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평등5050]상담 속 주인공을 만나봅니다.
고용평등 5050은 고용평등상담실을 통해 만난 의미 있는 사례를 전합니다. 상담사례의 주인공을 만나보고 여성노동자들이 일하는 곳곳에서 만나는 차별과 불합리한 현실을 들여다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앞으로 사건마다, 고비 고비 용감하게 싸우고 있는 분들을 응원하고 회원 및 홈페이지에 오신 분들과의 소통과 공감의 힘을 함께 느껴봐요~
어떤 사건인가요?
쨔스님은 1998년에 S전기에 공채 입사하여 현재까지 재직 중입니다. 2003년 영업직으로 근무하던 당시 모 부장이 속옷 근처, 머리카락을 만지는 등 성희롱을 했고 2005년 해외출장을 갔을 때 엉덩이를 치면서 '잘 모시라'는 말을 했습니다. 성희롱 사실을 회사에 알렸지만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소속 팀은 해체되고 부장은 분회사의 임원으로 전직하면서 사실상 징계도 사건 해결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6개월 동안 업무 없이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겨우 발령을 받아 간 곳에서는 "주요 업무에서 배제 될 것"이라는 통보와 함께 회의, 회식, 점심식사에서 소외되었고요. 다시 보직이 바뀌어 새로운 부서에 갔지만, 이번에는 근무태만부터 옷차림까지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쨔스님은 2007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성희롱과 그로인한 업무배제, 왕따 등을 진정했고, 지난 8월, 인권위원회는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울 것을 회사에 권고했습니다. 올 5월에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청구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을 찾았고 현재 회원이십니다^^
아래 글은 민우회 회원이시기도 한 쨔쓰 님께서 직접 답해주신 생생한 내용입니다.
Q.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2차례 회사에 문제제기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입니까?
가장 참을 수 없는 (성희롱)고지 초기의 회사측의 반응은 "처음에 얘기 안하고 왜 이제서야 고지를 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직장내 성희롱 교육을 보면 거부의사를 확실히 표현하라고 1차 대응을 강조합니다. 문제는 가해자가 고과자이자 인사권을 쥔 부서장일 경우 피해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확실히 거부의사의 수위는 한정되기 마련이고, 거부의사를 표현하더라도 상대방이 개의치 않는 경우 피해가 계속 되고 도리어 인사고과 불이익까지 안게 됩니다. 전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이후 회사에 다시 고지하고 구제해줄 것을 요청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는데, 회사측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면서 성희롱이나 이후의 모든 일들을 전면 부인하며 업무무능력자로 취급하며 진급이나 배치를 위해 성희롱을 악용한다고 몰아갔습니다. 더구나 그 때까지 진술해준다던 많은 동료들이 연락을 끊었습니다.
Q. 성희롱 사실을 회사에 알린 후에 업무 배치, 왕따 등의 불이익을 받으셨다고 했는데요, 회사에 문제제기 하신 후의 시간들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7개월 동안 대기발령 상태이다가 새롭게 가게 된 IR부서에서 부서장 주도하에 업무박탈과 왕따가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성희롱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서배치를 기다리면서 겪은 소외감보다 심각한 상처와 피해를 남겼습니다. 이미 이 자체로 참기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성희롱 고지와 직접적으로 연관하여, 바뀐 부서장이 "명령에 불복종하는 여사원을 상사가 임의로 해고해도 적법하다"는 메일을 보내오고 "자꾸 웃지 마라, 헤퍼 보인다" 등의 말을 해올 때면 성희롱고지가 명령불복종이란 건지, 내가 헤퍼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하는 건지, 더 이상의 불이익이 두려워 반박조차 못한 채 자괴감에 빠지곤 했는데, 이때부터 심각하게 정신적으로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Q. 문제제기 하신 후의 회사 분위기, 동료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성희롱 고지 당시의 분위기는 팀원들이 부쩍 빈도와 강도가 심해진 가해자의 행동을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제가 많이 힘들어 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증언해주겠다는 분위기였고 잘했다고 위로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부서배치를 받지 못하고 있는 동안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부서동료들이 같이 점심도 먹어주고 쉬는 시간마다 짬짬히 찾아주면서 챙겨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해자가 일단 퇴사를 했고 부서동료들이 각각 다른 부서로 이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막상 작년에 성희롱부터 이후 발생한 사실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회사가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이 동료들마저도 연락이 뜸해졌고 증언을 망설였습니다. 심지어 "인사팀과 술을 많이 먹었다. 증언하면 문제가 될 것 같다 미안하다" 라고 한 선배도 있었습니다. 다들 먹고사는 문제와 인간답게 사는 문제로 갈등이 많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겪어내는 아픔은 다른 문제여서, 이런 동료들의 뒷모습은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
Q.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여사원들의 격려를 많이 받으셨다고요?
