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가정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 공청회에 가다
2003년 제정 당시부터 ‘건강 가정’ 개념에 대한 문제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에 대한 실제적인 지원 미비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법. 기억하시죠? 바로 ‘건강가정 기본법’입니다.
민우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법 제정 반대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였으나 결국 제정이 되어버렸고, 법이 제정되자마자 바로 전면 개정의 목소리를 드높였죠. 또한 여성운동계와 사회복지계, 여러 학계에서도 건강가정기본법에 대하여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해왔습니다.
여성가족부는 국가 가족정책이 근간이 되는 ‘건강가정 기본법’으로는 평등한 가족정책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건강가정기본법 전면개정안’(이하 전면개정안)을 2006년 국회에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국회 법제사법 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통과가 보류된 채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고, 지난 2월 26일 ‘건강가정 기본법 전면개정안’에 공청회가 있어 법사위의 조속한 의결을 촉구하고자 공청회를 다녀왔답니다.
법사위의 공청회 장소를 가기 위해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쳐가는 ‘슬픈 예감’(엘레베이터 안에는 50-60대의 남성들이 결의 찬 목소리로 우리가 향하던 층수를 이야기 하더군요). 노래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공청회 장소를 들어간 순간, 이러한 노인분들이 방청석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앉아있을 뿐만 아니라 회의장 바깥에 까지 대기하고 계셨습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노인회’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오셨다 하네요.
공청회는 ‘건강가정기본법 전면 개정안’에 대한 각 계를 대표하는 6명 의견 제시(공청회에서는 진술인이라고 표현하더군요)와 이에 대한 법사위 위원들의 질의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6명의 진술인은 여성가족부의 양승주 가족정책국장, 김화중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윤홍식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목사, 유경희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정민자 울산대생활과학대 교수였고, 법사위 위원장 안상수 의원과 법사위 위원으로 임종인, 이주영, 김동철, 선병렬, 최병국, 이상경, 박세환, 이상민, 주성영위원 등이 참석하였습니다.
양승주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국장은 보건복지부에서 제정한 건강가정기본법에 대해 여성부 출범이후 지속적으로 강력한 법 개정요구가 있어 이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진행하였고, 2005년 인권위에서도 ‘가족 및 가정의 정의를 수정’하고 ‘중립적인 법률명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어 제명변경과 일부내용의 수정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설가족위원회를 통과한 전면개정안은 2006년 9월 22일 법사위에 회부된 뒤 11월 30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다시 여성단체협의회, 대한 노인회의 의견을 수렴하여 가족정의에서 사실혼을 삭제하고 사실혼 및 단독가구에 지원특례 규정을 두는 것으로 수정하였고, 삭제하였던 가정의례, 가족해체예방 등의 조항을 모두 살려 11월 30일 법사위 소위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화중 여성단체협의회 회장과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목사는 수정되기 전의 법률안 조항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하여 의문을 자아내었습니다.
이 외에도 김화중 회장은 전면개정안이 “가족이 법률이 중심이며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공동체의 형성이 궁극 목표”인 것이 문제점이라며 이러한 목표를 가진 전면 개정안에 대해 “가정을 없애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고 ... 가정의 해체를 조정하고 있다 ... 건강가정기본법 전면개정안은 우리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아주 무서운 일이다 ... 저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라는 등 선정적인 발언으로 방청석의 대다수를 차지한 대한 노인회 회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이미 반대의견을 수렴하여 특례규정으로 수정한 사실혼규정에 대해 ‘도덕적 정당성’이 의심스러우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반복하였습니다.
최성규 목사 역시 이미 지원특례조항으로 수정된 사실혼 조항에 대해 “사실혼에 기초한 공동체를 가족에 포함함으로써 부도덕한 공동체만을 양산한다”, “가정파탄, 가정해체를 조장한다”며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또한 “모름지기 가정은 희생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형성·유지되어 왔으며 개정안은 가정의 무질서와 갈등을 초래한다”, “대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은 간통을 저지른 자는 사형에 처함을 헌법 제1조로 두었다”는 등, 누구의 희생이며 누구를 위한 질서였는지에 대한 조금의 성찰도 없음을 드러내는 적나라한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질의·응답”시간에 마이크를 건네받은 위원들 중 전면개정안 의결을 위하여 진술인의 의견을 묻고 경청하는 위원은 소수였으며 다수의 위원들은 매우 권위적인 ‘청문회식’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질문해놓고 대답은 듣지 않는 등의 희한한 모습을 보였으며 심지어 진술인의 ‘태도’에 대해 훈계를 하는 등 기가 찬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건강가정기본법 전면개정안인 가족정책기본법은 현실에 존재하는 가족의 유형을 다양하게 수용하고 있어 정책 대상으로서의 사각지대를 축소하고자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법사위에서 반대 이유로 내세운 ‘사실혼에 기초한 공동체’는 우리사회에서 실질적인 부부관계이며 이미 국민연금법, 임대차보호법 등 개별법을 통해 현실에서 정책적 지원이 되고 있는 가족유형임에도 불구하고 도덕성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언들이 오가는 공청회 장소에서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 먼 나라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답니다.
이미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과 다양한 가족형태가 현실로 존재하는 한국사회를 인정하지 못하는 공청회 분위기 속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해 지는 하루였습니다.
현재 전면개정안은 반대의견을 폭넓게 수용해 수정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여협 등은 특정한 ‘정상가족’ 외의 많은 가족형태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오해가 있어 국가인권위의 수정 권고를 받은 ‘건강가족’이라는 명칭과 ‘가족 및 가정의 정의’를 고수하는 주장을 계속 펴고 있습니다. 전면개정안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함께 관심가져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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