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다방] 회원 바미와 소이를 만나다.
탐나는 다방은 회원이 회원을 만나서 그들의 놀이터 또는 삶터에서 일상에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올해는 탐나는 다방의 폭을 조금 더 넓혀서 회원이 회원을 또는 활동가가 회원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해줄 탐나는 다방 활동가가 간다의 주인공은 회원 바미와 소이입니다.
회원 바미는 2014년에 신입회원 만남의 날을 시작으로 지금은 민우회 소모임 “순하리”에서 활동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회원 소이는 그런 바미를 민우회로 이끌어 주고는 베일에 싸여 계신 회원분이랍니다.
우리는 10월25일 바미의 일터 주변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소이가 절 민우회에 오게 했어요
바사: 어떤 계기가 되셔서 민우회 회원이 되어주신 걸까요?
바미: 소이가 절 민우회에 오게 했어요. 신입회원 만남의 날에 함께 가자고 해서 같이 신청했는데
당일 날 사정이 생겨서 저 혼자만 오게 되었죠. (흘깃)
소이: (웃음) 그 당시 직장이 선릉이어서 간다고 해도 중간 정도에 도착해야 했고, 거리도 멀다보니
심리적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최근 백수가 되면서 민우회에서 주최한 정희진 선생님 강의도 들었어요 (웃음)
바미의 가입 계기가 저의 제안이라고 했지만, 저도 민우회 회원으로 가입한 초기였고, 진짜 흘리듯이 말했는데
덥석 가입을 하고는 정말 열심히 활동을 해서 놀랐어요.
바미: 평등한 조직문화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회사에서 직장 내 성희롱사건이 있었거든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경험을 친구, 남자친구에게 얘기하면서 공감과 지지도 받았어요. 소이에게 얘기하는 과정에서
민우회를 소개 받게 되었어요. 당장 가입했죠.
저도 소이처럼 처음엔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지만 어디를 가든 처음엔 다 어색하잖아요. 그 어색한 시간만 견디면
괜찮아진다고 말해드리고 싶네요. 지금도 즐겁게 활동하고 있고요. (웃음)
“남자들은 앉아서 싸라”
바사: 두 분이 친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알게 되셨고, 여성주의는 어떻게 접하게 되신 걸까요?
바미: 대학에서 만났어요. 같은 과에 여성주의 학회도 하고 그리고 학내 신문사까지 함께 했죠.
여성주의라는 것을 처음 접했던 것도 대학 때 였어요. 과가 정치외교학과여서인지 소수자에 대한 민감성이나
토론문화가 잘 형성이 되어있어서 여성주의 학풍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술을 강권하지 않아서
사발식 같은 건 없었고요. 싫은 것을 강요하지 않았죠. 웃긴 얘기를 하나 하자면 처음 학과 MT를 갔을 때
선배들이 “남자들은 앉아서 싸라” 하는 말을 들었죠. 오, 이것이 여성주의? 했죠(웃음)
그러면서 새터 활동 등을 통해 여성주의를 처음 접하게 된거죠. 물론 그 당시에도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한두 명씩은 있기 마련인데, 학과 분위기가 이러하다 보니 함부로 나대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학교를 가보지 못해 잘은 모르지만 총여나 여성주의 학회등 여성주의 모임이 설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는 것을 보면서 아마도 그런 학풍을 이어받은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보네요.
여성주의적 생각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되었던 건 캐나다로 3학년 2학기 때 1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부터 였던 것 같아요.
소이: 청소년 시기부터 우연하게 사회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중고등학교때 신문을 많이 봤는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이지 않았나 싶어요. ㄷ신문사를 읽으셨거든요.(웃음) 그러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신문2개를 의무적으로 배치 해놓으셨어요. 1부는 소위 진보라고 하는 ㅎ신문사 1부는 보수라고 하는 ㅈ신문사 것이었어요.
선생님이 한쪽만 접하면 그것이 진실인줄 아는데 그게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하며 너희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하셨죠.
그런데 정말 같은 사안인데도 전혀 다르게 보도가 되는 것을 보고 그때 받은 문화적 충격이 저에겐 굉장히 컸어요.
