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낙태죄 전면 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10/15)
(위_그림) 2020년 10월 15일 <낙태죄 전면 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 홍보물
분노한 사람들의 5시간 이어말하기
낙태죄 전면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 행사가
지난 10월 15일 목요일, 한국여성민우회 지하1층 교육장(원경선홀)에서 열렸습니다.
필리버스터는
계획했던 5시간을 훌쩍 넘겨, 6시간 15분 동안
60여분의 시민들이 발언에 참여해주셨고,
200분이 넘는 많은 시민분들이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함께 해주셨습니다.
(현재 당일 유튜브 영상은 비공개로 전환되어 있어요. 후기로 필리버스터 당시의 생생함을 전달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0월 15일 목요일 오후 4시 40분
필리버스터 시작 20분 전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한 체온체크 등 방역 확인과 발언 안내를 위한 접수대를
필리버스터가 열리는 시민공간 나루 건물 3층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실에 설치하였습니다.
활동가들의 안내에 따라, 준비된 노트북으로 실시간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필리버스터 현장은 코로나예방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필리버스터 참여자 분들께는, 2017년 민우회가 진행한 <낙태죄 폐지를 위한 사진 프로젝트 Battleground 269> 기념 엽서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필리버스터 진행 현장에는 낙태죄 폐지를 위한 사진이 설치되었습니다.
사진 속 사람들은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나의 삶을 선택할 권리", "우리도 살자, 쫌!", 그리고 완전히 삭제되어야 마땅할 형법 상의 낙태죄 문구를 직접 몸에 새기고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이었는데요. 2017년 민우회가 포토그래퍼(겸 민우회원인) 혜영과 함께 작업한 <Battleground 269> 프로젝트의 사진들이었어요.
그 때의 멋진 사진들을 다시 보려면? <낙태죄 폐지를 위한 사진 프로젝트 Battleground 269> 사진 다시보기 2017년 한국여성민우회, 포토그래퍼 혜영 공동진행
1차 사진공개: http://womenlink.or.kr/minwoo_actions/19370?f_query=battle&page=2 2차 사진공개: http://womenlink.or.kr/minwoo_actions/19376?f_query=battle&page=2 3차 사진공개: http://womenlink.or.kr/minwoo_actions/19387?f_query=battle&page=2 |
10월 15일 목요일 오후 5시
필리버스터 시작
필리버스터는 민우회 꼬깜, 영지, 노새 활동가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요,
오후 5시, 꼬깜 활동가의 인사로 박수와 함께 낙태죄 전면 폐지를 위한 5시간 이어말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발언은 이편 활동가의 대독 발언으로 시작되었어요.
이편 활동가는 25명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을 담은 책 <있잖아, 나 낙태했어>(2013년 한국여성민우회 지음, 다른 출판사)의 서문을 읽어주셨습니다.
이어지는 발언들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두의 페미니즘이라는 대학생 페미니즘 단체에 속해 있는 김예은입니다.
정부의 낙태죄 입법예고안은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여성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예고안에는 다른 의료행위에는 적용되지 않은 <서면동의서>나 <의사의 거부조항>도 있습니다.
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여성들은 공적 사적으로 (안전한 임신중지를) 방해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많은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 돈, 시간, 정보가 부족합니다. 후기 임신중지를 하게 되거나 불법수술로 내몰릴 위험이 있습니다. 어떤 수술을 거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형법상 주수를 넘기는 사람이 속출할 것입니다. 모자보건법만 문제가 아닙니다. 형법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정부예고안에서 '현행과 같음' 이라는 다섯글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14주 이후의 조건을 붙이는 것도 이상합니다. 거짓말 한 사람은 처벌 안 받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처벌 하실 건가요? 사회경제적 사유는 도대체 누가 인정할 것입니까? 하나하나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남은 건 여성만 처벌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국가는 여성의 재생산을 통제할 권리가 없습니다. - 김예은 님
안녕하세요. 저는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려고 왔습니다.
2016년 여름이었습니다. 관계 도중 콘돔을 몰래 빼 버린 남성에 의해 임신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랐습니다. 임신의 증상으로 저는 하루에 피자를 한 판씩 먹어치웠습니다. 먹는 입덧이 아니었으면 저는 너무 늦게 알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공개된 어떤 가해자의 판결문 중.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한 것은 묵시적 동의로 보아 무죄로 한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연인사이일 적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서로 똑같이 했기 때문에 삭제할 수 있었는데 삭제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저는 관계 도중 남성이 콘돔을 뺏을 때 그남이 그게 재미있는 장난인냥 그남이 이야기했을 때, 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묵시적 동의에 의해 임신하기로 했을까요? 그남은 제게 아이를 낳아달라고 했습니다. “니가 동의서를 써주지 않아서 자살하겠다”는 제게, 니 장례식에 너의 아이와 가겠다는 말을 햇습니다. 누구의 아이란 말입니까. 제 몸의 일부였을 뿐입니다.
결국 그 남은 동의서를 써 주지 않습니다. 아직도 제게 종종 연락을 해옵니다. 잘 지내냐는 파렴치한 말로 시작해서, 꼭 자기가 나를 임신시킨 적이 있다는 말을 꺼냅니다. 저는 혹여 대답을 했다가 그것을 빌미로 신고 당할까봐 꺼지라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저는 홀로 수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절수술 후에 비타민 주사를 맞으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사귄 남자친구, 동의서를 대신 써주기 어려워했던 남자친구의 주차에 대한 짜증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수술 후 착용하라고 병원에서 준 기저귀 같은 것은 불편했습니다. 낙태죄가 없어도 중절수술은 저에게 불편한 기억입니다. 고작 세포하나 내 몸에서 뗴어낸 것 뿐인데도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억이 평생의 기억으로 남지 않습니다. 국가는 내 몸에 대한 기억을 재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여성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 수잔 님
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가!!
