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여성의 경험을 들여다보다
민우회는 5월간 임신중절 경험이 있는 17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8명이 기혼이었고
나머지 11명은 미/비혼 여성들이었다. 시술 경험 당시의 나이대는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다.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이라는 텅 빈 구도 속에 꽁꽁 숨겨진 여성의 경험을 새겨보자.
"사실 뭐 당시에는 좀 20대 초반이었고 상당히 시간이 지났는데 딱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제 스스로 너무나도 침착했어요.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는.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딱 거기까지만 생각이 멈춰 있었던 거죠. 그 이후에 내 몸을 어떻게 회복시킬것인지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죠.(사례a)"
"주기가 정확한데 28일 주기로 정확한데 생리를 안하니까 불안해가지고 애인한테 말을 했어요. 그랬더니 애인네 집에서 검사를 해봤더니 임신이더라구요. 그래서 아직도 생각나는데 반지하 방이었는데 화장실에서 그걸 보자마자 화장실에 주저 앉아서 꺽꺽 거리면서 울었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나요.(사례b)" |
"40대 초반에 둘째 낳고 원치 않은 임신이 됐다. 아이들 둘을 키우는 육아가 나에겐 지옥이었다. 아이 둘이 너무 아파서. 그런데 애가 들어섰다. 나는 갈등도 없었다. 근데 우리 사회에서 강요한 모성이 있는지라 갈등은 있었다. 혼자 그 죄책감을 삭이질 못했다. 나누길 원해서 가까운 사람에게 얘길 했다. 근데 그 분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너 벌 받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막 변호를 했다. 나도 살아야지. 난 정말 지금 낳으면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할 것 같다고.(사례c)"
"여자 선배 두명한테 얘기를 했는데 과 동기는 이제 내가 막 같이 자취하는 동기였는데 막 같이 울어주고 그랬고, 그 다음에 97학번 선배는 뭐라고 했냐면 자기도 해봤다. 근데 감기 같은거다. 그냥 금방 지나갈꺼다. 이렇게 말을 했고 94학번 선배는 자기 친구중에 낙태한 애가 있다고 하면서 걔는 두 번인가 세 번을 했다고 하면서 미친년이지 그랬어. 근데 딴 말은 기억이 안나고 감기 같다는 얘기만 미친년이란 말만 남은거야. 그래서 낙태는 감기같은거다. 그래서 금방 지나갈꺼고 과장되게 힘들어할 필요는 없고 그리고 두 번 하거나 세 번 하면 미친년이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남아 있어.(사례b)"
“다른 사람이랑 사귈 때 사후피임약을 두 번인가 먹었는데 그 때 힘들더라구. 먹어야 하는 상황도 힘들고 먹고 나서도 부작용 때문에 실신하고 토하고. 산부인과 가는 거 자체가 기분 나쁘고 그런거에 대한 스트레스를 갖고 있는 것 같고 만약에 다시 임신하면 죽어버릴 것 같다고 얘기도 했는데 진짜 죽을 것 같은 거에요.(사례d)"
"여드름 입술 밑에 많이 나는거 보면 아줌마들이 어머 여기 나는건 자궁이 안좋아서 그렇다는데 근데 처녀가 자궁 안좋을일이 뭐가 있어 그런 말 들으면 엄청 뜨끔뜨끔하면서 괴로웠지. 그래서 이거를 나는 죄책감이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 죄책감이 생기는거야. 난 정말 이상한 인간이다. 죄책감도 안 느낄 정도의 매몰찬 그리고 그런 인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사례b)"
"(수술이후) 영향을 끼친거는 주변에 여러 가지 아까도 제가 나의 수술 경험에 대해서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나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들었는데 오히려 즉각적으로 어떤 느낌이 든다기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주변의 사례를 봤을 때 아이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임신과 출산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죄책감도 많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게 별로 없어서 또 그런 감정이 드는게 엄청 두려웠어요. 그것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는게 굉장히 두렵기도 했고(사례e)"
