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삶 나의일] 여성은 한번도 일하지 않은 적이 없다
여성은 한번도 일하지 않은 적이 없다
최정은영 : 여성노동센터 회원, 여성주의인권위원회
나는 4명이다. 1명은 돈벌이와 상관없이 공부하는 인물이고, 1명은 내가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인물이고, 1명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고, 나머지 1명은 민우회를 한 달에 5번 이상 가고 일주일에 한번 춤을 추러 다니기도 하고 먹고 놀고 여행 다니는 돈만 쓰는 인물이다. 이 네 명은 모두 각자 바쁘다. 돈버는 일을 하건 하지 않건 모두 쉴새없이 일하고 생각하고, 지껄이고, 행동한다. 이 4명은 모두 자기가 바쁘게 일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4명 모두 일상 생활에서 삶의 지혜를 쌓기 위해 끊임없는 구상노동을 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잘 하기 위해서 매 순간 감정노동을 하며, 각각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실행 노동을 한다. 내가 나를 4명으로 부르는 이유는 '여성은 한번도 일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이다. 여성들에게 있어서 일이란 곧 삶이다. 일하지 않는 여성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내 스스로에게 가끔 하는 질문이 있다. '행복하니?' 라고. 어떨 때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행복한 것 같다. 잠의 부족으로 그렇지 않아도 빼꼼한 눈을 억지로 크게 떠야할 때도, 하는 일이 많아서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도 다 하지 못할 때도, 산더미 같이 쌓인 일 앞에서 무상하게 졸 때도, 머릿속은 복잡한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모두 다 행복한 순간들이다. 나는 특정한 직업이 없는 학생이다. 하지만 학생으로서의 공부가 나의 삶의 전부이고, 나의 일의 전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일이 내 삶의 전부이고 내 삶이 곧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내년이면 서른 두 살이 되고, 만년 학생이고, 대학교 3학년 이후 여성학의 길에 접어들어 지금까지 이 한 길을 가고 있다. 머무르고 안주하는 삶이 싫어서, 일하지 않고 쉬는 삶이 싫어서 나는 '여성학'이라는 실천적인 학문을 선택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학을 하건 하지 않건 여성들은 생활 속에서 실천적인 지혜들을 만들어내는 학문을 이미 하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건 일과 삶을 일치시켜야 할 소명을 갖는 것과 같다. 무슨 일을 하든 내 삶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진행되는 모든 것에 태클을 거는 것인 셈이다. 그래서 일까? 내가 있는 곳은 어디든 조용한 곳이 없다.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학교 상담소에서 일하고 있고, 대학원생들의 집단상담도 맡고 있고, 일주일에 이틀은 '모성'연구를 하며 돈을 받고 또 이틀은 수업과 수업준비를 하고, 일주일의 하루는 춤을 추러가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민우회에 가고, 일주일에 3일 이상은 집에 들어가고, 집에 들어가는 날은 집안 일을 한다. 학교에서는 구상노동에 가치부여가 안 되는 것에 분노하고,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 나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연구에 출처 없이 가져가는 것에 분노하고, 나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미시적인 경쟁에 분노하고, 민우회에서는 일주일 동안의 TV 프로그램들에 대해 평하느라 시끄럽고, 집에서는 가사노동과의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느라 분주하고, 춤추러 가서는 몸과 마음의 따로 노는 소리로 시끄럽고, 하루하루 이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생각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이 얼마나 행복한 시끄러움들인가! 내가 시끄러울수록 내가 사는 공간과 내 삶이 윤택하진 않지만 늘 밝게 웃고 있지 않은가!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행복한지. 그리고 그게 싫증 나면 '나는 인생의 어디쯤 와 있을까'를 생각해 보자. 하루하루 일분 일초도 쉬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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