나의 엄마 이야기로 질문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엄마는 딸5명 아들 2명을 낳았습니다. 그 중 맏이가 저입니다. 나의 유년의 기억은 엄마가 또 딸을 낳으면 어쩌지와 학기 초가 되면 자매와 형제의 숫자를 카운팅 하는 선생님의 손끝을 따라 일어서기를 해야 했던 끔찍한 기억이 있습니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점점 시선이 내게 몰린다는 걸 느낄 때의 그 압박감은 학기초 학교를 가기 싫은 이유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배가 불러올 때쯤이면 마을에서 만나는 어른들은 나를 붙들고 이야기합니다. 삼신할미한테 남동생 보내달라고 잘 빌어야 해 라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가 제발 아들을 낳길, 그리고 내 기도가 삼신 할머니한테까지 닿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딸을 낳은 엄마를 집안의 어른이란 사람들은 외면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크게 내는 것으로 불편한 기운을 온 집안에 감돌게 했습니다.
엄마가 내어 놓은 옷가지를 통에 담아 빨아오던 기억이 그대로 있습니다. 추운 겨울날이었고 손이 너무 시렸던 기억과 얼음장 밑으로 핏물이 선연했던 기억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때 내 나이가 겨우 열한살 그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낙태는 일곱의 아이를 낳는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유는 아무래도 딸인 것 같다는 거였고 터울이 지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그때의 인공임신중절이라는 게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그 험한 시간을 질러와 엄마는 살아계십니다. 작은 몸이 견뎌냈을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먹먹합니다.이러한 엄마가 낙태죄를 겁내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습니다. 아니 있는지 조차 몰랐다는 겁니다.
형법269조의 연혁을 들여다 봤습니다. 53년에 제정된 조항 중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만환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40여년 가까이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조항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생명이 귀하다면서 어째서이 법은 이렇게 사문화되다시피 한 걸까요.
이에 대해 조은주는 가족과 통치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대적 출산 조절이, 정부 주도의 국책사업에 의해서 확산되었다는 사실. 한국에서 낙태가 법적으로 허용된 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 유신치하 에서였다는것. 임신중절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안이 66년 당시 난제인 인구조절 문제에 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주요 과제가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1972년 시월유신 이듬해 유신 치하의 비상국무회의에서 모자보건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적고 있습니다. 70년대를 관통했던 나의 엄마의 몸은 낙태가 죄가 되지않는 세상을 그렇게 살아냈던 것입니다.1960-70년대의 속칭 가족계획사업이라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부상한 현재의 인구위기 담론과 출산장려 정책과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을 책임지고 가치와 효용의 영역에 삶을 배분하는 권력, 평가하고 측정하며 정상성과 위계를 생산해내는 권력이라는 점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인구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인구를 향한 통치의 역사적 계보를 이으며 상통하고 있다 밝히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마치 시대가 달라졌다는 듯이 말하면 안됩니다. 너무 뻔뻔한 것이지요.
지난 7일 입법 예고된 정부의 낙태죄와 관련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현 정부 출범이 어떠했는가를 복기하면 이럴순 없을 것입니다. 모두를 위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거라면서요. 그런 정부운영을 할거라면서요. 그런데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리 해석해 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도대체 어디가 다른지 모르지만 다르다 강변하는 현 정부는 내용을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출산을 둘러싼 여성의 욕구와 이해, 욕망은 결코 투명하지 않으며 여성의 자율성과 행위성은 그 자체 대단히 모순적이며 복잡다기 하다는것. 여성들의 욕구는 계급이나 지역, 성적 실천에 따라 상이할 뿐 아니라 결코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조은주 선생님의 글에 백번 동의합니다.
국가가 ‘처벌’로서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는 게 복잡하고 힘들며, 임신중지 여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조차 당신들의 이해를 구해야 할 만큼 우리의 삶을 처연하게 만들지 말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당사자가 아니면 판단하기 힘든 사실을 정부가 판단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과 무식함을 알아차리고 거두기 바라며 제발 제대로 된 성평등 교육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제발 임신과 출산과 양육에 있어 사회적 기반을 어떻게 마련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는데 시간을 쓰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질문합니다. 어찌하여 엄마의 시간이 나를 지나 딸의 시간까지 이어지도록 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지를.... 틀려야 하는지 .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습니다. 더이상 강압하려 하여도 어림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더이상 여성의 몸이 국가정책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어줍잖은 간섭은 그만 거두시라 권합니다. - 이정아 님
필리버스터 현장에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직접 현장에 오셔서 자신의 경험을 나눠 주고 계셨습니다.
현장에는 공감의 박수와 눈물로 자리를 지키며 경청하고 계신 분들, 유튜브 생중계 채팅창을 통해 마음과 응원을 보태주시는 분들로 점점 자리가 메워지고 있었는데요. 모든 이야기가 다, <낙태죄 전면 폐지가 왜 필요한지, 왜 우리가 그토록 거리에서 광장에서 목 놓아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외쳤는지>에 대한 외침이자 이런 목소리를 모두 외면한 채 후퇴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에 대한 강력한 일침이었습니다.