남몰래 성희롱과 관련된 설문지를 작성해줬었던 것도, 점심을 같이 먹어주고 연락을 해줬던 것도, 나중에 인권위가 연락이 오면 진술하겠다고 해줬던 것도 여자 후배들이었습니다. 물론 저에 대한 애정만이라기 보다는 그분들이 지켜온 도덕성 덕분일 것이고, 그만큼 회사에서 여사원으로 살면서 힘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힘내요, 이겨요" 도 힘이 됐지만, "언니 꼭 이겨주세요" 할 때는 정말 뭉클하게 힘이 됐습니다. 최근 보도가 나간 이후에 많은 여사원들이 각종 애환과 응원을 보내왔는데, 여사원이면 누구나 겪는 애환을 내가 한발 나가서 제기하는 것이고 함께 할 수 있는 단초를 열어간다는 점에서, 공감받는다는 점에서 정말 힘이 되었습니다.
“좀 웃기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입사하고 지금이 가장 회사에 유익한 일을, 돈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원칙과 제도, 문화의 견인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문제가 공론화된 후, 저는 굉장히 중요한 두가지를 절감했습니다. 제가 하는 이 싸움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징성과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통한 희망의 정체성 문제와, 이 과정을 거쳐오면서 위기가 생겼다는 것은 삶이 전환되는 다른 기회다라는 긍정성의 문제였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희망을 일구면서, 그런 희망을 일궈가고 극대화하는 궁극의 기회로 가져가고 싶습니다. 계속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세요. 그 마음을 받아 저같은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고용평등 앞당기는 말, 말, 말
Q. 큰 회사고 성희롱에 대한 규정은 잘 갖추어져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인사팀 담당자나 관리자조차 성희롱의 피해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정말 성희롱이 맞는가", "친근감의 표시를 오해하는 것은 아닌가"같은 질문들을 받았고, 나중에는 무시당하고 불신 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고 불안했습니다. 성희롱 고지를 처음 전달받은 인사부장이 이 문제를 자기 맘대로 가고 싶은 부서 배치를 받기 위한 액션(?)으로 잘못 해석하고 가해자가 명예퇴직을 하도록 방치한데서 문제가 엉뚱하게 커졌습니다. 나중에는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MJ(문제)사원으로 취급하여 다루는데 급급했습니다. 회사는 문제를 조용히 뭉게는 것에만 초점을 뒀고요.
