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연대 '첫사람'
[첫사람 동행 후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연대 '첫사람'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는 ‘공감’에 기반 한 아픔에 대한 연대야말로
차이와 거리를 뛰어넘는 가장 인간적인 일로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이날, 성폭력피해에 공감하는 첫 사람으로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성과 객관이 아닌, 공감과 연대가 저를 추동할 것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첫사람 고연휘 -
3월 3일 오전, 2016년 들어 처음으로 첫사람 재판동행에 참가하였습니다. 2015년 여름께부터 모니터링에는 몇 차례 참여했었지만, 실제 피해자 또는 가족과 대면할지도 모르는 재판동행지원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날의 경우 평소와 같이 일정상 여건이 되자 참여를 한 것이었고,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가족분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처음 떠오르는 감정은 ‘당혹’이었습니다. 무명인이 아닌 실제 온도를 가진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가족을 마주하고,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다는 난처함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일전에 총화모임에서 첫사람에 대하여 한 문장으로 각자의 생각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모니터링에 참여하며 ‘첫사람은 감시자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제가 첫사람 활동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인상과 태도였습니다. 첫사람 활동은 법정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성폭력을 기민하게 읽어내고, 제반 성폭력 피해사건을 법정이 어떻게 핸들링하고 있는지를 바깥의 시선으로부터 짚어내고 비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마음’보다는 ‘이성’이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3일 피해자 가족분과 ‘동행’을 하게 되자 ‘감시자’라는 위치규정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판사가 이례적으로 피해자의 출석여부, 피해자 가족의 출석여부를 확인하고 피해자 가족의 목소리를 법정에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을 주었을 때, 고통과 분노를 뱉어내시는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자 ‘이성’보다는 ‘마음’이 불리어 나오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첫사람 활동에 참여할 때마다 자그마한 의문을 품어오고 있었습니다. 나의 참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판 중 피해자의 억울함과 절규는 법정에 앉아있는 그 누군가에게도 닿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방청석과 재판정을 분리하는 경계를 두고, 재판이 진행되는 공간만큼은 이쪽과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사건당사자인 피해자의 고통과 분노는 피고측 변호사의 변론으로 본질이 훼손당하고 해체되어, 객관적 시각이라는 포장 아래 무감정한 관리자들의 직무로서만 다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제도적으로는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회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법적사실을 판가름 한 결과가 아니라, 공통의 정의수호와 윤리적 가치가 우선적으로 요구되어야하는 것 아닐까요. 이러한 면에서 재판장은 문제가 있는 곳이고, 누군가는 그 문제를 지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결권도 표현의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그저 최소한의 시민적 의무로서 자기위안과 자기충족만을 위해 참여해야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의문도 항상 활동과 함께했습니다. 물론 사회개혁 요구와 문제화를 통해 의식 확장에 일조를 할 수 있다는 것, 구조의 변혁은 단기적 성과물이 아니므로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거대하고 느린 사회의 흐름과 나 일개인의 생활의 흐름은 서로 다른 층위를 지나고 있어, 몰입과 능동적 대응이 어려워지기도 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3일 동행에서 피해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경험은 이전과 달리 다가왔습니다. 얼굴과 온도와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의 아픔을 나누는 것은, 활자로 기록되어 추상으로 다가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과 다릅니다. 나의 감정이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고 공감하여 서로 대면하게끔 합니다. 물론 사회부조리를 비판하는 것, 윤리적 가치를 논하고 변화를 주장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당연히 갖는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민적 권리와 의무보다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는 ‘공감’에 기반 한 아픔에 대한 연대야말로 차이와 거리를 뛰어넘는 가장 인간적인 일로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이날, 성폭력피해에 공감하는 첫 사람으로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성과 객관이 아닌, 공감과 연대가 저를 추동할 것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모든 분들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첫사람 고연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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