이어진 대독 발언들도 일부 소개합니다.
대독 발언은 사전에 온라인 신청폼을 통해 보내주신 글을, 필리버스터 현장에 참여해주신 분들이 읽어주셨습니다.
발언문을 쓰기 위해 깜박이는 커서를 보면 허망한 기분이 듭니다. 추위를 뚫고 집회를 나가고 파노라마처럼 기억납니다. 한참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었습니다. 그 구호들을 다시 쓸 수 밖에 없는 것이 슬픕니다. 작년 4월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왔을 때 스텔싱을 하겠다며 조롱했습니다. 정수리가 뜨거웠습니다. 다시는 우리의 발목을 잡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너희가 악랄한 사람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 것이라 결심했습니다. 더 많이 이야기 하고 더 좋은 세상을 꿈꾸고 싶습니다. 지금은 꼬구라져 있습니다. 여성에게 폭력적입니다. 국가는 나라는 존재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만큼 국가에게 농락당한 기분은 처음입니다. 언제까지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시대를 후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나리에서 인간이고 싶습니다. 제 몸이 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제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놓아야 하고 잃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언젠간 제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 때 참 힘들었다고 위로 받고 싶습니다.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관리를 위해 권리를 위해,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십시오.
정부의 ‘낙태죄 유지’ 입법 예고안에 대한 여성학자 권김현영 선생님의 칼럼이 매우 공감되었다. 그 글은 출산 정책 아래 태어난 딸로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서술되어 있었다. 시대와 구체적 상황은 다르지만 칼럼의 서술된 내용과 나의 경험은 놀랄만큼 닮아있었다.
내가 태어난 1996년은 국가의 가족계획의 목표였던 출산율 2.1명이 초과달성되어 1.7명 수준의 출산율이 지속되고 있었고 때문에 국가차원의 출산 억제 정책이 종결되었던 해였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둘만 낳아 잘기르자’ 표어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가족의 경제 사정이 세아이를 키우기에는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셋째아이 출산을 두고 고민하던 아들 부부에게 나의 친할아버지는 아이를 낳으라고 압박을 넣으셨다. 내가 태어난 것이 할아버지의 말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린 나에게 아주 자주 할아버지는 이 일화를 얘기해주셨다.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려웠던 것 같다.
특히 이 얘기를 듣고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이 복잡했다. 3명의 육아를 홀로 담당하고 있던 엄마의 피곤한 얼굴에 대고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미안해해야 하는지, 셋째아이가 아들이 아니라서 서운했다는 엄마에게 아들보다 실속 있는 막내딸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권김현영 선생님의 말처럼 성차별 사회에서 딸의 탄생은 온전히 축하받지 못할 일이었고, 독박육아를 감당하는 여성에게 임신은 어떤 좌절이나 고통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런 현실을 빼놓고 낙태죄를 오직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이기적)권리의 대치로 설명하는 것은 부정의하다.
무엇보다 지금껏 시행된 가족계획은 세금을 착실히 내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정상인’을 확보하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었고 여기서 태아의 생명권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계획 하에 동의없이 이루어진 불임수술, 장애인 등 시설 거주인에 대한 강제불임/낙태시술 등이 조직적으로 행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을 뼈대로 하는 국가의 ‘인구정책’은 국가발전을 위한 ‘질 좋은’ 인구에 어떤 이들을 배제해온 역사에 다름 아니다.
지금 정부가 입법예고한 안은 지금껏 국가가 자행해온 차별적 출산정책에 성찰도 반성도 없고, 그동안의 인구정책을 위해 여성의 몸을 통제해왔던 권력을 뺏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현실 앞에 단호한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국가는 인구정책으로서 여성의 몸이 동원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폐기하고,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을 마련하라!” “낙태죄 전면폐지하고 여성의 안전한 재생산권에 대한 대책 마련하라”“우린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보니 님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천주교 신자의 의견을 대독하겠습니다.
"종교 안에서 여성은 언제나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한 종교에서 선언하는 것들이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인입니다. 카톨릭에서 이혼과 낙태는 둘 다 정말 중대한 악이죠. 저희 아버지는 조현병을 앓고 계신데 주된 망상이 저희 엄마의 외도였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일평생을 아빠의 의심과 폭력 속에 사셨어요. 저는 그 모든 것을 함께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빠의 그런 모습을 알았을 때 왜 진작 이혼하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엄마는 답했습니다. 아빠의 집착과 의심이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했을 거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이미 뱃속에 저를 가지고 있었기에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집안의 생계를 엄마 혼자 책임지셨음에도 엄마는 자신을 죄인처럼 여기셨습니다. 아빠의 병은 평생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며, 약을 복용해도 망상의 잔가지가 뻗어나가는 것만 막을 수 있을 뿐 망상의 뿌리는 뽑아낼 수 없는 병임에도 자신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여기셨습니다. 매일 밤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꿈을 꾸고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면서도 자신을 탓했습니다. 겨우 아빠에게서 벗어난 지금에서야 엄마는 오랫동안 꿈꿔 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이뤄가며 행복을 찾아가고 계십니다.
