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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성폭력: 보이지 않는 폭력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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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0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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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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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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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114
사이버 성폭력: 보이지 않는 폭력에 관하여
'너랑 나랑 이틀 전에 여관에서 잤잖아'
<대화방에서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국내 모 통신망의 온라인성폭력 피해자 진술서 중에서>
'보지를 찢을 년들, 자기 아버지한테 강간당할 년들, 나 원래 군대 안가도 되는데 가산점 받으려고 억지로 군대갔다말야. 내 3년 물어내라. 보지에다 수류탄 집어너서 포파시키겠다.'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 게시판의 게시물 중>
'자지가 계속 커져서 미치겠어. 네 보지에 집어넣고 싶어'
'날씨가 더운데 시원하게 내 자지 좀 빨아봐' <핸드폰에 찍힌 음란 메시지: 한국여성민우회 상담사례 중에서>
최근 들어 인터넷과 피시 통신 등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폭력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얼굴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오로지 문자로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과연 성폭력이라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심지어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들조차 분노와 공포, 두려움, 수치심, 모욕감 등 현실 공간에서의 피해와 똑같은 심리적 후유증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겪은 것이 과연 성폭력에 해당하는지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정당한 피해'로서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할 경우,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고 사이버성폭력은 결국 가시화되지 못한 채 사이버공간의 얼굴 없는 가해자들은 또 다른 성폭력을 반복하게 된다. 사이버성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건 '폭력'에 대한 통념 때문인 것 같다. 폭력이라고 하면 먼저 연상되는 것은 흉기를 들고 위협하거나 신체적인 손상을 입히는 행위, 즉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일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성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피해상황이 더 드러나기 어렵고 더 위협적일 수도 있다.
'보지야, 오늘밤 알바 할래?' (성인 남성이 매매춘을 제안하는 내용)
이제 막 피시통신을 시작한 한 여성이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쪽지(메모)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저 일시적인 불쾌감만을 느낄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심한 모욕감과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피시통신을 처음 시작한 여중생이 음란메시지를 받고 그 충격으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욕감과 공포감은 이 여성이 피시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고 더 큰 세상과 만나고자 하는 의지를 결정적으로 꺾어버릴 수도 있다. 이제 더 이상 이 여성에게 피시통신과 인터넷은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언제든지 불특정다수의 가해자들로부터 공포와 분노, 모욕감을 강요받게 될 가능성이 도처에 깔린 폭력의 지뢰밭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구든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이버성폭력은 '그냥 장난인데...', '뭐 그 정도를 가지고...'라는 말로 쉽게 잊혀지거나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폭력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모든 폭력은 그것을 경험한 이들, 특히 통신공간이 아직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 불쾌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해 통신공간에의 참여 의지를 위축시킨다. 사이버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들 역시 심각한 정신적 충격과 함께 통신공간을 위협적이고 공격적으로 느끼게 되어 통신활동이 위축되고 결과적으로 사이버 활동에서 소외되고 배제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버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인 동시에 <자유롭고 편안한 환경에서 통신 활동을 할 권리>에 대한 침해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이 지속적으로 잠재적인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건 그만큼 사이버 공간 역시 불평등한 공간임을 의미하는 것 같다.
피시통신과 인터넷이 현대인의 중요한 생활영역으로 자리잡으면서, 이제 사이버공간 역시 또 하나의 성폭력의 지뢰밭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버공간 역시 사람들이 소통하고 만나는 공간이라면 마땅히 민주적인 인간관계와 사회적 정의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사이버공간을 성적 인권의 사각지대로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이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해 인식하고 이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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