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 연극 후기②] "끓는다, 미역국"
올 해 8월부터 민우회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여름과 초겨울에 걸쳐 약 2개월간 우리는 '낙태'라는 주제 하나 던져진 채 연극을 준비했습니다. 젤 처음 모임 때 우리는 낙태를 둘러싼 자기 이야기로 스타트를 끊었지요. 부모님에게 이끌려 애를 낳기 위해 가출한 여동생을 잡으러 다녔던 오빠의 자책, 아직까지 너무 무거운 낙태의 경험, 낙태할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고된 현실, 여성인권이 무색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에요. 결론은 누구도 그 경험을 원치 않을 것이다는 전제, 선택은 절대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즉흥극을 수차례에 걸쳐 진행했지요. 뻘쭘한 손의 위치, 어색한 시선처리, 서로의 눈을 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닫기도 하고 낙태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망과 그 현실 속에서 입장에 따라 직조되는 상황을 함께 겪었지요.
술자리에서 등장한 단어 하나, 미역국. 여성의 임신, 출산, 낙태 등을 둘러싼 대표적인 상징이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미역국을 끓이고, 끓는 논쟁을 은유해보자는 큰 포부를 가지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젤 중요한 캐릭터! 7할을 매진했던 즉흥극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캐릭터를 발견해 나갔어요. 혁명가, 관찰자, 성매매, 피노키오, 팔랑이, 자기분열이, 구애정(최고의사랑) 요렇게요.
대망의 연극 발표 날은 10/27(목), 오후 7시반부터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있었습니다.
리허설을 가까스로 하고요. 아 이시간이 오는구나. 마음은 요동치고 2개월의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 할텐데. 다들 수근수근 두근두근... 틀린 대사에 오마이갓 이성은 잃어가고요. 결국 무대는 혼자 서는 건데 말입니다.
@리허설 중-우리 잘할 수 있겠지?
@ 미역국 만드는 가족. 엄마, 딸, 딸2, 아들내미
@ 정부와 의사 등장-"애를 낳아야 애국하는 겁니다."
구애정 역ㅣ물결
: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다. 연예인이다. 퇴물이라고 손가락질 당한다. 그녀는 강하다. 하지만 저절로 강해진 것은 아니다. 혼자 충분히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 그녀는 그럴 수 있다. 의사는 노산이라고 양수 검사를 하자고 한다. 하지만 보험은 안된단다. 세상은 아빠 없이 애를 키우는 것을 비난한다. 음양의 조화를 강조한다. 애가 불행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매매 역ㅣ가혜
혁명가(엄마) 역ㅣ용가리
: 그녀는 애 셋을 낳았다. 억척스럽게 살았다. 의지가 강하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 사람이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움직이고 움직여야 한다. 임신한 딸과 동생을 보며 속이 뒤집힌다. 하지만 세상의 비난에는 "걔들이 뭔 죄를 졌다고 지랄이야"라고 맞받아칠 수 있다. 그녀는 힘이 세다.
팔랑이(막내딸) 역ㅣ모후아
: 고등학교 재학 중이다. 여기도 팔랑 저기도 팔랑, 귀가 얇고 낙천적이다. 소고기 미역국을 좋아한다. 구애정 이모가 혹시나 연예인 생활을 그만둘까봐 걱정이다. 책임 없이 성관계 하지 말라는 질타에 "저는 항상 콘돔을 준비하는데요?"라고 대응한다.
피노키오(아들) 역ㅣ수풀
: 공무원이다. 융통성이 없고 집안 내 가장이라고 믿고 있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동생과 이모를 아낀다.
의사 역ㅣ여경
: 산부인과 의사다. 노산은 양수검사를 꼭 해서 기형아 출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낙태는 근절되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순과 분열의 캐릭터.
정부 역ㅣ꼬깜
: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을 대변하는 캐릭터. 애를 낳아야 애국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공공연히 저출산은 사회악이라 말한다.
@ 그 가족의 연대
@ 관객과의 대화
[낙태 그 논란에 중심에서 똥침을...]
- 민우회 소시오드라마 '끓는다 미역국' 을 보고 이모, 엄마, 두딸과 아들 이 가족에겐 임신한 사람이 둘이다. 그들에게 공무원은 출산이 애국이라고 말하고, 낙태를 권하는 의사는 효율적인 권리라고 말한다. 이렇게 팽팽한 논란 속에서 한 사람은 비록 2류 인생이지 만, 아이를 낳아 꿋꿋이 키우고 싶어하고, 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 당당한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 낙태건 출산이건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꿈과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일진대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이것따윈 안중에도 없다. 어느 정책에도 개인에 대한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이 작은 연극 '끓는다 미역국'은 어떤 출산이건 낙태건 미역국을 끓여먹어야 하는 여자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란 걸 이 가족들은 잘 알았다. 어디에도 아이의 아빠의 존재는 보이지 않지만 집안에서 퐁퐁 끓어가는 미역국 냄새에 행복이 배어있다. 이렇게 이 짧은 연극은 소위 낙태 이슈에 '집어치워라, 미역국이 끓고 있다'고 똥침을 날리고 있는 게 아닐까. _타기(회원) |
관련 문의 : 민우회 여성건강팀(02-737-576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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