만약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남자의 집착과 의심이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범죄일 뿐이라는 걸 미디어에서 바로잡아줬다면, 홀로 아이를 키우거나 낙태를 하는 것에 대해 여성 당사자의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제도와 인식이 잡혀 있었다면 엄마의 삶은 더 일찍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필리버스터 발언자 분들 중 직접 오시지 못한 분들은
사전 신청과 안내를 통해 줌(zoom)으로 연결해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제주도, 강원 춘천, 경기 고양, 파주 등 국내 각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멀리 독일 등 해외에서도 발언신청을 해주신 덕분에
소중하고 뜨거운 목소리들이 많이 모였던 저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낙태죄 폐지를 위해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이렇게나 다양한 곳에서
함께 목소리 내고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뭉클하고 기운 나는 밤이기도 했어요.
유튜브 생중계 채팅창에서도 내내 열띤 참여와 응원이 댓글로 이어졌는데요,
동시접속자가 150명을 넘나드는 6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시며
긴 발언들에 함께 끄덕이고, 토닥이고, 눈물 흘리다가, 노래를 부를 땐 응원봉과 박수이모티콘을,
화가 날 때는 함께 분노를 나누기도 하며 코로나시대의 랜선연대를 보여주셨습니다.
일부 참여댓글 내용을 소개해봅니다.
[수신지님] 오늘 저도 참여하고 싶었는데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온라인으로 끝까지 함께 할게요!
[여울님] 낙태죄폐지하라!! (업무중에 들어와서 계속 듣지는 못하지만 민우회 활동 무조건 지지합니다! 화이팅!)
[큰일이다야님] 발언하느라 에너지 많이 쓰셨을 거 같아요.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jny님] 가톨릭 신자들의 연대, 감사합니다! 얼마나 용기있는 행동인지, 전 신자로서 잘 알고 있습니다.
[Emma님] 그니까요 생리도 임신도 육아도 여성으로 사회생활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여성당사자의 말에 가장 먼저 귀를 기울여야죠
[모래두쥐님] 낙태한 여성이 유죄라면 임신시킨 남자는 왜 처벌 안 받겠습니까 정말 성차별적이기 짝이 없죠
[아무님] 안들리시겠지만 박수로 위로하고 연대합니다
[소다님] 끝까지 함께 싸워요
[강수연님] 필리버스터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께 연대합니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화이팅입니다!
[은사자님] 떨리는 목소리에서 마음이 느껴져요ㅠㅠ 보는 저도 눈물이 다 나네요ㅠㅠㅠㅠㅠ
[Demi Hwang님] 우리는 안전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려면 낙태죄가 사라져야합니다
[슬슬님] 엉엉. 낙태비범죄화 꼭 이뤄내요!!
[체크검정님] 인구 감소의 원인을 여자에게 돌리고 죄를 씌우는게 참...2020년 이라고 안 믿길정도에요
[두유님] 사회가 아무리 잘 살게 되어도, 낳기 싫으면 않 낳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김묘정님] 다음세대에는 물려주지 말아야 합니다
[아가리다이어터님] 분명 남 일인데도 생각보다 듣거나 보기 어려운 일들이 아니라서 더 속상하다.
[ㅇㅈㅇ님] 모두의 싸움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혜영님] 전국 각지에서 발언해주시는 분들 반갑고 고맙습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연대를 전합니다
[KK님] 이 시간 모두가 한 마음으로 연대하는게 느껴져서 마음이 뭔가 뭉클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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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현장의 발언들을 계속해서 소개합니다.
임신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행복해하는 사람을 얼마나 있을까?
34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임신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두려움이었다. 애는 생기면 다 크게 되있어 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이 더 무섭게 했다. 우린 상황과 환경이 다 다른데도 그렇게 던지는 말에 나는 맞았고 아팠다.
월경은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되었다함을 알리는 신호라고 배웠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지금은 더 이른 나이때부터 결혼 전까지는 임신을 하지 않게 조심해야하는 몸이라고 그 몸은 스스로 지켜야하고 예방하라고 했다.
술을 마시고 기억이 나지않는 성관계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그 다음 월경주기까지 극심한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만약 임신이라면 난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병원은 어디에 있을까? 내 수중에 돈은 얼마나 있지? 부모님이 아시면 난 살아날 수 있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야했고 전전긍긍하다보면 나를 더 애태우려하는지 예정일보다 몇일이 더 지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럴때마다 자궁을 떼버리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섹스는 혼자하는게 아닌데 콘돔을 끼고 피임약을 복용한다고 해도 100프로 피임은 없는데 왜 임신에 대한 걱정은 여성만이 해야하는가? 성경에서 하와가 뱀에께 꿰어 아담을 동조시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은 그런 하와에게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벌로 주셨다. 그런 하나님이 미웠다. 차라리 남성에게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 있었다면 지금과 달랐을까?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이유로 협박을 받는다. 그렇게 또 여성은 폭력상황에 놓이게 되며 임신과 임신중지 사이에서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여성은 본인이 보호자임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보호자의 동의와 사인까지 또 구해야 한다. 또한 임신중지에 대한 죄책감까지 가져야 하는 사회이다.
나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결정할 수 없다면 도대체 누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저출생이 여성의 경제와 노동의 진출이 원인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출생율울 높일 수 있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자궁을 붙여 내가 원할 때에 임신을 하고 원하지 않을 땐 떼서 임신을 막고 싶다.
월경의 혈조차 그냥 꽉 조이면 안나오지 않아? 라고 말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이런 성교육의 부재속에서 피임이 뭔지도 모르는 싸튀충에게 포괄적성교육을 좀 배우고 오라고 그리고 자궁을 붙여주고 입장바꿔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여성의 몸은 국가의 소유가 아니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이다.
