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영화관] 우리가 선 곳이 종착지는 아니다 : 《처음 만나는 자유》
많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신 질환 증상’을 일탈적인 것으로 여기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인생의 보편적인 과정이
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삶의 모순과 혼란함, 인생의 유한함과 자기 스스로의 한계를 처음 자각하는 시점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격렬해지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유년 시절 죽음이나 자해에 대한 충동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이제 막 직면
하게 된 삶의 부조리 앞에서, 그 막연함을 신체적 고통으로 덮어버리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욕구. 나를
괴롭게하는 문제가, 다름아닌 내가 평생을 살아갈 삶 속에 내재된 것임을 알게 될 때 회피를 꿈꾸는 것은 누구나 당연
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태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삶의 모순과 혼란, 그리고 죽음이 너무도 보편적인 나머
지 그것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혹은 ‘어른’의 세계로 접어들고 자잘한 생활의 문제들과 씨름을 하다보면, 너무도 큰 삶
의 문제들을 고민할 시간조차 사라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익숙해지거나 혹은 까먹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점에 접어
들기까지 혼란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누구나 삶을 질문하고, 그 질문 앞에서 방황하거나 혹은 무너지고, 결국은 그
질문에 갇혀버리는 시기는 한 번쯤 겪곤 한다.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의 주인공 수잔나가 바로 그런 캐릭터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그녀의 삶은 혼란
으로 가득차있다. 그녀는 죽음이라는 명징하지만 막연한 문제와 직면하고 그 문제를 계속해서 고민한다. 그런 그녀에
게 그 선택지가 한정적인 진로의 문제나 허례허식으로 가득찬 중산층의 삶은 부조리한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
다고 그녀가 자신의 고민을 토로할 공간도 부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가 멍청하다고 여기거나 수잔
나가 대책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그녀가 사랑했던 토비처럼, 죽음이 당면한 실제적인 문제가 되어버
려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길 거부한다.
이런 숨막힐 듯한 상황 속에서 수잔나는 고립되고 외로움에 휩쌓인다. 그녀는 삶 전체가 모순과 그것을 덮는 거짓말의
향연이고,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나머지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여긴다. 누구와 나누어도 무게가 만만치 않을 질문 앞에
서, 그녀는 그것에 홀로 짓눌리고 고통을 느낀다. 결국 수잔나는 보드카 한 병과 아스피린 한 통을 모조리 삼키게 되지
만, 끝끝내 죽기 위해 그러진 않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단지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랬다고 답한다. 나는 그런 그녀의 말
을 믿는다. 생애 처음, 홀로 그런 무겁고 막연한 문제와 마주한 사람이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오히려 그것은 아스피린
한 통으로도 해결하기 부족한 종류의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수잔나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고, 그녀는 거기서 영화의 또 다른 주요 캐릭터 ‘리사’를 만나게 된다. 첫 등장
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그녀는 그야말로 정신 병동의 터줏대감이자 환자들의 실질적인 리더라고 할만한 인물이다.
리사는 병동을 마치 자기 집처럼 누비며 혼란과 소소한 반항들을 이끌어 낸다. 또한 환자들을 이끌고 밤중에 몰래 의사
의 사무실에 잠입해 진료 기록을 읽히고 그것을 비웃게 만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병원의 권위에 대항하고, 의사
들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캐릭터다. 마침 병원의 상담과 치료에 갑갑함을 느끼고, 그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던 수잔나는 그런 그녀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렇게 수잔나를 가두던 사회는 병원으로 치환되고, 그녀는 리사와 함께 일탈을 수행함으로서 자유를 성취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다. 마치 일탈과 혼란 속에서 자유를 쟁취하는 것처럼 보이던 리사가,
사실은 그런 삶에 갇혀 있을 뿐임이 밝혀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저항을 위해 혼란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상태에 익숙해져 버린것 뿐이다. 때문에 리사는 주변 환자들을 자기와 비슷한 조건에 묶어두고, 퇴원 후 다시 사회로 복귀
하는 사람들에게 증오심을 드러낸다. 병원 밖 세계가 그럴 가치가 없는 곳이 될 때에만, 그녀의 삶이 진실된 것이 되기 때문
이다. 이를 간파한 수잔나는 영화의 마지막 리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자유롭지 않아. 네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곳은 여기 뿐이니까.’
삶의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 그리고 그것을 처음 마주했을 때 누구나 혼란과 막연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어느 세계인지, 나는 어디에 발을 뻗고 서있는지를 질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시간도 흐르
고 삶도 흐른다. 수잔나가 그랬고, 아예 그것이 삶 전체가 되어버린 리사가 그랬던 것처럼, 언제까지 그 질문에만 발
이 묶여 있을 수는 없다. 실상은 인생의 풀지 못할 그 문제의 답을 구하고 삶을 시작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의 사람들은 삶의 모순과 부조리와 부대끼며 언젠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은 다소 끔찍한 사실이지만, 그렇
다고 그것만이 삶의 모든 것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간호사인 발레리는 수잔나에게 말한다.
‘중요한 건, 여기가 종착지가 아니란거야’
결국 수잔나는 발레리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모두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성실하게 상담에
임하며 자신의 머릿 속에 든 모든 것들을 꺼내놓는다. 그렇게 글과 말로서 자신의 생각과 대면하자 막연했던 많은 것
들이 명확해지고 그녀는 깨닫게 된다. 어디까지가 그녀가 홀로 온전히 감당해야 할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세상이
거짓과 허위로 가득 차있다고 해도, 그 속에서의 삶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조리와 모순을 벗어난 삶을 사는 것
은 불가능하며, 내 인생이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온전히 나의 책임은 아니다. 완벽하게 좋은, 틀을 벗어난 삶을 살
책임이 내게는 없다.
삶의 유한함도, 사회의 위선과 허위 의식도, 틀에 박힌 인생도 계속해서 직면하다 보면 그것이 너무나도 보편적인 나머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것에 너무 많은 신경을 쏟지 않을 때, 우리는 그만큼 움직일 공간
을 확보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의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 지점이 더 나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 한채 망연하게 서 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비루할지라도, 나는 삶에 무너지기보단 그것을 살아보고 싶다. 우리가 선 곳이 종착지는 아니다.
=====================================
글/ 스머프
민우회 회원. 안 그런척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새침데기
=====================================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