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영화관] 여성 캐릭터를 존중할 때 영화가 얻을 수 있는 것 : <미스 슬로운>
여기 한 로비스트가 있다. 거대 로비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 사람은 어느날 총기 규제 법안을 좌절시키는 일을 맡으라는 요구를 받지만 자신의 신념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회사를 뛰쳐나와 규제 입법 성사를 목표로 하는 회사에 들어간다. 뛰어난 싸움꾼인 이 로비스트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상대의 허를 찌르며 점차 찬성파 의원의 수를 늘려간다. 뿐만 아니라 로비를 위한 대규모 기금을 얻는 데도 성공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와 상대편이 이 로비스트를 직접 공격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한 후 위기가 발생한다. 영화는 이 사람이 결국 청문회에 등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문을 연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이야기라 생각할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움에 나서는 선량한 투사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부류의 캐릭터에서 예상할 법한 윤리적 고고함 따윈 보이지 않는다. 독설은 기본에 주인공은 자신의 동료 조차도 신뢰하지 않고 혹시 있을지 모를 스파이를 찾기 위해 뒷조사를 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아예 이들을 작정하고 미끼로 사용하거나 여론 호소를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도청과 감시와 같은 불법적인 수단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로비스트의 이름은 영화의 제목인 ‘미스 슬로운’이다. 즉 여성이다.
사실 슬로운과 같은 캐릭터가 다른 영화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독단적이고 인간미가 떨어지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들. 특히나 이런 캐릭터들이 여성일 때, 이들은 선량한 주인공의 반대쪽에 놓이며 나중에는 패배를 경험하거나 응징을 당하게 된다. 혹은 다른 경우도 있다. 가령 산드라 블록이 주연을 맡았던 <프로포즈>의 마가렛 테이트를 떠올려 보자. 로맨틱 코메디라는 장르의 특성상 슬로운 보다는 덜 날카로운 면을 보이지만 그녀 역시도 안하무인에 국적을 위해 남자 주인공의 가족들을 모두 속이고 거짓 결혼에 나서고자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녀는 점차 죄책감을 느끼고 결국 사태의 전말을 스스로 밝히고 만다. 물론 결과는 예상하듯 해피엔딩이지만.
이것이 헐리우드의 또 다른 슬로운들이 맞이했던 결말들이었다. 이들은 주인공의 반대에 서서 악행을 저지르거나 혹은 옳은 일을 행하는 경우에는 그에 걸맞게 유순하고 선한 인물로 전환 되어야만 했다. 사실 영화 <미스 슬로운>에도 이야기가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갈 계기들은 존재한다. 슬로운은 언론 앞에 서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에스미를 결국 캠페인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버리고, 이로 인해 그녀가 직접적인 위협에 맞닥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비록 성관계만을 위해 만나지만 슬로운은 미약하게나마 포드와 감정적인 유대를 형성하고 그에게 우발적으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모든 조건은 마련되었다. 이제 그녀는 속죄하고 남자 조연의 구원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미스 슬로운>은 놀랍게도 이 전형적인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일련의 사건 이후에도 슬로운은 그냥 원래의 그녀로 남는다. 슬로운은 다른 사람에게 그런 것처럼 자기 자신까지도 자원으로 활용에 위기를 돌파한다. 그녀의 감정적 흔들림을 엿보았던 포드와의 관계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사실 이런 식의 전개에 논리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결코 냉정을 잃는 법이 없는 차가운 싸움꾼이었으며 살벌한 로비의 세계에서 일말의 약점도 남기지 않고 경력을 쌓아왔을 정도로 프로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 남은 캐릭터다. 슬로운이 개과천선을 하고 다른 사람으로 탄생해도 말은 되지만 그렇지 않는다고 해도 이야기가 이상해지진 않는다.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가 인과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후자가 더 신선하고 재밌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자기 희생의 서사이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이야기가 풍기는 숭고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슬로운의 선택은 이기기 위한 전략 중 하나였고 애초에 누구도 모르게 계획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도입과 마지막, 그녀는 로비스트로서 자신의 원칙을 되풀이 해서 이야기 한다. 로비의 핵심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보다 앞서서 회심의 한 방을 날리기 위한 것이라는. 단지 슬로운은 그 한 방의 수단으로 자신 역시도 삼았을 뿐이다. 순교자의 자리에 여전히 물불을 가리지 않는 싸움꾼이 남을 때 영화의 분위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매우 흥미로운 방향으로 말이다.
즉 <미스 슬로운>은 익숙한 이야기 속에 스트레오 타입화 되지 않은 주인공을 배치하는 것으로 얼마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특히나 이 영화는 주인공이 전형화가 손쉬운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혁신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왜 여성 캐릭터는 유독 감정적이거나 윤리적이고 사려 깊으며, 안 그런 인물도 종국에는 그렇게 되어야만 할까. <미스 슬로운>은 그런 손쉬운 가정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가령 이 영화에서 슬로운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사연이 있어서 총기 규제 로비에 뛰어 들었냐고 질문하자 왜 다들 질문을 하냐고 반문한다. 여성은 그 동기가 그저 자신의 믿음과 승부욕 때문이면 안 되는 걸까?
이 영화는 슬로운의 존재를 부연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녀가 로비스트가 된 이유를 막연히 암시만 할 뿐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 여자가 이렇게 된 이유’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슬로운은 그냥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슬로운과 같은 캐릭터에게 애써 사연을 부여하려는 영화들 사이에서, 그런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미스 슬로운>의 태도는 오히려 슬로운을 독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영화가 부러 슬로운의 행보를 변명하려 하지 않을 때, 관객들에겐 질문의 여지가 생긴다. 결국 슬로운이 정의로운 결과를 이끌었지만 우리는 그녀의 행동에 어디까지 동의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준다.
결론적으로 나는 <미스 슬로운>의 진짜 메시지는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성 캐릭터를 당신이 원하는 틀에 박힌 사람으로 만들지 말라. 대신 그녀의 생각과 방식을 존중하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풀어보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정말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볼 수 있다.
=====================================
글/ 스머프
민우회 회원. 안 그런척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새침데기
=====================================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