"연수가 있지 않나. 내가 낙태를 했는데, 그 아이가 컸으면 지금 몇 살이겠다... 그 생각이 드는데 아..씨.. 되게 가슴이 서늘했다고 해야하나. 죄책감 이런걸 떠나서. 뭐라고 표현은 못하는데.(사례f)"
"가끔 지나갈 때 낙태 얘기 나오고 그러면 그게 너무 생각이 난다. 걔가 안 죽을려고 속에서 발버둥을 쳤는지 (마취주사를 하는데)왜 나한테 주사놓는 것도 빠지고 계속 그랬다. 세번인가가. 링겔 꽂고 거기다 마취를 넣는데 자꾸 빠지는거야. 아픈 것도 걔한테 벌 받아서 아픈가보다 싶기도 하고.. 환영이 오래 갔다.(사례f)"
“근데 성당에서 없었던 죄책감을 종용하는거야. 내가 죄책감이 언제 생겼을까 생각해보면 (성당 다닌)그 이후야. 그 당시에는 사회적 시선이나 판단이 중요했지. 내 자신의 생명권에 대한 미안함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사례h)"
“국소마취만 하고 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계속 의사가 옆의 간호사와 농담따먹기를 하는거다. 나중에 자위를 한 건, 이 사람도 나름대로 '좋지 않은' 일을 하니까 자기의 긴장도를 완화시키기 위해 농담따먹기를 했구나 이런 생각 하나. 싶긴 했지만 저렇게 하는 것이 맞나 속상하다는 이런 느낌 있고.(사례g)”
“내가 갔던 의사는 남자 의사인데,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그런 얘길 자꾸 하는 거다. 넘어져서 까져도 태양 못 받으면 하는데 자궁 내가 보지도 않고 긁어내는데 상처나면 어찌 될지 모른다. 엄마가 피임 잘 해야 된다.. 이런 얘기 하고. 미끼도 던지더라. 남자일 거라면서. 나는 설명도 구구절절 했다.(사례j)”
"수술을 받는 다음에는 기저귀 같은거 차고 있는데 이게 굉장히 불편하고 남한테 보여줄까봐 불안해했어. 그렇게 생명을 죽였어 이런 죄의식이고 뭐고 나는 생각이 없었고 이 사실이 밖으로 밝혀질까. 집에 갔을 때 나의 이 불편한 태도가 엄마한테 발각이 될 것 같은 그런거.(사례h)"
"(각각 30만원씩) 60만원을 모았어. (수술비용 빼면)20만원이 남잖아? 그니까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를 먹자는 얘기를 했었어. 얘기가 되게 관계에 많이 집중이 되있는데 내 스토리는. 근데 소고기를 먹기를 해놓고서 갑자기 집에서 족발을 시켜 먹자는거야. 애인이. 되게 연애 관계에서 내가 내 주장을 강하게 못했던 것 같아. 그래서 집에 가서 족발을 시켜 먹었다. 그리고 나서 먹고 나서 방에 애인 집에 가서 누워있는데 되게 배가 많이 아팠어. 아프고 나서 다음 날 아침에 딱 약간 소고기를 못 먹은 것에 대한 불만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다음날 눈이 깼는데 애인이 어제 먹다 남은 족발을 쩝쩝거리면서 아침에 먹고 있는거야. 그걸 보면서 너무 싫었어. 혐오스럽다고 해야 하나. (...) 근데 남은 20만원을 걔가 가져가버렸어. 걔가 가지고 있다가 가져간거야. 그게 나한테 줬어야 하는 돈이고 소고기도 안먹었는데 나는 되게 맺혀 있었다.(사례b)"
"경제적인거는 내가 다 처리할테니 걔한테 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죠. 고등학교때부터 사귀었는데. 결론적으로 안왔어. 안와서 친구랑 같이 가가지고 (수술)하고.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깨어나가지고 집에 지하철 타고 왔던 것 같은데 하이튼 애기가 앉아 있었는데 내가 막 울었던 기억이 있어. 그러고 나서는 너무 그 사실이 힘들었다기 보다 (애인이)안왔다는거에 대한 배신감? 그게 어떤 물리적으로 충격을 주었다기 보다는 심적으로 내가 감정이나 상황이 끝에 몰렸을 때. 아무도 없었을 때 사람이 이렇게 버려질 수 있구나 하는 그런 감정을 처음 경험해본거죠.(사례k)"
"아무리 피임을 철저히 해도 낙태를 할 수 있는데 그 때 당시에 버림 받았다는 느낌이랑 이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지인들한테 말했을 때 그런 반응들 그리고 말할 수 없다는 내가 되게 4년 동안 사귀었던 애인은 가까웠던 결혼 생각했던 애인이었는데 그 사람한테도 말하지 못한다는 억압해야 한다는 고통이 컸던것 같은데.(사례b)"
"이상할만큼 너무 오래 되서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고 제가 아는 언니는 기사를 보거나 피해 사례를 보면 자기 너무 감정이입되서 힘들다고 하는데 그런 것은 없고 이상할 만큼 거리두기가 되는 것 같고 별로 내 문제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고 오히려.(사례k)"
"더 먹먹해지는 이유가 잘 기억이 안나. 두 번의 경험이 있는데 둘다 기억이 안난다? 주변 인물들은 기억이 나는데 몇 년도의 몇 살 때의 인물인지가 기억이 안나는거야. 생각을 할려고 해도 기억이 안나. 아마도 내 생각에는 내가 몇 살 때를 기억하는데 이 때의(낙태시술) 기억이 끼어들어가면 불편하니까 나이대나 뭐를 지워버린 것 같아(사례l)."
