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평택 쌍용자동차 진압작전 당일!
도장공장 옥상에 경찰이 들어간 날이었습니다. 애당초 이날 11시 가족대책위원회, 생생여성행동, 민주노동여성위원회가 처음에 옥상에 들어갔던 노동자 974명을 기억하며 공장주변에서 974배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11시에 기자회견 자체가 불가능했고 구사대(사무직 직원들과 용역들로 일당 28만원씩을 받음. 비열하고 모욕, 인신공격을 일삼음.)들에 의해 정문 근처에 설치한 시민사회단체의 천막들이 모두 강제로 철거된 상황이었습니다.
옥상이 뚫렸다는 소식을 듣고 민우회 사람들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하나, 여경, 바람, 폴, 꼬깜, 싱기루, 광년, 여진, 권미혁 선생님이 함께 갔습니다. 평택행 기차 안에서 떨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후기는 노동팀에서 정리하고 참여자가 함께 썼습니다.)
그 곳에서 오는 전화 뒤로는 낮게 나는 헬기 소리가 엄청나게 들려왔습니다. 목소리는 다급했고요. 평택역에도 시민들에게 공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리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1시 30분
3보 일배를 하지 못한 여성단위들이 모여서 기자회견을 시작했습니다. 어렵게 자리를 확보하고 손으로 써내린 결의문이 낭독됐습니다. 물과 의약품, 전기, 가스도 없는 상황에서 평화적 해결을 외치는 우리를 향해 그날 오전 폭력적 진압이 있었고, 쓸어버리기가 있었습니다. "너희가 뭘 알아?"라며 제3자라며 몰아냈지요. 가족대책위가 세운 천막도 모두 없어지고 안에서는 경찰과 노동자가 대치중이었습니다. 전국여성연대, 참교육학부모회, 민노총여성위원회, 한국여성민우회가 그 날 오전 공장 앞에 있었습니다.
여전히, 구사대와 경찰이 길을 막고 공장을 차지하고 우리를 향해 비키라, 나가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찰 헬기는 더욱 위협적으로 우리 위를 날았고요.
대오도 구사대도 경찰도 여전히 날카로웠습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이야기하듯, 전쟁터였고 그래서 폭력성은 극대화되었지요. 다만, 우리는 이렇게, 이런 방식으로 저항하고 싶었습니다. 살기와 폭력과 인권침해, 조롱, 마초적인 공격성 이 모든 것들에 반대하고, 정리해고 한다면서 자기 직원들과 '전쟁'을 벌이는 회사, 그들을 감싸는 공권력, 더러운 구사대에 저항했습니다.
폭력진압 반대합니다. 노동자에 희생강요 정리해고 반대합니다. 폭력진압 허용하는 MB정권반대합니다.
여성비하, 인권침해하는 폭력집회, 구사대도 정말 싫습니다! '사람'죽이는 구사대, 엠비 더럽습니다.
흥흥흥!
공장 주변을 돌고 있는 경찰 헬리콥터,
낮게 날아 더 시끄럽게 소음을 냈습니다.
헬기 소음과 경찰들의 방해에도
기자회견들과 미사는 계속 되었습니다.
(시국미사에 참여 중인 바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많은 분들도 속속 공장 앞으로 모였지요. 기자회견 후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 옆에서 잠깐 피켓팅을 하였습니다. 해고 대신 노동인권, 폭력진압 대신 평화라는 문구로 우리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지지를 담았습니다.
잠시 그늘에 있었는데, 쌍용자동차 공장 쪽 포스터가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일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평택에는 목숨을 건 투쟁으로 오늘의 연속일 뿐 ‘내일’은 요원해보여 씁쓸하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햇볕은 뜨겁고 입 안은 바싹바싹 말라가는 상황이었지만 공장 안, 공장 옥상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민우회도 본격적으로 피켓팅을 진행했습니다. 공장 앞 작은 사거리를 돌면서 구호도 외쳤습니다.
경찰들 바로 앞에서 피켓팅을 하니, 경찰들이 다른 데에서 하라고 내쫓더군요.
그래도 우리는 미적미적 피켓을 들고선 바로 없어져주진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그리고 다시 자리를 옮겨 공장 정문 쪽으로 갔습니다.
