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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복지 의제발굴 프로젝트]릴레이수다회6 <여학생들에게 운동장을!> 후기2
| 10년 뒤 한국 여성의 행복을 상상하다 |
성평등복지 의제발굴 프로젝트
릴 · 레 · 이 · 수 · 다 · 회 | ||
#5
"여학생에게 운동장을!"
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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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수다회에는 학교 운동장에 여학생이 없는 건 결국 여성 건강권 문제라고 입을 모은 6명의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대안학교에서, 생활체육 현장에서, 청소년상담 현장에서 십대여성의 몸 경험에 주목해왔던 현장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대박 수다회! 먼저 참가자 여유의 후기를 전합니다.
(후기2에는 수다회 명언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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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문만 열면 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곳에 살던 적이 있었다.
나는 눈만 뜨면 운동장으로 나가 뛰어 놀았고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 놀았다.
그러던 중 길거리 캐스팅이 된 찬란한 역사가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얘기지만 지치지도 않고 뛰어노는 나를 보신
당시 체육 선생님이 직접 스카웃 제의를 하신 거였다.
그렇게 뛰어다닐 거면 차라리 운동부에 들어오란 말씀에
졸지에 학교 대표 핸드볼선수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때까지 만이었나? 싶다. 딱 초등학교 때까지.
나에게 운동장에서 뛰어 놀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시간.
남녀 구분 없이 뛰어 놀던 나는 이차성징이 오면서 주춤거리기 시작했고,
예전만큼 자주 운동장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무릎이 까지고, 이빨이 깨져도 달리기에 수월한 바지가 편했는데
중학교에 올라 교복치마를 입고 나서부터는 행동도 크게 변했던 것 같다.
학교가 원하는, 치마가 어울리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고,
‘여’학생 신분에 맞게 몸을 써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뛰어노는 데 대한 생각이 바뀌고, 함께 어울리는 아이들이 바뀌고,
체육 시간 운동 종목들도 바뀌어갔다.
어떤 것들은 내 안에서 바뀌었고, 어떤 것들은 외부의 변화였다.
하지만 지금 떠올려 보면 내 안에서 바뀐 생각들도 궁극적으로는
성별문화가 강화된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학년이 오를수록 교실 밖 수업은 줄어들었고 어쩌다 체육관을 이용하게 되면
좁은 공간에서 몸을 쓰는 종목이나 주로 무용을 했다.
무용 수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몸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과 종목의 제약이 계속 있어왔다는 뜻이다.
심지어 농구 수업 때는 팀 농구 연습이 아닌 골대 앞에서 골 던지는 연습만 했으니
재미있을 턱도 없었다.
나는 많이 답답했다.
더 뛰고 싶었고, 예전처럼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운동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운동장 있는 집을 선사해주셨던 부모님도 학년이 오를수록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길 바라셨다.
여자애가 운동하다 다치면 어쩌느냐고 설득하셨고,
공부를 해서 좋은 학교에 가야 하지 않겠냐며 회유하셨다.
결국 내 이름이 새겨진 운동복을 반납하고,
핸드볼 코치님이 추천해주신 학교가 아니라 입시를 위한 학교에 진학하게 됐을 때의
복잡한 감정들이 이번 좌담회를 하면서 많이 떠올랐다.
과거의 나는 공부를 위해 운동을 포기했다, 는 비겁한 변명을 몸에 새기고 있었는데
이번 좌담회를 통해 서로의 위치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큰 힘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활동적인 성향을 갖춘 내 개인의 역사만으로
모든 여학생들의 몸에 대한 경험들을 수렴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여학생들이 다양한 기회를 겪지 못한다는 건
분명히 문제적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입시전쟁을 치르는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더군다나 성별 이중 규범이 강한 한국 문화 안에서 대부분의 십대를 보내는 여학생들에게
몸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학교가 아닌 어떤 곳에서도 여성이 운동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없는 아이들은
그저 운동은 ‘아웃 오브 안중’이거나 ‘다이어트’ 만이 여성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운동으로 학습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더더욱 필요한 건, 정해진 틀
(학교, 혹은 사회가 규정한 ‘여’학생에게 맞는 운동, 혹은 입시에 의해 축소된 체육 수업)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별로 격차가 큰 몸의 변화에 따른 선택적 수업이나,
몸에 대한 가치 교육이지 않을까.
떠올려보면 학교 운동장이 코앞이던 그 집에 이사 온 첫날부터 새 친구들을 사귀었던 것 같다.
밤늦도록 계단에서 노는 나와 동생을 보고 같이 놀고 싶다며 옆집 친구들이 말을 걸었고,
자연스럽게 뛰어놀며, 부딪히며 만났던 친구들의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십대 때부터 익힌 몸의 감각과 운동에 대한 즐거움은 학교 체육시간뿐 아니라
나이듦에 따른 이후 경험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학교 운동에 재미를 못 느낀다는 요즘 학생들의 의견을 떠올려보며(비단 학교 운동뿐이겠냐만은)
더더욱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뛰어노는 ‘재미’,
사회가 요구하는 몸에 맞추어가기 보다 내 몸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는 ‘재미’,
그런 재미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높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서로서로 재미있는 운동을 하며 건강에 대한 고민도 줄이고,
혹은 고민 중인 건강의 주제도 변화하게 하고,
몸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가치들도 우리 스스로 조금씩 조금씩 변하게 하는 일.
생각해보면 쉽지 않기는 해도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희망이 생겼다. 후훗! :-)
by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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