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계류 중인 스토킹범죄처벌특례법, 그 내용을 살펴봤더니
또 계류 중인 스토킹범죄처벌특례법, 그 내용을 살펴봤더니
- 2015년 2월 발의된 스토킹처벌특례법에 대한 실효성 검토를 중심으로-
지난 1월 안산에서 발생한 인질 사일 사건의 이면에는 가정폭력, 스토킹범죄에 대한 사법적 보호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한국사회의 현실이 있다. 인질극 이전에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흉기에 찔려 경찰에 신고했지만 현행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동하지 않았으며, 경찰은 피해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는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우리사회가 가정폭력, 스토킹을 ‘남녀 애정문제’로 ‘개인 간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일’로 인식하고 안일한 대처를 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흉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며 생명을 위협하는 스토킹 가해에 대해, 왜 경찰은 안일하게 대처를 했을까? 되짚다 보면,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법적 대응체계의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스토킹범죄를 처벌하는 법적 조항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지속적 괴롭힘’에 대한 조항으로 스토킹을 신고할 수 있지만 경범죄로 분류되어 8만원이라는 범칙금이 부과될 뿐이다. 8만원의 범칙금이라는 경미한 수준의 처벌 조항으로는 심각한 범죄인 스토킹에 대한 적절한 제재 조치가 되기는커녕, ‘가벼운 범죄’라는 왜곡된 인식을 강화시키고 있는 문제가 있다.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마다 스토킹처벌에 대한 법률을 국회의원들이 발의했지만 매번 계류와 폐기를 반복해왔다. 2015년 2월에도 ‘스토킹범죄의 처벌등에관한특례법안’(남인순의원 대표발의)이 또 발의되어 계류 중에 있다.
* 스토킹법률안 파일첨부 다운로드하기↓
스토킹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안(2015.2.13남인순의원대표발의).pdf
만약 이 법률안이 입법된다면 스토킹 사건에 대한 법적 개입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상담사례 적용을 통해 실효성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아래 사례는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공동주최한 ‘스토킹이 8만원 범칙금이라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다’ 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것이다.
선배였던 가해자가 10년 이상 피해자의 학교 및 집근처를 배회하고 피해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지속적으로 유포함. 학교를 다른 곳으로 전학했음에도 피해자의 학교에 자주 나타나고 피해자에게 전화하여 침묵하다가 끊는 전화를 지속적으로 거는 상황.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증거가 없어서 신고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은 피해자는 “차라리 때리기라도 하면 좋은데”라며 스토킹 상황에 대한 힘듦을 호소 |
계류 중인 스토킹 범죄 처벌특례법을 위 사례에 적용할 때, 피해자는 경찰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법에 따르면, 피해자가 신고를 하였을 때 경찰이 즉시 현장에 나가 학교주변에 나타는 가해자에게 스토킹을 중단과 가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를 통보하고, 피해자에게 전화하지 못하도록 전기통신을 용한 접근금지 등 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현재는 경찰이 응급조치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법률이 시행된다면 스토킹 피해자가 경찰에 피해사실을 알렸을 때 가해자에 대한 경찰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제재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조치가 시행되려면 신고된 그 사건을 경찰이 스토킹 범죄라고 인지해야 한다. 스토킹처벌특례법의 응급조치와 접근금지 등은 가정폭력특례법을 준용한 조항인데, 현재 가정폭력특례법이 있지만 현실에서 가정폭력피해자가 신고를 하여도 경찰이 현장에 방문하였을 때 가해자로부터 ‘아무 일 없다, 집안 일이다’라는 말을 듣고 아무런 조치 없이 되돌아가는 현실이 스토킹 범죄에서도 비슷할 수 있다고 예상된다. 현재도 경범죄이지만 스토킹에 대한 처벌법이 있다. 하지만 지금도 피해자의 신고에 대해 증거가 없어서 신고가 안된다는 경찰의 입장은 스토킹처벌특례법이 있다고 해도 스토킹이라는 증거가 없으니 조치를 취할 수 없다로 별 달라질게 없을 수 있다. 결국 특례법이 생기더라도 스토킹이라는 경찰의 인식 혹은 확신 여부에 따라 피해자 보호가 결정되며, 가해자 처벌은 여전히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법이 만들어졌을 때 어떤 효과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검토는 법률 발의 전 반드시 검토되어야 하는데, 현재 계류된 스토킹처벌법이 그 과정을 거쳤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계류된 법률안은 스토킹 피해자 수를 경찰에 경범죄로 신고 접수된 사건수를 기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공동주최한 ‘스토킹이 8만원 범칙금이라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다’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피해자의 20.1%만이 수사기관에 신고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장기적인 피해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가 심해진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신고하기 어렵고, 스토킹 자체를 처벌하는 것은 경범죄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토킹에 대한 특례법은 만드는 이유는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을 반영하기 위함인데, 경범죄 신고건수를 기준으로 스토킹피해자수를 추정했다는 것은 스토킹 범죄의 현실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법률안을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국회에 계류되다 폐기되어왔던 많은 스토킹 처벌 특례법안들이 통과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스토킹 피해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 문제 해결을 위해 법률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의된 법률들 몇 가지만 비교해 봐도 기존 스토킹 법률안에 조금씩 문구만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의원 활동 실적의 수단으로 스토킹법률안 발의한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성폭력상담소 등에 접수되는 스토킹사례를 분석하고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스토킹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고민을 담은 법률을 발의해야 법률 제정에 대한 책임성도 같이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초기 스토킹이 시작되었을 때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강력범죄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스토킹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스토킹처벌특례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실효성 있는 법률을 만들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사건을 지원하고 있는 관련 기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법 적용의 효과에 대해서도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입법 이후 스토킹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사건을 접하는 검사·사법경찰들의 스토킹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범죄라는 인식전환에 대한 정책적 고민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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