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다방](재윤편) 재윤은 왜 그렇게 인터뷰를 걱정했는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처음 만난 민우회의 반아와, 만나자마자 술집으로 직행해서, 별 생각 없이 술 먹고 놀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나 여기 뭘 하려고 왔던거지. 지금 왜 여기 있는 걸까.
아니, 그러니까 이 탐나는 다방은, 비록 ‘후리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인터뷰”잖아.
나는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이고.
“반아님은 민우회 출근한지 얼마 되신거죠? 재미있어요? 오 멋진 전공을 하셨군요! 그럼 그쪽으로 일을 하셨던건가요? 오오 그럼 민우회는 어떻게 지원하신?…”
뭐야 이거. 인터뷰이가 인터뷰어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이건 새로운 알코올 인터뷰 기법인걸까. 아, 술 먹자고 한건 나였지.
반아는 기억력이 좋아요
“근데 반아님, 이거 어떻게 정리하실거에요?”
놀다 놀다 막차시간이 가까워지며 슬슬 걱정이 됐다.
하지만 반아는 인터뷰에 대한 강박과 긴장이 오히려 상대의 얘기를 제대로 듣기 더 어렵게 만들었던 경험을 일러주었다.
뭘 건져야 한다는 강박 없이 자연스레 얘길 나눈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하긴 혹시라도 반아가 녹취기를 앞에 두고 뭔가 준비한 말을 순서대로 던졌다면, 녹취 푸는 사람 열 받게 만드는 인터뷰이의 전형인 재윤씨는 좀 난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반아는 술 마시며 흘린 얘길 기억해서 글을 쓸 수 있구나.
요즘 들어 온몸으로 나이듦을 느끼는 재윤씨는 그 기억력이 놀랍다.
술 마시면 입조심
하지만 술자리의 기억이란 연애와 마찬가지로 늘 각자에게 유리하게 각색된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반아의 손을 통해, 그냥 술 먹고 논 만남이 어떻게 각색될지 궁금해졌다.
“탐나는 다방 보니까 정리하는 스타일이 다 제각각이더라고요. 이 경우는 반아님하고 반씩 나눠서 쓴다거나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오 재밌겠네요!“
취기에 농담으로 던진 말을 반아는 좋은 제안으로 받았다.
해서 당신은 지금,
인터뷰이가 인터뷰어와 손잡고 인터뷰에 대해 말하는
탐나는 다방 초유의 내용을 보고 계신다.
탐나지 않던 다방
반아가 처음 전화를 해서 탐나는 다방을 말했을 땐 거절하려고 생각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민우회 활동가가 직장으로 오는게…
그러니까 그게 좀 뭐랄까…
아니 뭐, 하여간 뭔가 여러모로 민우회에 바람직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적당한 ‘안전빵’ 회원을 택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았는데
딱히 대안이 없었나봐,라고 스스로 합리화해주며 어느새 약속을 잡고 있었다.
이름은 가명으로, 공적 신상은 비공개로, 사진은 모자이크를 부탁하면 되겠군.
게다가 제3의 장소도 무방하다.
‘민우회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장소면 된다는데 딱히 그런 데가 있을리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반아는 평동을 입에 올렸다.
어설픈 평동의 추억
어쨌거나 평동도, 평동 앞의 술집도 오랜만이다.
기이하게도 왠지 내가 다니던 사무실이 있던 곳인 양, 퇴근하고 술을 마시던 동네인 양 반갑고
편했다. 어쩌다 가끔 술자리나 끼고 기껏해야 최근 몇 년간 모임이 있을 때만 들렀던 곳인데 말이다. 반아는 이 동네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하, 신입활동가에게 예전 민우회 풍경을 소개해주어야겠구나.
그러니까 반아님, 저 건물에 민우회 사무실이 있었어요.
4층에 한국여성민우회라는 글씨가…아아 죄송해요. 여기가 아니고 저 앞 건물이네요.
하도 오랜만이라; 저 건물 지하의 술집은 민우회 사람들이 굉장히 자주 가던 술집인데…
어? 없어졌나봐요. 아 여기가 입구네요. 하도 오랜만이라;
평동을 ‘추억의 장소’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재윤씨는 자신이 보기 드문 길치라는걸 잊었다.
당신에게 민우회란
평동으로 오는 길에 문득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재윤씨는 한 활동가의 회원유치 실적을 올려주기 위해 별 생각 없이 민우회 회원이 됐으며, 10년이 넘었다고 착각하던 회원권 보유기간은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고, 사무실이 평동이든 나루든 여전히 별 생각 없는 회원이라는 것.
그래서 반아가 “당신에게 민우회란?”과 같은 예능형 질문을 할까봐 겁이 났다.
물론 반아는 그런 진부한 질문을 하지 않았고, 어차피 그럴싸한 답도 없었다.
난 그냥 회원이니까, 회원은 회원이 할 바를 하면 된다.
재능이 있다면 재능을, 돈이 좀 생기면 돈을, 머리수가 필요하면 머리를 제공하는 것 같은.
반아에게도 말했지만 민우회는 출중하고 빼어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니까,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한다.
그리고 반아가 묻지 않은 질문들
Q. 민우회와 관련해 특별한 애장품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A. 바로 이것이다. 2007년 나루 건립 후원을 하고 사진을 보내면 타일액자를 만들어줬다.
큰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냈고, 민우회가 준 가장 좋은 선물이다.
Q. 사진의 고양이를 안다. 그 유명한, 시루떡 색을 가졌다는 시루 아닌가.
A. 지금은 머루라는 딸아이도 함께 있다.
Q. 머루의 모습도 진심 궁금하다. 사진이라도 보면 소원이 없겠다.
A. 그렇게 원한다면 보여드리겠다. 자 여기,
Q. 반아의 사진을 찍었다던데.
A. 그렇다. 맥주 몇 잔 드신 반아다. 좀 취해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나도 뭔가 써야하니 일단 사진부터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무릎팍도사 폐지 관련 질문이다. 당신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
A. 꿈이나 전망은커녕 당장 내일이 걱정이다. 나 좀, 아니 저 좀 도와주세요.
Q. 그렇다면 민우회를 위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두 가지만 말해보라.
A. 지금 질문이 연결된다고 생각하나. 어쨌든 기존의 연간 회원유치 실적 0.5명을 넘어 2012년 까지 회원 10…아니 5명을 유치해오겠다. 그리고 다음 달에 회비를 올리겠다. 8년 만에 처음이다.
(끼앗)가끔 해야지 생각만 하다 잊고 지나갔는데 이게 다 탐나는 다방 때문…아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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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편의 미디어를 접한느낌 이네요 ㅍ
재윤, 잼있다. ㅋㅋㅋ
ㅋㅋㅋ 요런 구성 매후 재미지네요!
반아가 질문하지 않은것들 재미나네요!ㅎㅎ
재윤님과는 전화로만 인사를 했던 모후아입니당!ㅎㅎ
예쁜 시루, 머루를 보다가 내 사진을 보니 현실로 돌아온다 ㅋㅋㅋㅋ 재윤님에게 인터뷰 질문에 기본기를 배워야겠어요 잇힝
재윤~ 잘 읽었어. 재밌다. ㅋ
재윤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웃겨. 아하하하하하
회비인상 꺄올! 사상 초유의 탐나는 다방 ㅋㅋ
마치 한겨레21의 독자인터뷰를 연상시키는 ... 재윤님~! 반가워~ (이거 참.. 반말을 하기도, 존댓말을 하기도 애매한~ 애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