- 희동이 님
병원에서 응급피임약을 처방받았다. 나는 덜렁 처방전 하나를 들고 약국을 찾아갔다. 토를 하거나 설사하면 다시 오라고 했다. 속은 메스껍고 졸렸다. 임신테스트를 했다. 임신 5주의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의사에게 원치않는 임신이라고 했다. 나는 취업준비생이었고 남자친구는 군인이었다. 절박했던 나는 의료 전문성, 안전, 부작용 따위를 고려할 여력조차 없었다. 내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의료서비스 질도 그만큼 낮아졌다.
직장을 다니고있는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120만원의 사후관리 해주는 병원을 택했을리라. 하루빨리 수술날짜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군인이라 내원하기 어렵다고 했더니,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 없다고 딱잘라 말을 반복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구걸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하루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했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그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내 안전을 보장할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돈을 주면 남친 대행해주거나 연결해주는 업체도 있었다. 이미 법은 날 낙태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만들었다.
위 이야기들은 내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현재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국가는) 찬성 혹은 반대, 여성 결정권, 태아 생명권 등 이분법으로만 얘기해왔다.
나는 내 생명을 위해 기꺼이 불법이 되었다.
생명이 가벼워 임신중지를 결정하지 않았다.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맥락,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여 정해야 한다.
이것은 여성의 문제, 남성의 문제도 아니고, 모두가 함께 관심가져야 한다.
앞으로도 여성에게 닥친 일상의 일이다.
낙태죄는 전면폐지되어야 한다.
저는 장녀입니다. 제가 태어난날 어머니의 친척분이 오셔서는 '쓸모없는 딸년같은거 낳고서 편하게 누워있다'같은 소리까지 들었다고 하십니다. 저는 88년생 용띠입니다, 비슷한 출생연도중 90년생 말띠들은 그저 사주상 기가 드센 여자가 나온다를 근거로 낙태가 많았다는 어르신들의 말씀과 실제 통계기록도 있습니다. 남아선호와 남존여비가 만든 사회적 참사와 손실이 아닌지요? 낙태를 유발하는 온갖 요인들은 그대로 둔채 개인인 산모에게만 최종적으로 죗값을 묻는다는것이 과연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기여할까요?
한국 근현대 경제발전 모델이 되었던 소련은 1920년 '인공적 임신중절에 관한 포고령'을 냈습니다. 혁명이전의 러시아 제국때는 낙태를 살인죄로 간주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소련에서 낙태 합법화가 됐던 요인은 첫째, 가정과 일상의 안정을 위해 산모인 여성이 선택 가능한 방어책입니다. 둘째, 낙태를 죄로 못 박지 않아 합법적으로 의료시술을 받게하여 적어도 산모이자 시민의 목숨을 지키자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전 시민 구성원을 지키고자 하던 법령도 있었는데, 2020년 한국에서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려는 부분없이 그저 관습적인 낙태죄를 유지하려는것이 과연 시민사회에 이점이 클지 의문입니다. - 88용녀님(층층님이 대독발언으로 읽어주셨습니다.)
언니는 24살에 임신을 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언니는 그 때 지구 반대편에서 교환학생을 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언니와 상대방은 결혼한 사이도, 결혼을 약속할만한 탄탄한 경제력도 없었다. 먼 타국에서 가족 이외에 어떠한 사람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언니는 가족 카톡방에 장문의 카톡을 올렸다. 아빠는 그 카톡을 읽은 후 아기처럼 울었고, 엄마도 죽어버릴 거라며 울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부모님은 결혼하지 않은 딸이 임신을 한 것을 받아드리지 못했다. 엄마가 실제로 죽어버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기에 나는 잔뜩 겁을 먹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들려오는 울음소리들을 들으며 공포에 떠는 시간들이 지속되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건 나는 엄마가 정말로 죽어버릴까바 두려워서 “낙태”를 하라고 종용했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을 한 내 자신이 ‘옳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 때로 돌아가서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 가족 각자의 원죄로 남아버렸다. 언니가 마침내 인공임신중지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한국에 언니가 다시 돌아왔을 때 언니는 인공임신중지를 이미 한 후였다. 우리 가족은 다시는 그 때의 일을 복기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2019년 4월 11일 나는 헌법재판소 앞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울면서 발언을 했었고, 인공임신중지라는 것이 내 안에서 트라우마적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너편에는 "태아는 생명이다" 따위의 피켓을 든 사람들이 가득 서 있었다. 우리는 몇 발 자국 거리에서 정 반대의 피켓을 들고 저마다의 말들을 소리치고 있었다.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났을 때 나는 매우 복잡한 마음을 느끼며 또 조금 울었다. 벅차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게 뭐라고..'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3년간 겪은 일이 과거의 일이 되는 것이 이렇게나 쉽게 결정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착각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이후의 과정이 험난할 것이란 사실은 알았다. 그렇지만 정부 입법안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나는 이렇게 손쉽고 빠르게, 밀실 합의를 통해 졸속 입법안이 공개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궁금해졌다. 이 법안을 만든 사람들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인공임신중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먼 타국에서 인공임신중지를 하기 위해 정보를 모았던 언니가 필요로 했던 시간의 양을 알까. 그 시간동안 흘렸던 눈물의 총량을 알까. 하루아침에 지옥에 떨어진 후 매일 매일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그 긴 시간을 알까. 그것을 알았다면 이러한 무책임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인간이고 ‘생명’이라면 말이다. 화가 나면서 슬프고 또 지겹다. 국회 앞을 지나다니면서 자주 보는 "태아는 생명이다" 피켓이 지겹고, 이 문제가 정부가 통제할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문제라 주장하는 것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하는 것이 화가 나고, 아직도 난 '낙태죄'가 완전히 폐지된 세상에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해서 슬프다. 딱 하루만 완전히 '낙태죄'가 폐지된 세상을 보고 싶다. 낙인도 죄책감도 슬픔도 없고, 인공임신중지가 그냥 하나의 의료행위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때쯤 되었을 때 가족들과 인공임신중지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우리 가족이 4년동안 단 한번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눠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 주수 제한만 남은 법, 의사의 의료거부권이 명시된 법, 청소년의 인공임신중지를 보장하지 않은 법, “낙태의 죄”가 버젓이 남아있는 법, 상담과 숙려 따위를 의무로 정해놓은 법, 그래서 모두를 죄인으로 만드는 법.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제도, 낙인도, 죄의식도 아닌 완전한 인공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법이다. - 구마님 (구마님이 보내주신 글을 변지은님이 대독하였습니다.)
