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활동참여기] 우리들의 송년회
우리들의 송년회
김 나 현 : 여성노동센터 회원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송년회다. 임신 이후 사교(?)의 범위가 아주 좁아지면서 매우 썰렁하고 한가한 연말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며칠 전부터 설레임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약속시간이 조금 넘어 송년회 장소에 도착했다. 노동센터만의 송년회라 해서 단출한 분위기일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북적북적하고 어수선한 게 진짜 파티 기분이 난다. 신입회원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이외에는 대부분 낯선 얼굴들이지만 모두 친절해서 별로 어색하지가 않고 왠지 맘이 편안하다.
어느 정도 자리가 정돈되고 서로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이름, 나이, 직업 등을 열거하는 그런 진부하고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가 아니다. '자신이 특별히 더 집착하는 것과 집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란다.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라 당황스럽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 만만찮은 질문에 다양하고 재치 있는 답들이 쏟아졌다. 나처럼 게으르고 지저분한 사람도 있고 강박적일 정도로 깔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중도덕을 엄격히 지킨다는 사람 등 모두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소모임 활동 내용도 노래를 개사하여 부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표를 한다. 열심히 발표한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너무 재밌어서 배를 잡고 웃으면서 보고 나니 각 소모임들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명확하게 머리에 남지를 않는다. 재밌고도 쉬운 영작을 선보인 소모임도 있었고, '올챙이' 노래에 맞춰 싸이월드 등의 아바타와 관련된 성차별성을 풍자한 소모임도 있었다. 오늘 어느 소모임에 들어갈지 결정하려고 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모두 열심히 활동하고 분위기도 좋은 것 같으니 어디든 괜찮을 것도 같다.
배부르게 저녁식사를 하고 팀을 나누어 하는 공동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민우회 행사 때마다 느끼는 건데 밥은 진짜 확실하게 챙기는 것 같다. 아주 마음에 드는 문화다. 우리 팀은 '월드팀'이었는데 몇몇 원로(?) 분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올드팀'이 되었다. 노래부르기 게임, 몸으로 단어 전달하기 게임을 하는데 나만 빼고(^^) 우리 팀은 정말 선전했다. 다른 팀 할 때는 '에이 저것도 못 맞추나' 했는데 앞에 나와서 해보니 정말 어렵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여선생 대 여제자', '자다가 가위눌렸다' 등등. 이런 것들을 어떻게 몸으로 표현하나. 예상치 못한 줄줄이 말해요 게임. 깐 콩깍지 안 깐 콩깍지, 박 법학박사가 어떻고, 쇠창살이 나오는데, 역시 민우회 회원들은 머리회전 뿐 아니라 언어실력까지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창 게임을 하고 노는데 사람들이 까페의 주인장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회원의 남편이자 본인도 역시 민우회 회원이란다. 남편에게 친구와 영화를 본다며 거짓말을 하고 나온 나와 너무 비교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민우회 활동을 공유할 수 있는 그들이 무척 부러웠다.
마지막 순서로 선물을 나누면서 각자 새해 소망을 적어 소망나무에 장식했다. 내가 받은 선물은 이주노동자를 그린 동화모음집이었다. 돌아가면서 진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새해 소망을 이야기해 본다. 취업이나 가정의 행복처럼 개인적인 소망에서부터 이라크 전쟁 종식과 세계 평화까지 참 다양한 내용들이 나왔다.
흔히 '송년회'라 하면 대화는 단절된 채 의미 없이 흥청망청 먹고 놀고 망가지기만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민우회의 송년회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함께 나누고 맘껏 즐길 수 있는 자리였다. 모두들 열정적이고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비록 이제 막 신입회원 딱지를 뗀 신참이지만 내년에는 나도 당당하게 이 사람들과 한 모임에서 같이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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