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포럼 후기] '낙태' 처벌, 왜 위헌인가?
작년 여름, 한 여성이 낙태죄로 처벌받았습니다.
[형법 제 269조 1항(자기낙태죄)]
부녀가 약물 등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한국은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명시된 허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낙태'는 모두 형법상 범죄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모자보건법 14조는 임부나 그 배우자가 유전적 질병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 임신 지속이 임부의 건강을 심히 해할 경우 등 극히 제한적인 허용사유만을 두고 있고, 허용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배우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작년 처벌된 여성의 경우, 임신 중에도 가해진 상대 남성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관계가 파탄났고,
상대 남성이 '낙태'한 여성과 의사를 고발한 사건입니다.
고발 후 검사에 의해 상대남성 역시 방조죄로 기소되었으나
그 남성은 '낙태'시술에 대한 동의 각서를 작성했다가 철회한 바가 있어
'낙태'에 동의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항소심을 위해 '낙태로 기소된 여성 공동변호인단'이 꾸려졌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여성민우회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낙태죄' 법 개정을 위한 연속포럼을 세 번에 걸쳐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첫번째 포럼으로 작년 11월 7일, <모자보건법상의 '배우자 동의' 항목의 현실>이 진행되었습니다.
[후기: http://www.womenlink.or.kr/nxprg/board.php?ao=view&bbs_id=main_news&page=2&doc_num=1523]
그리고 올해, 위 사건의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공동변호인단은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서를 준비하고 있었고, 신청이 기각될 경우 헌법소원도 염두하고 있습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이란 재판부가, 진행중인 재판과 관련된 법률이 헌법에 반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헌법재판소에 요청하는 것입니다.
재판부가 움직여야 하는 것이기에 재판부에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해 달라고 신청서를 내는 거예요.
두 번째 연속포럼은 항소심 변론 및 위헌소송을 앞두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의 공동주최로
'낙태죄'의 위헌 주장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전략을 모으기 위한 자리로써 마련되었습니다.
서두가 엄청 길었네요 @_@;;
본격 후기는 여기부터!
(본문도 긴데 어쩌지..)
'낙태'처벌, 왜 위헌인가?
- '낙태'로 기소된 여성 변론과 위헌 주장의 전략
2014년 5월 14일(수) 2시 / 국가인권위 배움터
사회: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패널: 오지원 낙태로 기소된 여성 공동변호인단
장임다혜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진숙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
(폰트인가 하는 의심을 샀던.. 건강팀 활동가들이 한땀한땀 수작업으로 만든 간판(?)입니다:p)
먼저 공동변호인단의 오지원 변호사님이
본 사건의 개요와 위헌심판제청신청서의 요지를 소개해주신 후 몇 가지 고민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현행법상 이미 예외사유로 생명권의 제한을 인정하고 있는 등 생명권의 절대적 우위는 그 자체로 흔들리는 논리라는 지적을 할 것이다. 고민이 되는 것은 1) 낙태죄로 제한되는 권리들- 태아의 생명권과 대비되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이나 행복추구권에 대한 다른 명명이나 내용구성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부분이다.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이라는 단어가 이기적이라는 뉘앙스를 띠는 면이 있고, 현실적으로 임부가 단지 자기 행복만이 아닌 여러 복합적인 사정들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린다는 측면까지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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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윤진숙 숭실대 교수님께서 의견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1) '권리'의 명명 및 주장에 대해- 임부의 권리 주장이라는 것은 사실 이기적인 게 너무 당연하긴 하다. 개인이 자기 생명, 자유, 행복을 위한 권리를 추구하는 것은 개인이 갖는 천부적 권리. 전략적으로는 프라이버시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가는 것을 제안할 할 수 있다. 사생활권을 주장하여 인정된 사례가 미국의 로 대 웨이드 사건. 사생활에 관한 권리는 좀 더 보편적인 측면이 있고, 한국의 경우 미국과 달리 헌법에 명백히 사생활에 관한 법이 명문화돼 있기도 하다. 태아의 생명권도 '생명권'이라는 통칭보다는 '잠재적 생명권'으로 세분화해 명명하여 논의를 전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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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숙 교수님은 낙태죄 개정 내지 폐지, 모자보건법 개정, 남성에게도 동등한 책임 부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재생산권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제도적 보장이 필요함을 제안하며 발표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장임다혜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님은 이론적인 부분보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고민을 하셨다며 의견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어떤 요소들을 생명의 근거로 볼 것인가 역시 입장의 문제다. 또한 생명보호라는 대원칙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태아의 생명 자체로 논의가 집중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
장임다혜 정책위원님은 다른 나라들의 낙태죄 처벌면제 규정들을 정리하여 공유해주셨고, '배우자와의 관계가 이미 파탄났다'는 근거로 배우자가 고발한 낙태죄에 대해 불기소처분이 인정된 사례에 대한 자료도 추후 전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정현미 이화여대 교수님도 '낙태' 사안에 대해선 이미 많은 연구가 쌓여 있고, 거칠게 부딪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시작으로 발표해 주셨습니다.