태아도 생명이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을 생각해보면 태아도 생명이다가 아니라 태아만 생명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태아도 생명이라면 그 태아들이 태어나서 자라서 어디든 떠들고 다닐 수 있어야 하고 그 태아들이 자라서 여성이 되면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 변지은님
언젠가 제 경험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발언문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왠지 허망한 기분이 듭니다. 재작년 겨울 그 추위를 뚫고 집회에 나가고 1인 시위를 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 갑니다. 한참 동안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재작년에 외쳤던 구호들을 똑같이 쓰다가 쓴웃음을 짓다가 그 구호들을 다시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참담해집니다. 2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구호. 아니,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작년 4월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왔을 때, ‘일부’ 남성들은 성관계 중 일부러 콘돔을 빼는 스탤싱을 하겠다며 여성들을 조롱했습니다. 정수리가 뜨거워졌습니다.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괜찮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 걸음 나아갔고, 너희는 그곳에 서 있으니 다시는 우리의 발목을 잡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낙태로 여성을 처벌하는 세상은 이제 사라지고, 너희 같은 악랄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낙태죄가 더 이상 죄가 아닌 세상에서 여성들의 건강에 대해, 공공보건의료의 역할에 대해, 더욱 더 다양한 재생산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좋아질 세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나를 밀쳐 넘어뜨려 그 앞에 고꾸라져 있는 느낌입니다.
이 나라는 여성들에게 너무나 폭력적입니다. 국가는 지금껏 나라는 존재를 업신여기고, 낙인찍고, 족쇄를 채워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만큼 국가에 생생하게 농락당한 기분은 처음입니다. 네 몸은 언제까지나 국가의 통제 아래 있을 것이고 네 몸에 대한 결정을 하기 위해선 국가의 허락을 받거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야 겨우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 나를 비웃는 것 같습니다. 시대를 퇴행시킨 문재인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여성은 그렇게 대해도 되는 존재라고 선언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인간이고 싶습니다. 저는 제 몸이 온전히 제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런 강요된 부끄럼 없이 아무런 세뇌된 망설임 없이 말하고 싶습니다. 제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허락도 처벌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언젠가 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제가 놓아야 하고, 잃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말을 꺼내어 놓기에 저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제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언젠가는 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책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 참 힘들었겠다고 위로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 뒤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권리를 위해. 문재인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기만입니다. ‘낙태죄’를 형법에서 완전히 삭제하고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십시오! - 익명으로 대독을 요청해주셨습니다.
저는 두 번의 낙태 경험이 있습니다. 늘 그렇듯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부정출혈이 있었기에, 대수롭잖게 예정일을 넘겼고, 위가 너무 안 좋으니 내시경이라도 받아볼까 하고 엄마를 데리고 간 내과에서 전혀 뜻밖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저를 보며 "낳을거지? 낙태하면 처벌받아. 엄마한테는 얘기할거지?" 하는 남자 의사에게 별다른 대꾸도 못하고 그대로 진료실을 뛰쳐나와, 소화제 먹으면 된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엄마 손을 잡아끌고 병원을 나섰습니다.
애정은 식었지만 저와 콘돔도 쓰지 않고 주기적으로 섹스는 하고 싶어하던 당시의 남자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린 그 날 저녁, 돈을 마련해달라고 부탁은 했지만 다분히 회피하고 싶어하는 태도에 ‘얘가 잠수를 타면 나는 어디서 돈을 구해 어디서 수술을 받아야하나’ 막막하던 그 날 저녁에, 혼자 가는 지옥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불안하고 두렵고 죽고 싶던 그날 저녁에 희한하게도 찐감자와 인삼차가 미치게 먹고 싶었습니다. 내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 이 어처구니없는 식욕이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마침 연락 온 친한 언니에게 수제비를 얻어먹으면서 언니한테 털어놓고 싶다 수백 번을 생각했지만 저는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12주라고 했습니다. 소화가 좀 안되고 찐감자랑 인삼차가 먹고 싶었던 것 외에 특별한 증상이랄 게 없는 상태였는데 그랬어요. 14주는 정말 말도 되지 않습니다.
