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영화관]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이방인이 되어야 하는가 : 《브레이브 원》
얼마전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날 추모 현장
에서 나는 많은 여성들이 울고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사실 그 당시의 나에게, 그 모습은 다소 신기하게 다가왔다. 물
론 나는 이번 사건을 접하고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여성들은, 마치 주변의 가까
운 누군가가 죽은 것처럼 애달프게 울었다. 아니 터져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날, 그 현장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사람들과 스터디를 하거나 교육을 받으며, 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율이 높고
사건 하나하나가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
끼기도 했다.
하지만 남성으로서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에선 슬픔보단 분노가 더 높은 비율을 차지 했다. 나는 도대체 가해자는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지에 대해 무척이나 분개했다. 말하자면 그 당시의 남성으
로서 나에게, 여성 폭력이란 분노하고 해결해야 할 하나의 사회 문제로 다가왔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이번 사건 이후였다. 나는 이번 사건을 주제로 몇건의 글을 기고했다. 글을 쓰며 나는 추모 현장
에 붙여진 무수한 쪽지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 쪽지들에는 사건을 정리한 기록이 아니라, 당사자로서 여성들
이 느낀 감정과 목소리들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거기에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여
성이라는이유만으로 표적이 되는 상황에 대한 슬픔이,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막막함이 담
겨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추모 현장의 풍경이 이해가 갔다. 그것은 ‘나도 겪을수 있는 일’ 이기에, 피해자는 ‘나와 같
은 사람’이기에, 추모 현장의 여성들은 울음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글을 쓴 이후 나는 우울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책상 앞에 앉은 나는 계속 멍했고 무언가를 쓰거나 읽기가 힘들었다.
참다못한 나는 한 지인에게 연락했다. 나의 고충을 듣던 지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힘들죠. 그런데 궁금하네요. 그걸 쪽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는데도 그렇게나 힘든데, 몸 속에 그 감
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떨까요? 그리고 그 감정을 끊이지 않고 느껴야 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제서야 나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작 몇일을, 그것도 간접적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고선 이것이 일상인
사람에게 힘들다는 말을 했구나.
그리고 질문하고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이러한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이런 사회
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어떠한가에 대해서.
그 때, 나는 예전에 보았던 영화 <브레이브 원>이 떠올랐다. 영화의 주인공 에리카는 뉴욕의 소리들을 모아 방송하
는 라디오 진행자다. 그만큼 그녀는 도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캐릭터다. 그러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폭력 범죄의 피
해자가 되고, 이 일로 자신의 약혼자를 잃고 만다. <브레이브 원>은 그런 그녀가 사건 이후에 겪는 변화를 다룬 내용
이다.
이 영화에서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는 그녀가 범죄 피해자가 된 이후, 긴 칩거를 접고 다시 홀로 길거리를 나서는 장
면이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줄곧 뒤틀린 각도를 유지하며 거리로 나서는 에리카를 잡는다. 그녀의 주변을 걸어가
는 남성들의 발걸음 소리, 그녀의 주변을 스쳐가는 스케이트 보드를 탄 소년이 내는 바퀴소리는 이 장면에서 유독 더
욱 크게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에리카는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움츠러들거나,
그 남성과 다시 가까워지지 않기 위해 발걸음이 빨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두려움 속에서 에리카에게 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그녀에게 들리는 소리들은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는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이런 에리카가 다시 라디오 진행자로 복귀하고 일상을 시작하자 그녀와 친분이 있는 형사가 묻는다. 고통이 컸을텐
데 어떻게 극복했냐고. 그러자 에리카는 이렇게 답한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고.
이런 그녀의 대답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그것은 한 때 사랑했던 도시를 다르게 바라볼수 밖에 없다는, 한 때 자유롭
게 걷던 거리를 다르게 걸을수 밖에 없다는, 한 때 아무런 위험이 되지 않았던 낯선 남자들을 다르게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는,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위협을 느끼지 않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갈수 없는, 그렇기에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것 말이다.
사건을 겪은 후 복귀한 첫 라디오 방송에서, 에리카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
해하지 못했다고. 밤길을 겁내는 여성들, 어둠과 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것은 나약
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녀는 공포를 경험하며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존
재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잠복해 있었다고.
어쩌면 그 상황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 쪽지를 붙이던 여성들이 처한 상황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자신이 살아
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걷던 거리에서, 자신이 사랑하던 공간에서 끊임없이 불안과 공포를 느껴야하는 상황.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 사회를 다르게 보고 살아가야하는, 생존하기 위해선 이방인이 되어야하는 상황.
만약 이러한 상황이 몇몇 개인이 처한 것이라면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특정 성별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문제다. 특히나 그러한 삶이, 사회적으
로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에서 출발했다면 말이다. 이번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벌어진 사건의 양태와 추모
현장에 등장한 무수한 목소리들은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한다.
때문에 나는 남성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아니 강하게 요구하고 싶다. 이 이방인의 위치에 서보라고. 그 감정에 이입
해보라고. 그리고 이를 통해 어찌할수 없는 막막한 불안과 공포, 분노와 우울을 느꼈다면 상상해보라고, 그것이 일상
인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변화하라고. 이러한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생존하기 위해 이방인이 되어야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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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머프
민우회 회원. 안 그런척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새침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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