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여성의 노동과 건강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여성의 노동과 건강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정진주 :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
요즘 웰빙 바람을 타고 매스컴에서 야단스럽게 떠들고 있는 것은 운동, 취미, 음식, 여행 등이다. 웰빙(well-being)이란 말 그대로 '잘 존재한다', '잘 산다'라는 뜻이다. '잘 산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각자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에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여성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는 가정과 직장이 있다. 최근 직장여성이 증가하면서 직장생활이 여성에게도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일터가 개인의 건강상태에 점차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웰빙은 직장에서의 건강보호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직장과 노동자의 건강, 그 상관관계
그렇다면 도대체 직장과 직장생활을 하는 노동자의 건강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의 경우 각종 위험물질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벤젠, 수은 등 위험한 물질로의 급격한 과도노출이나 소량의 장기적인 노출은 건강을 좀 먹는다. 특히 가임기에 특정 위험물질에 노출되는 것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온다. 90년대 중반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모 전자기업의 특정 위험물질 사용으로 무정자증, 불임, 생리불규칙 등이 나타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임신 중 여성은 위험한 노동조건에서 보호받도록 근로기준법에서 규정되어 있다. 교대제, 야간근무, 일정 중량물 이상 들기 등은 임산부를 위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여성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임금손실에 대한 기업측의 우려와 여성노동자의 목소리 약화로 이러한 근무를 거부할 수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편 최근 노동자에게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근골격계질환(목, 어깨, 팔, 다리 등이 쑤시고 아픈 질병)은 단순반복적인 작업, 무거운 물건 들기, 장시간 노동, 노동강도 증가 등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대 직업병이다. 외국의 경우도 근골격계질환이 직업병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자본주의 생산방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여성은 특히 성별분업에 의해 소위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남성과 달리 중량물은 아니지만 가벼운 물건을 더 자주 든다는 사실이나 사무직, 서비스직 등에서 종사하는 업무로 인해 근골격계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아주 크다. 근골격계질환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나 좋지 못한 상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골병이 들고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될 지경에 이르기 쉽다.
직장과 가정의 양립 - 이중의 스트레스
최근에는 과로사의 증가와 함께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 업무과중, 직장내 인간관계 갈등, 직무를 수행할 때 재량의 정도, 직업 불안정성 등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여성은 특히 다른 건강문제보다 남성에 비해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남성과 비교해 볼 때 여성이 경험하는 각종 직장 내 폭력, 인간관계 갈등의 양상이나 일을 하는데 있어 재량권의 약화 등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게 된다.
또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많은 여성의 경우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하게 되므로 스스로의 감정상태를 억제하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까지 가중된다.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여성은 문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기관 중 특정부위에 각종 질병을 갖게 된다. 또 정서적,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거나 우울증으로 이어지며 심하게 되면 결근이 속출하고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기도 한다.
특히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면서 가사노동, 자녀양육, 노인부양의 책임까지 떠맡게 된 여성의 경우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노동시간의 단축인데 주 5일제는 현재 대기업 남성노동자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약 70%가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대다수의 여성노동자가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과 가정-직장 양립을 위한 기반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제까지 여성의 일터와 건강이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를 몇 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결국 여성의 건강은 일터 즉 노동환경의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물리적, 화학적, 심리적인 노동의 측면을 포함하며 특히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산업, 업무 등의 특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강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우리 나라에서는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즉 예방과 관리를 위한 법이 존재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그 것인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가 쾌적하고 안전하게, 또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노동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의무를 시행하기 위한 사업주의 구체적인 의무사항이 명기되어 있고 대표적인 것으로 당해 사업장이 안전한 곳인지를 측정하는 작업환경측정, 노동자의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건강검진, 노동과 건강에 관한 교육을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산업안전보건교육, 노동자에게 자신이 일하는 노동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물질에 대한 자료를 비치하고 볼 수 있도록 하는 물질안전자료 등이 필수적인 항목이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중소기업에 종사하여 법적,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고 건강상태 측정, 교육 등에 있어서 여성에게 보다 중요하거나 특이한 사항이 부각되고 있지 못하다.
산재보상보험의 문제
한편 노동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부상을 당했거나 질병에 걸리게 되면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보험이 있다. 산재보상보험이 그것인데 병이 발생하면 치료를 받거나, 요양을 하거나, 당분간 쉬고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혜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산재보험은 기업주가 전액 부담하는 것으로 업무로 인한 사고와 질병에 걸렸을 때 의사의 소견서, 사업주의 날인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면 적격 여부를 판정 받아 보험수혜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절차의 복잡함, 사업주의 날인 거부,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소요되는 시간 등으로 인하여 많은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신청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경우 정보의 부족, 직장의 불안정성, 소요되는 시간 등의 이유로 산재보험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높다.
따라서 향후 여성의 일터에서의 건강권 확보는 여성이 일하는 노동환경의 제반 측면이 건강에 영향을 미침을 인지하고, 예방과 관리에 힘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기반마련은 여성운동에서 노동환경과 관련된 건강의 중요성의 부각과 실질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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