똑같은 남자친구에게 다시 또 콘돔 없는 성관계를 요구받았고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임신을 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는 좀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고 전신마취가 완전히 되기 전에 시술이 끝났습니다. 더럽고 좁고 불친절했던 그 병원에서 '한 번 더 낙태하면 임신 못해요'라는 말을 듣고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도 그 남자는 발기가 되지 않는다며 피임의 책임을 저에게 떠넘겼고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저는 HPV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자궁경부암 직전 단계까지 진행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자궁경부원추절제술을 받고 나서 뒤늦게 연락이 닿은 그 남자는, 네가 나 때문에 다시 임신을 할 수 없게 될까봐 겁이 났다고 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건 내 몸인데 아무도 내 몸을 염려해주지 않았고 내 임신을 걱정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된 저는 질책하고 경멸하고 비난하더군요.
낙태가 죄가 되지 않아도,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였다는 두려움, 후회, 자책을 모두 벗겨내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싸워야할지 알 수 없는데 낙태죄를 존치하겠다니요. 누구도 제가 보낸 그 끔찍한 고립의 순간을 다시 겪게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자면 낙태죄 폐지는 겨우 떼는 첫 걸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누구도 그런 위험과 고립 속에 혼자 남겨두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여성들이 어떤 순간을 지나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싸움에 임하고 있는지 당신들은 죽어도 알 수 없습니다.
동지들의 손을 단단히 잡고 외칩니다. 지금 당장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라! - 그냥 님 (그냥 님이 보내주신 글을 대독하였습니다.)
작년에 낙태죄 폐지를 위해 1인 시위를 했어요. 그 날이 낙태죄가 존치하는 마지막 날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헌법재판소 앞에 섰었습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그래도 조금은 살만했었는데요, 이 정부가 이런 입법안을 낼 거라는 것을 아주 예상 못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생리가 불규칙합니다. 정부의 입법예고안대로라면 14주까지는 괜찮고, 15주 1일째에 임신중지를 하면 범죄인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5주는 괜찮을까요? 20주는요? 아예 99.999주는 어떨까요. 착상 시기는 과학적으로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는데요,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한들 임신을 지속할지 말지는 여성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14주 이상 임신중단이 여성 몸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건 그냥 허울 좋은 말입니다. 여성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여성 자신이 결정할 수 있게 하라는 겁니다. 나의 자궁을 임신에 쓰라고 강요하는 게 말이 안 돼요.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다가 법이 실효될 시기가 다가오니까 이렇게 형편없는 법안을 가져온다는 것도 어이가 없습니다.
여성인 내가 임신중지를 스스로 결정했을 때 안전하게 수술 받고 세금 냈으니까 의료보험도 받아야죠. 처벌도 허락도 우리는 필요가 없습니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입니다. - 로리님
저는 실제 제 몸에서 출산과 낙태를 경험한 여성입니다. 제가 첫 임신을 했을 때, 임신이 된 줄 몰랐어요. 원래 불규칙한 월경주기였지만, 하도 (월경을) 안 하길래, 병원에 갔더니 이미 5개월이 지났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놀라기도 했는데.. 어떤 일이 있었냐면, 임신을 해서 제 몸의 변화가... 남들이 하는 입덧이나 그런 게 심하지 않아서.. 또, (임신) 말기쯤에 제 담당 의사선생님이 무슨 세미나에 참석하셔서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받게 됐는데, 그 의사가 초음파를 보더니 “큰일났다!”고 하는 거에요. “(놀라서)왜요?” 하니까 “태아가 너무 커서, 주수가 잘못 계산된 것 같다”고 하시는 거에요. 너무 놀랐어요. 나는 일반인으로서 의사에게 반박할 수도 없었고 굉장히 불안한 마음으로 있다가, 좀 (출산)시기를 앞당겨서 제왕절개 수술로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근데 막상 낳고 보니까 그 아이가 별로 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정말,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 말씀... 물론 전문가이긴 하지만, 여성의 몸은 다 다른데, 그런 것으로(초음파 통한 추정 주수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임신중지를) 규제하고, 통제하고 처벌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두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세 번째 임신을 되었을 때는, 제가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 있어서 자연유산이 되었습니다. 수술을 해서 임신이 중단되었는데요. 사람들은 ‘여성들이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임신중지를 한다’고 하고, 그런 낙인이 사회에 만연하다 보니까.. 저는 제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도, 누가 저에게 직접적으로 무슨 말을 한 적도 없지만, 사회가 보내왔던 그 분위기와 낙인이라던지 비난이 저 스스로를 되게 힘들게 하더라구요. 낙태죄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여러 가지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여성들 안에서… 다양한 의미로 다가가기 때문에, 임신중지를 죄로 처벌하는 일은 정말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은박 님
저는 80년대생입니다. 제가 태어날 무렵은 정부에서는 인구 조절을 위해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고, 사람들은 하나만 낳아야 한다면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는 산모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태아의 성별이 여아라는 이유로 임신중절 시술을 받은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대한민국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일 겁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해서 출산율이 바닥을 치고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기를 요구하자 여아들이 살해당할 때는 유명무실했던 낙태죄가 갑자기 되살아나와 수많은 여성들을 원치 않는 임신의 고통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싸웠고 작년에 드디어 임신중절을 형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 불합치라는 값진 판결을 얻어냈습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성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하지 않는 아이를 출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을 범죄자로 처벌하고 이 과정에서 태아의 아버지가 되는 남성의 책임은 쏙 빠져있는 낙태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원치 않는 임신의 가능성 때문에 불안하고 무서운 그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하며, 불법 약물이나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수술이라도 알아봐야 하는 그 심정을 아래 세대 여성들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출산율이 걱정된다면 정부는 결혼제도 밖에서 아이를 출산한 여성과 이미 태어난 아이들의 권리와 생명부터 잘 보호하기 바랍니다. 미혼모도 육아휴직과 모성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미성년자들을 각종 성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기 바랍니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입니다. 이 당연한 문장을 언제까지 말해야 할지 답답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입니다. - 연수님 (보내주신 글을 대독하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이어진 필리버스터에는
많은 뮤지션(!) 분들이 음악으로 함께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홍랑님(기타 연주해주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싱어송라이터 여름님, 전기뱀장어 황인경님, 노래하는 신승은님 모두 너무 감사드립니다.