그러면서 역사를 보는 시각도 넓혀지게 되었고. 고3때 진로를 결정할 때 무작정 정치외교학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학에 와서도 그런 관심과 호기심이 모여져서 여러 학내 활동에 참여하면서 여성주의를 접하게 된 거죠.
캐나다의 분위기는 달랐어요
바미: 교환학생 그 전까지는 계획된 삶을 위해 그저 아둥바둥 열심히 계획하고 노력해야지만 소위 한국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밖에는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캐나다의 사회 분위기는 정말 여유 있고 느린 거에요.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그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학내 다양성문화주의를 추구하는 모임에 참여했었는데, 페미니즘과 인권, 소수자에 대한 여러 일들을
접하게 되면서 삶의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면서 저의 본격적인 여성주의가 시작 되었어요.
바사: 두 분 닮은 듯 아닌 듯 전혀 다르게 삶을 살아오셨군요.
소이: 지금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첫 직장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대기업 취업준비만 하다가, 우연히 신생 스타트업 회사에서 인턴생활을 했는데 처우나 보수는 좋지 않았지만
구성원들이 합리적으로 토론이 가능한 조직 문화였어요. 역설적이긴 하지만 저도 친구들과 똑같이 대기업으로 갔다면
별고민 없이 열심히 회사 생활하다가 퇴직이후의 꿈을 꿨을 거 같아요.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행동의 범위가 더 넓어졌고 부담 없이 생활하다보니 일도 더 잘되고 했던 거 같아요. 혼자 여행이라면 그 이전 까지는
용기가 없어서 상상도 못했던 행동인데 여행도 가게 되고 자유를 얻게 된 것 같아요. 최근에 스페인 여행도 갔다 왔답니다 (웃음)
처음엔 아무래도 주변과 비교하게 되니 첫직장이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선택이 나쁘지 않았고, 최근에 그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저의 선택은 옳았던 거죠.
- 체력의 한계를 느꼈지만 자유를 알게된 소이의 스페인 여행 -
직장 내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고 싶어요
바사: 바미의 직장 생활은 어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나요?
바미: 이상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 사람보다는 얘기가 되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고
복지제도도 잘되어 있고, 업무의 특성상 개인의 만족과 성취감도 있지만 내 일이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일도 있다 보니 보람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저를 기준으로 원을 점점 더 크게 확장하며 살고 싶어요.
나를 돌볼 줄 알고 그리고 내 가족, 내 주변과 사회로 점점 더 관심을 키우면서요 여성주의가 저에게 다가 왔던것처럼요.(웃음)
먼 나중에 꿈이라면 퇴직이후에는 돈을 버는 게 1의 목적이 아닌 나와 얘기가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여성주의 북카페 같은 걸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질 꿈이라면 직장내에서 여성주의를
계속 실천해 나가고 싶어요. 최근에도 폭력예방교육이 있었는데 인사과에서 신입여사원들만을 대상으로
준비한다는 소리를 듣고 문제제기를 해서 남녀사원 전체대상으로 변경되었어요.
그리고 좀 더 직급이 올라가게 되면 노조집행부에 여성부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답니다.
그리고 좋은 페미니즘 책이 있으면 읽고 남자친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책을 사서 선물하는데 10권정도 읽히고 싶어요. (웃음)
- 바미가 추천하는 올해의 책 문학과 지성사 [사람장소환대] -
바사: (웃음) 정말 생활 속에 여성주의를 실천하고 계시네요. 소이는 어떤 삶을 꿈꾸시나요?
소이: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최근 직장을 그만 뒀어요. 하지만 생활을 하려면 돈이 필연적이잖아요.
내가 원하는 삶과 지속가능한 수입을 찾고 싶어서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건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야할지
계속 고민하면서 실천도 해보고 있어요. 그 예로 친구랑 안동을 놀러 갈 일이 있었는데 우연 의성이라는
작은 마을 사과농장 사장님을 만났고 마인드는 깨어있는데 마케팅은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하시는 것을 보고
그 친구랑 페이스북 마케팅을 도와드렸어요. 지금은 조금 더 확장되어서 다른 정보사업 외주를 받기도 해요.
앞으로 이런 일들을 통해 대안적인 직업을 찾고 싶어요.
바미, 소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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