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 연극 후기①] 여성들은 왜 ‘낙태’를 결정하는가.
여성들은 왜 ‘낙태’를 결정하게 될까요? 예상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우리의 예상은 딱 맞아 떨어질 수 있을까요?
무엇이 이유였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상상을 합니다.
정답을 찾으려 했던 나 혹은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습니다. 여성들이 ‘낙태’를 결정하게 되는 이유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간단하게 설명하려 들고, 정답이 있는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책임지지도 못할 행동(성관계)을 한, ‘낙태’이후에 벌어지는 위험성과 후회에 대한 것을 모르는, 낳고나면 후회없는 상황을 모르는 여자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2011년 민우회는 ‘낙태’를 둘러싼 이분법적인 생명과 선택의 사고를 흔들어 판을 바꾸기 위한 고민의 시간을 보내며 22명의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사례집을 만들고, UCC를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전해드리는 내용은 10월 27일,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열린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 행사의 1부 순서 토론회 [낙태, 여성의 경험으로 세상과 공명하다]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여성단체 활동가, 회원, 여성학 연구자, 학생, 언론사, 진오비 소속 산부인과 의사 등 ‘낙태’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다양한 분들이 성미산마을극장을 가득 채워주셨지요.
토론회 [낙태, 여성의 경험으로 세상과 공명하다]
일 시 : 2011년 10월 27일
발제자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백영경 교수
토론자 : 서울대학교 배은경 교수
연세대학교 보건대학교 강명신 교수
서울중앙지원법원 오승이 판사
보건복지부 신승일 과장
사회자 : 김인숙 대표
‘한국 여성의 낙태 경험: 성적 시민권과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서’란 제목의 발제를 맡아주신 백영경 선생님은 22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할 때부터 함께 하셨는데요. 그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들을 사회적 고통이란 개념으로 ‘낙태’를 분석하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렌즈의 사용은 어떠한 낙태든 낙태가 이루어지는 사정은 개인적이며 각기 다르기지만 개인이 낙태를 결정하고 경험하는 맥락은 언제나 사회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사회가 여성들을 성적행위를 하는 주체로 인정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서 성적 시민권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들려주셨습니다.
발제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 슬라이드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지정 토론자들의 요약문을 전합니다. 이후에 다양한 의견을 주신 플로어분들의 내용을 담은 속기록은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뜨거웠던 10월 27일 토론의 장을 지나 좀 더 깊은 고민을 담아 활동할 수 있도록 함께 할 수 있길 바랍니다 :)
•사회적 고통 (social suffering)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들 권력이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방식 을 통해서 야기된다” (Kleinman, Das and Lock 1997, ix).
|
발제가 끝난 후 지정된 토론자분들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배은경 교수님은 “그간의 여성의 입장에서 낙태문제(임신중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담론을 만들어가지 못하고 방어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사실. 그리고 여성들의 목소리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들의 삶 속에서 “낙태란 내밀한 개인적인 경험, 다른 사람과 나누길 원하지만 모든 것을 나눌 수는 없는 경험이기도 했고,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정해져 있는, 사회에 책임을 돌리고 개인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은 아니다”라고 하신 지적은 이 문제가 (객관적) 구조의 문제만도 (주관적) 주체의 문제만도 아닌 행위성(agendcy)의 문제라는 점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근데 우리가 보통 이 여성주의 담론 안에서 여성의 행위성(agendcy)를 말하면서 행위성(agendcy)를 굉장히 주관적인 문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여성의 행위성(agendcy)이라는 얘기를 여성의 결정권이라고 하는 문제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선택이라든가 근데 저는 바로 주체적 결정이라는 문제와 행위성(agendcy)는 다른 개념이다. 선택이라고 하는 것이 선택권이나 자기결정권의 문제라고 환원되는 것은 굉장히 곤란하다. 낳아서 기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를 임신한 여성들의 행위성의 맥락이라는 것은 윤리적, 사회적,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고, 딜레마의 문제를 제외하고 이 문제를 이해할 수는 없다. 마치 계획되지 않은 성행위나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낙태라는 것이 근절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그런 가정 자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다양한 삶의 조건과 행로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이 감수성에 대한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해서 대중이 가져야할 올바른 윤리적 태도라고 얘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강명신 교수님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산부인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전국 인공임실중절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2005년도에 이어서 전국규모로 조사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었다. 