"(낙태 이후)관련해서 얘기를 내가 먼저 꺼내는게 좋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거의 얘기를 안했죠. 만났던 시간도 거의 없었고 그랬어서 그 이후에도 관계를 가졌는데 관련해서 얘기를 안했거든요. 안하고 한 번 할 시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낙태 했을 때 힘들었던 것을)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자기(애인)가 얘기를 하면 나한테 상처가 될까봐 두렵다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내가 오히려 당신이 그런 얘기 안하는게 상처다 얘기를 했죠.(사례m)"
"남편은 여전히 모른다. 얘기안했다. 그거(낙태한거) 얘기했으면 남편이 종교가 있어서 죽어라 반대했을거고. 그리고 애기를 .. 기형아였으도 낳으라고 했을거다. 낳은 것에 대해서 육아책임을 질거냐 그건 대책이 없다. 그걸 얘기해서 시집 식구들도 애를 기다리던 상태였다. 애를 더 낳길 바랬다. 왜냐면 둘째애를 양자로 줄려고. 여튼 시어머니도. 그런것도 용서가 안 될 거고. 계속해서 궂은 소리 듣느니 거짓말 한 번으로 종결하는 거니까.(사례g)"
"다른 집도 그런 것처럼 남편이 도움이 안 됐다. 자기 삶을 챙기니까. 남편은. 애기 잠깐 안아주는 것도 자기는 전부 한 것처럼 말 하니까. 되풀이될 거 뻔하고. 당시 우리 아이들이 유전병이어서 (출산하면 아이가)또 아플것 같고. 신랑은 낳길 원했다. 남자들은 무슨 욕심이 있는지... 낳으라고 하는 말과 동시에 악을 썼다. 두서없이 히스테리컬하게. 남편이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동행했다. 이 과정을 이 죄책감을 너도 같이 겪어라. 남편 회사 빠지게 하고 산부인과 같이 갔다. 같이 가서 그 전과정을 보게 했지.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할 수 없도록.(사례f)"
"그사람은 날 되게 뭐라고 해야되지. 걸레 취급을 했었지. (낙태 이후에 성병 치료도 받았는데)니가 아무나 섹스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생기게 된 성병은 나때문이라고 얘기하는게 기분나쁘다고 얘기하면서 또 뭐라고 했지. 충격적인 말이었는데 넌 너무 건강한거 아니냐 임신이 너무 쉽냐 이러면서. 그 얘기를 막 들으면서 최악이었지.(사례l)"
"다른 사람들은 충격을 많이 받고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은 게 주변 사례를 봐와서 그런건지 그 사람(애인)과의 관계가 폭력적이지 않아서 그런건지. 내가 그렇게 느끼는게 무감각한건지 그 사람(애인)을 비난의 화살로부터 보호해주고 싶은건지 여러 가지 생각이 조금 들었고(사례m)"
"그러니까 내가 이 남자와의 관계에서 낙태 경험한게 혹시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왜곡시킬까봐. 그래서 그 남자가 나한테 억지로 사랑을 전제하지 않고 결혼을 선택하게 될까봐 나는 너무 싫었고 (이후에)나는 굉장히 그 사건을 입에도 안올린거야. 그하고 둘관계에서는. 우리 둘의 관계 때문에 결혼을 했지 이런 사실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선택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사례n)"
그 많던 여성, 남성들은 어디로 갔나? 바로 옆에 있다. 그런데 왜 안나타나는가? 국가가 정부가 그리고 스스로 답해야 한다. 누구도 답해줄 수 없다.
시술 비용은 어떻게 분담했나, 경험 이후 어떻게 자신을 돌봤나, 임신중절 이후 섹스가 두려웠나, 의사는 무슨 말을 했나, 시술 하고 밥은 뭘 먹었나,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치는 제외되고 경험이 선명하게 남는다.
이기적인 '년'들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과연 어떤 두려움이 포함되어 있나. 여성이 성적 주체가 되는 것과 '낙태'금지와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낙태'라는 이슈가 얼마나 '관계'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확인했다.
성관계를 누구와 했는가가 낙태 기억을 구성하는 주요한 조건이자 결정의 이유가 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민우회는 최근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 고발조치와 저출산 담론 하에 '낙태' 금지를 강화하려는 정부를 그저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여성의 경험을 찬찬히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으로 '낙태'경험이 '있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집담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진행될 '낙태 고발조치'대응 활동에 계속해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_^
관련 문의 : 여성건강팀 꼬깜, 나은(02-737-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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