사건을 해결하도록 되어있는 권한이 회사편인 동시에 가해자와 더 친밀할 수밖에 없는 인사팀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Q. 성희롱으로 문제제기 하신 이후 달라진 상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 중에는 저를 경계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와 둘이 점심을 먹는다던가, 저를 태워다줘야 한다던가 하면 나이든 일부 간부들의 경우에는 당황하거나 망설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저를 잘 아는 관계들 안에서는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금 수위가 높은 농담이나 터치를 해오던 동료들이 기분이 나쁜지 아닌지 물어오기도 해서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계기도 됐고, 각자가 일하는 부서에서 느끼는 성희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던 점이 더 많았습니다. 회사에서 적시에 적합한 조치를 취해서 부서이동을 하고 생활할 수만 있었다면 고지한 것이 훨씬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Q. 문제제기 하는 쪽이 훨씬 더 나았다고 하셨는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성희롱을 제기하는 바람에 남들이 상상도 못할 일들을 겪으며 한국사회에서 금기시되다시피 한-본 것도 증언하기를 꺼리는- 거대조직을 놓고, 제가 10년의 청춘을 묻은 회사를 대상으로, 이렇게 길고 힘든 싸움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과정을 겪음으로써 저는 한국에서 여성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졌고, 그 애환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이것저것 참으면서, 참아도 될 것과 참아서는 안 될 것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무난한 직장인이 되어있다면 그것이 지금의 소명감이나 정체성 확립을 주지는 못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문제들을 겪어왔고 그것은 현실에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많은 피해를 남겼지만, 그만큼의 재생력과 보람을 남겼습니다. 뭘 참을 수 있는지 뭘 참으면 안 되는지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같은 본질적인 문제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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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성희롱 피해자의 대다수, 사례에서는 정말 100%에 가까이 퇴직을 하시게 됩니다. 이렇게 남아 계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습니다. 버틸 수 있었던 힘이라든지, 그만두지 않고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의 의미를 말씀해 주신다면?
버틸 수 있는 힘은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아주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과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가령..저는 제가 성희롱을 당한 것이 숨겨야 하는 일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희롱 발생 초기에 말을 못했던 것은 창피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회사를 다녀야 하는데 내가 전반적으로 내가 소속한 부서원들에게 누가 되거나 그로인해 제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편과 불안의 문제였습니다. 일단 그것을 감수하고 고지를 했고, 그 후에 당한 일을 창피하게 여겨야 할 일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행위자들이 창피해야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뿐 나는 당당해!" 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봅니다.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맞춰하며 사고한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써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본질적인 문제들을 견고히 했던 것이 힘이 되었다고 봅니다. 대부분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비롯하여 손을 들고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조직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번거로와하고 귀찮아하는데, 대게 이렇게 손을 드는 여성들은 문제 사원으로 찍히게 마련이지만 기실 능력도 있고 과감한 면도 있는 사람일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런 여성들이 남아서 더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희롱 과정과 문제제기 후에 가진 상처로 위축된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되는 동시에, 그런 이해도를 가진 사람들이 조직에 남아있어야 조금씩 늘어나는 여자 후배들이 같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게 되고, 그런 것들이 이루어져야 조직문화도, 사회문화도 바뀌어나갑니다. 생각해보세요, 피해자는 나가고 가해자는 남는다...가해자가 남아 관리자로 뿌리내린 현실, 그리고 피해자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는 남은 사람들의 좌절. 그것은 건강하지 않은 결과물입니다.
Q. 지금도 회사 안에서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거나, 성희롱으로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S전기를 비롯하여 한국의 대부분의 회사가 성희롱 문제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피해자 편은 아니라고 봅니다. 회사 인사팀이 원하는 것은 "Clean 조직"이 아니라 "Cool 조직"입니다. 문제없는 조직을 원하기 보다 문제있는 소리가 안나는 조직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회사원이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윗사람은 가해자와 보다 친밀합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회사는 성희롱 예방교육에서 내부에서 조용히 해결하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종용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회사생활 계속 하려면의 의미가 늘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전제로 보면, 제가 당한 일들은 흔히 발생하는 경우는 아니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조기에 예방하는 것이 좋지 일단 발생하기 시작하면 점입가경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희롱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외부의 공신력 있는 기관과 인사팀에 동시에 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이런 경우 문제제기부터 해결까지의 과정을 최소한 내부에서는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그것이 사보가 되었던 게시판이 되었던 각종 사내 channel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공지되고 인지되어야 뒷말이 없고 이후에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에게 보복성 혹은 편견성 공격이 가해지지 않습니다.
공론화는 피해자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자 기본방법입니다. 참고로 혼자 고민하지 말고, 상담기관이나 주변에 경험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습니다. 겪어본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현명한 방법을 조언해 줄 겁니다.
- 공감, 지지가 되는 한 마디, 댓글을 달아주세요! -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 댓글을 달아주세요! - 나도 상담원! 여러분이 상담원이라면, 이런 말을. 짜스님께 전해주세요!
여성을 웃게, 세상을 웃게 만드는, 당장해버리는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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