1) 낙태죄로 제한되는 권리의 명명 및 내용 구성에 대해 - 낙태의 결정에 대한 평가는 법적 가치들의 서열, 태아의 상태나 임부의 구체적 상황만이 아니라 그녀의 자기방어적 염려도 고려한 망라적인 평가로 이루어져야 한다. 임부는 단순히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다. 책임을 전제로 개인적 이익들을 주장할 권리라는 점에서 자기결정권 대신 자율권이라는 단어를 쓸 것을 제안한다. |
정현미 교수님은 독일의 경우 낙태를 고민하는 임부에 대한 심리상담 시스템으로 인해 낙태율이 감소되었고 특히 2,3차 낙태율이 낮춰졌다는 사실도 주요한 근거로 예시해 주셨습니다.
패널의 발표 후에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일본의 경우 국제사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사회경제적 허용사유를 추가한 사실,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허용 판단을 담당하는 위원회나 상담기관이 있는 다른 나라의 사례 공유, 용어 사용 및 주장 전략에 대한 검토 등
주요한 정보와 의견의 교류가 이어졌습니다.
플로어에서 더해주신 귀한 의견도 몇 개 공유합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꼬깜
남성의 구타로 지적장애를 갖게 된 여성이 재활기관에서 치료를 받다가 임신 8개월에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고 낙태를 원하여 민우회에 상담을 요청했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여성이 의료전문기관이 아닌 여성단체 활동가에게 비밀스런 문의를 하는 것이 최선인 상황이 안타까웠고, 이 자체가 공적 인프라나 시스템이 없는 현실을 반증한다. 낙태를 무조건 막거나 종용하는 형태가 아닌, 출산 결정에 필요한 요소들을 스스로 파악하고 책임있게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 상담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낙태 법안 개정은 그러한 정책적 부분과 같이 진행되어야만 한다. 위헌이냐, 아니냐, 찬성이냐, 반대냐보다 여성의 현실적 갈등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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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활동가 유현미
국가가 계속해서 여성의 재생산을 통제해 왔던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사회경제적 사유를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들 상황의 딱함을 어필해서 마치 '힘드니 봐달라'는 식의 후견주의적 방식으로 이어질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전반적인 여성 재생산권, 건강권의 맥락에서 낙태가 논의되어야 하나, 한국사회는 이에 관심이 없다. 일례로 임신중절을 위한 약물이 다른 여러 나라에서 상용화되어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피임에 대한 문제제기, 피임에 적극적이지 않은 남성의 책임 등 국가, 사회, 남성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부분들을 입증하며 논리를 구성해가면 좋겠다. |
출판노동자 라고 밝히신 어떤 참가자분^^
법적 조항 중심으로 얘기를 하게 되니 자꾸 이미 어떤 패러다임으로 쓰이고 있는 단어를 계속 받아 쓸 때의 답답함이 있는 것 같다. 가령 생명이나 인간 존엄이나 권리- 어떤 생명을 누가 얘기할 때 실제로 생명이 사회적으로 존중되고 있는 정도와 무관하게 뻥튀기된 가치로 사용된다거나. 생명권이나 인간 존엄이란 가치 자체를 처음부터 재구성하여 논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출산, 임신, 낙태 역시 '누가 말하는 임신, 누가 말하는 낙태'가 너무 고정되어 있어서 어떤 특정한 측면만 부각된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 남성이 그 여성이게 과실치상을 입힌 거라고 볼 수도 있다는 점은 이야기되지 않는다. 성적 방종이니 생명 경시니를 다 떠나서 누구에게는 갑자기 일생일대의 재난과 사고에 직면하여 혼자 다 감당해야 할 상황이 되는 것. 이런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고민하게 된다. 낙태 문제도 늘 얘기되는 방식으로만 얘기되고, 어떤 부분은 아예 비춰지지도 않는 것 같다. |
포럼을 알차고 스무쓰하게 진행해주신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님의 마무리
- 사실상 위헌법률제청 신청은 기각될 가능성이 높고 헌법소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그 과정에서의 법률적 주장뿐만 아니라 헌법소원 이후의 사회적 합의나 설득의 문제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 과정에도 우리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포럼을 마치겠다.
- 라고 뿌듯하게 포럼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2시간 반이 넘도록 열띠게 진행된 포럼에 많은 분들이 끝까지 함께해 주셨어요.
머리를 맞대니 좋은 아이디어, 고민들이 쌓이는 것이 보람찼고,
함께해주신 분들 덕분에 든든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진행중인 항소심에서 꼭, '낙태'한 여성의 현실을 무시하는 처벌 조치가 거두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민우회와 공동변호인단이 끝까지 힘껏 지원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 이슈와 관련하여 여성운동 진영에서 더 고민하고 움직여야 할 지점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아마도?!) 마지막 세 번째 연속포럼의 주제는 '낙태' 이슈를 여성운동 차원에서 함께 고민하는 자리로 마련될 예정입니다.
나중에 또 공지 올릴게요! 그때도 더더더 많이 관심 갖고 참여해주심 좋겠습니다:-)
*포럼 당일 자료는 여기(<-클릭!)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 여는 민우회 여성건강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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