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나라로]세금으로 미팅주선하는 이상하고 알흠다운 이성애 나라
세금으로 미팅주선하는 이상하고 알흠다운 이성애 나라
시•도 차원에서 미팅을 주선?
몇 년 전 지하철에 붙여진 광고포스터 중에‘여우와 늑대들의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어 가까이서 보니
서울시에서 주최한 ‘단체미팅’ 행사 홍보였다.
시 차원에서 미팅을 왜 시켜주는 걸까 잠시 생각해보니 답은 바로 나왔다.
저출산 문제를 결혼 장려로 해결하고자 한 의도였던 것.
미팅대상자를(출산가능성이 높은)40세 미만의 미혼 남녀로 한정한 것도 이 때문이리라.
당시에는 서울시 별꼴이다, 세금이 아깝다, 하다하다 요런 것도 하나 하고
그냥 헛웃음 짓고 넘어갔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웃고만 넘어가기엔 도가 지나치다.
2010년 올해만도 경기도, 경상북도, 울산시, 부산시,
아산시, 목포시, 성남시 등등 전국의 시•도에서 ‘단체미팅’을 주선하고 있었다.
경기도에서는 포털사이트에서 ‘사이다’(사랑과 결혼에 관한 정보는 다 이곳에 있다)라는
카페까지 운영하며 미팅과 결혼 관련 정보를 주고 있다.
아산시에서는 아산시와 충남 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봄빛사랑 결혼미팅’을 주선하고 경북에서는 회원가입비를
도차원에서 감당하며 미혼남녀 결혼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저출산 해결방안으로 이성애 결혼을 권장?
왜들 이렇게 시•도차원에서 경쟁하듯 미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까?울산시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보니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연애를 잘해야 나라가 산다”라는 제목으로 복지여성국장이 울산 모 대학에서
저출산의 원인과 파급영향, 결혼의 숭고함과 양육의 기쁨을
내용으로 하는 특강을 했단다.
즉, 연애를 잘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저출산이 해결되어 나라가 산다는 것.
성남시에서도 저출산 대응 결혼촉진 시책사업으로
관내 관공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단체미팅 행사를 열었던 바 있다.
목포시 또한 인구증가를 위한 출산장려정책의 일환으로 미팅을 추진하는데
참가자 중 1년 내 결혼을 하게 되면 축하선물로 100만원 상당의 상품까지 제공한단다.
여기까지만 봐도 시•도에서의 미팅 사업은
결국 저출산 대응이라는 걸 눈 감고도 파악할 수 있다.
이성애와 정상가족을 권하는 사회
시•도차원에서의 단체미팅 주선 사업은 국민의 혈세를
결혼정보업체나 할 법한 행사에 사용한다는 문제 외에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저출산이 왜 문제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목까지 차오를
정도지만 이 질문 자체를 이해 못할 것 같아 굳이 던지진 않겠다.
아무튼 저출산을 문제로 보는 정부 입장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고 싶긴 할텐데
굳이 미혼 남녀를 미팅으로 만나게 해서까지 결혼을 권장하는 것일까?
일단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 생식 능력이 가능한 남녀를 넣어놓으면
절로 출산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단순하게 계산하고 있는 건 아닐런지.
‘남녀’가 ‘결혼’으로 맺어진 정상가족 하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정부가 원하는 저출산 대응의 상(像)이다.
이 상에 적합한 이들에 대한 ‘배려’와 ‘혜택’만이
점점 더 당연한 것으로 자리매김할까 걱정까지 든다.
시•도에서 나온 자료를 보다보니 왠지 주문에 빠진 듯
비혼자로 살려는 나도 찰라지만 이성애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서운 일이다.
미팅 사업을 기반으로 정부가 이성애 결혼을
대대적으로 권장을 하는 것보다 더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국가 공권력이 이성애만이 ‘정상’인 것으로 그리고
다양한 선택권의 실천으로서 비이성애적 삶을 가리면서
이성애주의를 공고화시키는 흐름이 가져올 파급효과야말로 진짜 문제이다.
이를 생각해보면 정부의 ‘미팅 주선’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 기우가 아닐 것이다.
정부가 팔까지 걷어 부치고 이성애와 정상가족을 권하는 이런 사회에
과연 이성애자가 아니거나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자가 발붙일 곳이 한 뼘이라도 있을까?
문제 핵심은 본척만척, ‘정상’이라는 주류mainstream(정상)만을 타며
기묘한 관점으로 변죽만 울리는 정책을 펼치는 게 한 두 개가 아니긴 하나
저출산 대응 한답시고 강요된 이성애주의를 퍼트리는
정부차원의 미팅을 주선하는 사업은 그만 두길 바란다.
본 글은 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업데이트 되어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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