경찰무리는 계속 왔다 갔다 했습니다.
피켓을 들고 자리를 잡자마자
임직원과 용역들은 우리에게 여성비하의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욕하며 조롱하더니 성희롱(다리를 쫙 벌리는 등등)까지 하더군요.
지금도 후기를 쓰면서 당시의 생각을 하니 화가 납니다.
격분된 마음으로 ‘노동인권 말살하는 MB정권 물러나라’는 구호도 꿋꿋이 외치며 우리는 분노의 피켓팅을 했습니다. 다시 한 바퀴 돌면서 피켓팅을 하였고 쌍용자동차 투쟁 증 인권침해조사단이 생겼다고 하여 조사단원분께 성희롱 건에 대해 전했습니다.
공장 밖에서도 이런 일이 산발적으로 계속되는데
공장 안 노동자들은 얼마나 많은 인권침해를 겪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돌리며 다시 평택역으로 갔습니다.
늦은 저녁 시간에도 속속 많은 분들이 공장 앞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이날따라 하늘은 어찌나 높고 파랗던지,
조용하고 평온한 하늘처럼 평택 땅에도 얼른
평화가 되찾아오길 바라며 서울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법조문에나 있는 노동권이 되어버리지 않아야 할텐데-
진정한 노동권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들은 투쟁 속의 노동자라는 걸 느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정부, 공권력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같은 한국말을 사용하면서도 이렇게 통하지 않는다니, 갑갑증이 밀려듭니다.
더구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어제 쌍용차 농성장 강제진압 자제 긴급구제권고 결정을 하긴 했지만, 강제진압 자제가 아니라 강제진압 중지를 권고 했어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파견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이 현장 상황을 계속 모니터를 한다는데, 불의의 사고가 난 뒤가 아니라 그 전에 노동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시급하게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어제는 노동자분들이 큰 부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강제진압 없이 더 이상 아무도 다치지 않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길 수 있길 바랍니다.
함께 한 활동가들의 한 마디를 모았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쬐는 한여름 물도 의약품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극한의 상황에 사람을 몰아넣고, 최루가스, 테이저건,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폭력까지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집니다. 한국 땅에서 가장 아픈 곳을 보려하지 않는 MB정권에 분노를 느낍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그는 알아야할 것입니다. 평택의 공장 앞에 끊임없이 모여드는 사람들, 가슴에 분노와 연대를 안고 있는 사람들, 사람과 사람의 물결로 그곳, 평택에- 가득하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바람)
쌍용자동차 관련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을 뒤덮고, 신경은 평택상황으로 가있었다. 그러다 결국 사무실을 떠나 평택으로 향했다. 뜨거운 햇빛과 줄지어 있는 전경들과 공장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너희가 쌍용자동차에 대해 무얼 안다고, 여기 와서 이 난리냐.'라는 말에 내가 정말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괜한 주눅 듦에 당황했다. 이렇게 유혈사태가 일어나야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 이렇게 물도 음식도 의약용품도 제공될 수 없게 고립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은 안다. 지금도 노사 간 마지막 논의를 한다고 하는데 하루 빨리 합의를 통해 해결이 되고, 평택에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 그날의 기억으로 아직도 가슴이 먹먹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여경)
평택 현장에 가 보고 우려스러웠던 것은 경찰, 용역, 사측과 안에 있는 노동자들과의 충돌이 일어날 경우 제 2의 용산사태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양측이 모두 무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강제해산할 경우 희생자가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제발 아무런 희생이 없기를 기도했다. (결국 강제해산 과정에서 노동자 2명이 척추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또한 하늘에서 계속 경찰헬기로 보이는 헬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장한 경찰차와 경찰들이 겹겹히 에워싸고 있는 현실에서 공장 내에서 물도 전기도 밥도 없이 있는 노동자들이 그 헬기와 경찰차 소리에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정말 큰 무력감이 느껴졌다. 거대한 권력과 자본 앞에서 우리는 정말 이렇게 나약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벤자민)
최악의 환경에서 투쟁하시는 분들이 안타까웠어요. 평화적 해결 강력히!! 바래요. (광년)
그곳에는 살려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버젓이 살려야 할 사람을 죽이는 공권력과 용역깡패가 판치고 있다. (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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