불법으로 낙태를 하고(쌍벌죄로 해놓고) 국가가 나서서 조사를 하는 것도 이상한 노릇인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하는지를 묻게 된 이유는 한국에서의 낙태 건수가 100만 건이라는 둥 어디에서는 훨씬 적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제대로 조사되지 않고 터무니없는 숫자들이 왔다갔다 하기에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가에서 인구통제를 하는 정책에서 많이 낳아야 될 때는 낳으라 부축이고, 일전에 가족계획사업을 부축이면서 중절을 마구잡이로 해줄 때는 해주고 이런 인구와 관련되어 중절을 논의하는 아젠다에서 벗어나야한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인데 인구보건학에서는 지금은 성보건, 생식보건을 인권의 측면으로 다루고 있다. 진행했던 연구에서 ‘낙태’에 대한 사회통념은 산부인과와 가임기 여성들만 봐도 보수적이다.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회통념은 의식화하지 않고 묻지 않고 토론하지 않는 굳어진 신념이라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인 부분에서의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부분과는 다른 부분이다. 여성들의 입장을 모아 입법에 영향을 주거나 입모자보건법에서 허용사유를 늘리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고 선택을 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임신중절에서는 여성의 선택으로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가 개입하고 굳어져 있는 윤리, 사회통념을 깨지 못하면 법은 그것을 그대로 반영하게 되고 이것은 국가국권주의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굳어진 윤리와 사회통념, 법 사이에서 살아내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힘듦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
오승이 판사님은 “우리는 낙태를 한 여성을 범죄자라고 하면서도 자해의 성격이 있기도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하기도 하며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몸에 무리가 간다는 것을 모르면서 하는 여성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낙태를 가장하고 싶지 않은 것은 여성일 것이다. 여하튼, 실제 현장에서 낙태사건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20만 건이 법적으로는 아무 일 없게 지나가는데 소수여도 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형사절차에 대상이 되는 비율은 여성이 높고, 남성들은 파트너의 임신을 무책임하게 방기하면 그 어떤 죄도 성립하지 않고, 주어진 조건 하에서 함께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였을 경우 오히려 동의낙태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는 모순에 처한다. 또한, 낙태죄에 대한 수사단서는 신고, 투서, 고소 등 사인의 정보제공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깨어지는 관계에서 유지하거나 상처를 입히기 위한 도구로 낙태죄가 부당한 지배력의 행사의 도구와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딜레마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계획되지 않은 성행위나 뜻하지 않은 임신, 출산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근절될 수 있는 세상, 재생산이 인간의 완벽한 통제 하에 있다는 듯한 법의 태도는 교만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현 상황에서 낙태가 사실상 가능한 선택지로 열려 있고,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고양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도리어 여성성의 가치절하에 기여할 수 있다. 낙태 상황에서 충돌한다고 여겨지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사실 어느 쪽도 그 내용이 충분히 심화되지 못했다. 마치 독립하여 존재하는 두 주체의 대립 구도인양 상상하는 기존의 인식틀로는 임신 상황을 통하여 여성과 태아 사이에 형성되는 일종의 공동체 관계를 놓치게 된다. 태아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단 한 여성에 대한 순전한 의존-을 고려하지 않는 법학 도그마가 어떻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먼저 태아의 생명권을 정의하고 대립 주체로서 여성의 권리를 규명할 것이 아니라 생명권의 시작점을 정하는 단계에서부터 두 존재의 신체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
신승일 과장님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내 가족, 동생이었을 상황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굳이 집고 넘어가자면 발제문 내용 중에 ‘낙태란 개인들이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어떤’이 아니고 매우 특별한 사건임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사회적 고통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의견을 가진다. 사회들에 대해서 모두가 다 어려운 상황(장애, 직장문제, 사회안전망 등)임에도 불구하지만 낙태가 아닌 출산과 사회구조체로 간 여성들도 많은 텐데 개인적인 부분인 22명의 사례를 가지고 사회적 고통으로 말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든다. 국가와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규제했던 때가 있기도 하지만 개인이 처한 사회적 맥락에서 보자라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 부분에 다른 측면이 있기도 하다. 그 원인이 사회경제적 문제라고 하여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부분의 근본적인 부분의 해결을 얘기해야 한다. 그 상황을 구조적으로 법 제도적으로 개선을 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대 낙태허용의 측면으로 가는 것은 좀 그렇다. 생명과 선택 그 극단의 측면을 취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비교하기로 oecd 국가에 비해서 사회경제적 허용범위가 좁다라고 하는데 단순한 사실만으로는 좁을 수도 있지만 그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여건 안전망의 문제가 훨씬 나은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도 불가피하다면은 (법적인 부분이 아닌) 가능한 부분을 열어두지 않았나. 단순히 법적으로 낙태허용사유를 수평적인 비교로 더 넓혀가자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