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소원 공개변론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11.10(금), 헌법재판소에서는 작년 10월, 6주된 태아를 임신중절한 혐의로 기소된 조산사의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이 있었습니다. 이번 공개변론은 "의사 등 전문가가 여성의 청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를 도왔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형법 제270조 1항의 위헌여부"를 판단하는 자리였습니다. 민우회가 포함된 "임신,출산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에서는 이번 공개변론이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논의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여 여성의 건강권, 재생산권,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현명한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여성의 중요한 권리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금까지 임신과 출산을 인구정책의 측면에서 다루어왔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법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하게 낙태를 금지하고 있으나 낙태율은 OECD국가들 중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모순은 성관계와 피임 실천에 있어서의 여성 주체성의 문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와 해고의 문제, 양육비와 교육비에 대한 부담 등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전적으로 전가되어 온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방기된 채, 여성들의 몸은 국가주도의 강력한 가족계획 정책이나 저출산대책의 명분으로 끊임없이 통제되어 왔습니다. 국가가 여성의 몸을 정책의 도구로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10조는 여성들에게 무의미한 조항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민우회 여성건강팀도 기자회견에 참여했습니다.
@ 김인숙대표님의 발언 중~
[기자회견문] 낙태 처벌은 명백한 위헌이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라-
오늘 헌법재판소는 지난 해 10월, 6주된 태아를 낙태시킨 혐의로 기소된 조산사의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을 연다. 이번 공개변론은 의사 등 전문가가 여성의 청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를 도왔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형법 270조 1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논의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오늘 진행될 공개변론에 주목하며, 헌법재판소가 아래와 같은 우리의 요구를 숙고하여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현명한 판결을 내릴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여성의 몸은 국가의 통제대상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을 통해 진행되는 과정이며 여성의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여성 고유의 경험이다. 또한 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다는 것은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성장까지의 긴 과정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선택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여성의 중요한 권리로써 보장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금까지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권리가 아니라 인구정책의 측면에서만 다루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법적으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강력하게 낙태를 금지하고 있으나 낙태율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낙태 처벌은 여성의 기본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지난 해 한국프로라이프의사회가 낙태 시술을 한 병원과 의사들을 고발하면서 여성들은 치솟은 병원비와 낙태 시술 거부로 원정낙태, 불법시술을 감행해야 할 정도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심지어 이와 같은 상황을 이용해 낙태 시술 병원을 알려주겠다며 임신한 여성을 유인해 성폭행하거나 상대방 여성을 협박하여 폭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법적, 사회적 통제가 여성들에게 어떠한 현실적 위험을 초래하게 될 수 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낙태 처벌로 인해 여성들은 때로 원치 않는 관계를 유지하거나 그 결과로 인한 고통을 전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낙인과 공포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건강까지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낙태 처벌은 여성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낙태 처벌이 강화될수록 낙태로 인한 여성의 건강권 침해 또한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통계자료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세계적으로 매년 7만 여명의 여성들이 안전하지 못한 낙태 시술로 사망하고 있으며, 500만 명의 여성이 합병증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를 찾고 있다. 심지어 300만 명은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합병증에 시달려야 한다. 낙태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낙태가 음성화 될수록 여성들은 임신의 유지여부와 관련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건강 문제 등에 대해 누구와도 상의를 하기가 어려워지며, 의사들 또한 여성의 건강권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수 없게 된다. 저소득층과 청소년의 경우 비용이 높아지고 의료적 접근성이 낮아질수록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여성에 대한 통제를 중단하고 여성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여야 한다.
낙태를 처벌한다는 것은 결국 법에서 규정한 최소한의 경우 외에는 임신한 모든 여성들에게 출산을 강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행법이 여성을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개인의 몸을 국가가 통제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명백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여성은 성관계, 임신, 임신중지, 출산 등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짐으로써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몸을 국가나 사회적 통제, 타인의 부당한 압력이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권리가 있다.
2011년 11월 10일 임신출산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 |
이날 공개변론은 오후 2시부터 5시 반까지 약 3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헌법소원 청구인 측과 이해관계자인 법무부 측이 변론을 각각 진행했습니다.
먼저 청구인 쪽인 조산사 입장의 황종국 변호사는(참고인 : 양현아교수_서울대법대),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결코 분리되는 문제가 아닌 자신의 일부이며, 외국에서도 임신 초기 단계의 낙태는 허용된다. 무분별하게 낙태를 허용하자는 게 아니고, 현행 법 조항은 과잉규제의 측면이 있는 만큼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보자"고 주장의 요지를 폈는데요.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나온 양현아 교수는 “한국 사회의 낙태는 여성의 성적 취약함을 방증하는 증거다. 낙태를 줄이려면 피임의 활성화, 미혼·저소득층 여성에 대한 지원 등이 필요하며 형사처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법무부 측은 "강간당한 여성이 낙태하는 것은 아버지가 죄를 아이가 짓게 하는 것이다. 낙태는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다. 현재 형법상 보호법익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아니라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이다. 이 사건의 경우 당사자인 여성이 제기한 기본권이 아닌 조산사가 제기했으므로 여성의 기본권 침해라는 측면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의 요지를 폈습니다. 이에 청구인 측은 "현재 낙태했을 경우 여성이 처벌받는 269조가 불법인 이상 여성의 동의나 부탁에 의해 의사, 조산사 등이 처벌받는 요지의 270조의 불법은 당연하며 위헌 여부도 연관될 수밖에 없다. 여성의 '부탁'자체가 위헌이기 때문에 270조에 대한 위헌 제기는 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날 헌법재판소 법관들의 질문은 대부분 "태아의 관점은 누가 대변하느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결코 이해관계의 대립의 문제가 아니며 이것을 형사처벌한다고 해서 낙태율이 낮아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심지어 이 법이 사문화된지는 오래 되었고 여성인권을 심하게 침해한다고 아무리 청구인 입장에서 주장해도 다시 돌아오는 답은
"태아의 생명권을 대변할 사람이 없지 않느냐, 태아가 여성보다 약자이니 약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 돌고 돌았습니다. 양현아 교수님이 이 문제를 여성과 태아의 대립각의 구도로 보지만 실제 남성의 부재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어느 법관은 "남녀 구도로 가는거냐? 왜 갑자기 그 구도로 가냐"며 발끈하시더군요. 3시간을 있는 것 자체가 많은 인내를 요구해습니다.
결국 "태아의 관점은 누가 대변할 것인가" 메아리로 공개변론을 마쳤습니다. 위헌 여부는 이후 양측에 개별로 통보된다고 하더군요. 이 국가가, 이 나라의 법이, 헌법재판소가 여성의 임신, 출산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고민과 상상력, 공감력이 부족한지 뼈져리게 느꼈던 시간이었어요.
논리문제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다시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한편으로 할 일이 많겠구나 싶었구요. 앞으로 민우회는 '낙태죄'폐지와 더불어 여성의 건강권, 재생산권, 자기결정권의 측면에서 '낙태'문제에 대해 입장을 펼쳐 나갈 예정입니다. 관심과 지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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