐 때는 내놓고 말하기 좀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나도 돈을 벌면서 살다보니, 직업의 귀천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또 노동자로서의 엄마의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엄마가 한 10년째 다니고 있는 곳은 옷을 만드는 공장이다. 간혹 열쇠를 두고 와서 엄마 일하는 곳에 가게 되는데 사장 아저씨와 재단사 아저씨를 빼면 나머지는 다 아줌마들이다. 40대 안팎이 젊은 편이고, 56세인 엄마는 나이든 축에 속한다. 직원은 10명이 좀 넘는다. 평일에는 아침 9시부터 7시까지 일하고, 토요일은 6시에 끝난다. 집과 공장이 가까워서 10분전에 나가면 된다. 하지만 일이 많을 때는 밤 10시까지도 일을 하는데, 수당을 따로 주진 않는다. 그러면서도 결근을 하게 되면, 하루 3만원씩 공제한다. 명절 때는 시장이 놀기 때문에 휴가가 긴 편이지만, 그 외의 공휴일에는 쉬지 않는다. 게다가 명절이나 여름에 몇 만원씩 주던 보너스도 그나마 경기가 어렵다고 사라진 후 회복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일하시는 아줌마들 집이 공장 근처이기 때문에 일하는 중간에 집에 다녀오기도 한다. 예전에는 점심을 따로 주지 않아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점심을 드셨다는데, 요즘은 대부분 공장에서 점심과 간식을 주는 추세라고 한다. 엄마 공장에서도 우유나 빵 같은 것을 간식으로 받는다. 하지만 늦게 끝나는 날에는 저녁을 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9시에 끝나고 저녁을 줬었는데, 요즘에는 10시에 끝나고 그냥 오시는 날이 많다.
또, 엄마가 일하는 곳은 '5인 이상의 사업장'이지만, 4대 보험 중 어디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고, 퇴직금도 당연히 없다. 게다가 이 공장은 사업자 등록도 안 되어 있다. 작년에는 같이 일하던 아줌마가 일을 못 한다고 해고당한 적이 있는데, 구청에 신고를 한 모양이다. 조사 받고 벌금 몇 백만원을 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또 사업자 등록을 해지했다. 아무래도 세금보다는 벌금이 쌌던 것 같다. 그나마 나은 것은 공장의 분위기가 가족적이라는 점이다. 아줌마들끼리 찜질방도 놀러가고, 먹을 게 생기면 서로 나눠먹기도 한다. 트여 있는 공간에서 일하고, 또 다들 사는 게 고만고만하니깐 연속극 이야기부터 가족문제까지 다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공장 일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이야기는 조심스럽다고 한다. 사장 부인도 같이 나와서 일하기 때문이다.
진작부터 일감이 중국으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긴 했지만, 요즘에는 더 심해져서 봉제 공장 경기가 최악이라고 한다. 지난달부터 일감이 확 줄어서 1/3 정도는 일을 하지 않았다. 물론 안 나간만큼 월급은 적게 나왔다. 그래서 엄마는 슬슬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보려 하고 계신다. 그만두는 엄마는 10년 가까이 일해 온 야간근로 수당은 고사하고 퇴직금 한 푼 받지 못 할 것이다. 돈 천만원은 족히 될 돈을 못 받는다는 게 너무 아까워서, 엄마에게 퇴직금을 악착같이 받아내자고 자주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는 엄마 망신시키지 말라고 정색을 하고 화를 내신다. '봉제공장 사장은 도둑놈'이라고 욕이나 하지 말던가.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면, 주5일 근무 등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대해 사실 감이 잘 안 온다. 나와 가족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 식구는 다 비정규직이다. 흑흑)
대규모 사업장의 정규직 직원들은 노조를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해 나갈 수 있지만, 이처럼 영세 사업장은 노조는커녕 최소한의 권리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런 아줌마들에게 '권리를 찾으세요'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지는 회의적이다. 엄마와 같은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나이든 아줌마들이라서, 다른 일을 구하기 쉽지 않다. 권리보다는 자리 보전과 얼마간의 급여라도 보장되는 일자리가 더 급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성북구에서 봉제공장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전용빌딩을 건축하고 싼 임대료를 받을 예정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다. 대부분의 봉제공장이 영세해서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지하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성북구에는 1091개의 봉제공장이 있다는 기사도 덧붙여졌다. 그 공장에서 평균 7명 정도씩 일한다고 치면, 그 중에서 4대 보험이 제대로 적용되는 공장이 몇 군데나 될지 의문이다. 어쨌든, 엄마를 설득해서 퇴직금은 꼭 받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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