후기에서는 홍랑님이 불러주신 두 곡 중 첫 곡인,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노래의 가사를 공유해볼게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아
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
모두가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
흐르는 시간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네
라라리 라라리 라라리 라리라라 라리라라
라리라라 라라라라라리라라 라라라라
언젠가 정말 할머니가 된다면
역시 할머니가 됐을 네 손을 잡고서
우리가 좋아한 그 가게에 앉아
오늘 처음 이 별에 온 외계인들처럼
웃을 거야 하하하하
- 곡/가사 _ 장혜영
(우리 모두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그 땐 낙태죄라는 게 있었지' 하며 외계인처럼 하하하 같이 웃어요..)
정부는 최선의 법안을 마련했다 자화자찬합니다. 최선이요, 개선이요. 대한민국정부에 말하고 싶습니다. 기만하지 마십시오, 건방 떨지 마십시오. 아무리 많은 예외를 만들어도 국가가 나서서 어떤 임신중지는 처벌받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고 나누는 본질은 그대롭니다.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처벌받는 상황, 몸에 대한 기본권이 박탈되도록 법이 조장하고 국가가 방조하는 상황. 이것은 대규모의 인권 탄압입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기본권 박탈이자 국가 폭력입니다.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퇴행입니다. 임신중지는 여성의 기본권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태죄 폐지입니다. - 스머프 님
출생률 꼴지 너무나 당연합니다. 15-24주 이내에는 '사회경제적 이유' 등으로 임신중지할 수 있게 하자고 합니다. 또 국가는 우생학적 사유로 이 세상에 나와도 되는 생명과 아닌 생명을 나누고, 차별하고 야만성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게 정부로서 할 말입니까? 한심합니다. 여성의 몸과 인생은 소중합니다. 여성을 국가 인구수 조절 도구로만 보고.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고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허용사유니 임신주수니 하는 헛소리는 그만하세요.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고 응징하겠다는 것은, 말로는 성인지 관점을 많이 얘기하지만, 그런게 바로 공염불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전에 성매매 여성들을 윤락녀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어요. 국가가 여성이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대상화 하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식민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양수검사 하고 태어날 권리도 없이 낙태당했던 시절이 있죠. 그때만 해도 인구가 감소되던 때가 아니라서, 아들을 낳기 위해서 골라서 딸을 낙태하는 것이 벌어지던. 이런 어려운 시절을 살 수밖에 없었나.
바로 호주제 때문입니다. 남자만 상속받는 제도 때문에. 아들이 없으면 호주가 없기 때문에 폐가라고 빨간 낙인이 찍혀요. 끔찍합니다. 호주제 폐지운동 결과 만들어진 것이 가족관계등록부입니다. 우리만 호주제를 오랫동안 유지했어요. 호주제 고비를 넘겼나 했더니 이제 우리 앞에 ‘낙태죄’가 닥쳤어요. 정부는 아직도 인구증가 위해서는 여자가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고 그렇다면 낙태를 죄로 못박아 놓아야 한다는 것.
최근에 작고하신 이이효재 선생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회는 낙태하는 여성에게 비정한 모성이라 말하며 탓을 한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서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사회가 더 비정한 거 아니냐? 여성운동은 이런 문제에 집중해서 여성이 마음놓고 아이를 낳고, 태어난 아이들이 즐겁고 평등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여성은 여전히 최후의 식민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해방되기 위해 어떤 일이든 무엇이든 다 할 것입니다.
독일의 상황을 말씀드려요. 상담기관에서 정보제공과 검사비가 무료. 시술가능한 의사를 연계해주고, 상담증명서를 병원에 가져가면 시술받을 수 있어요. 비용은 한화 33만~80만원으로 개인부담이 원칙이지만, 미성년자, 소득 160만원 이하인 경우 전액지원 받아요.
원치않는 임신의 경우가 한국보다 훨씬 적어요. 파트너관계, 데이트상황에서 피임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분위기예요. 피임실패로 원치 않는 임신이 되어도 여성에게만 부담이 지워지지 않아요. 남성 역시 긴장하고 걱정합니다. 책임이 남성에게도 강하게 부여되고, 유지 결정은 온전히 여성에게 있어요.
여성이 아기 낳을 것을 결정하면 남성은 단 두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아이 아버지로서 양육하거나,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경제적 부양의무를 지거나. 여성은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지정할 수 있는데, 남성이 이를 거부하면 친자확인 검사를 강제할 수 있어요. 제도적으로 남성의 책임회피가 어렵도록 되어있는 거죠. 발뺌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남성이 더 큰 타격을 입어요. 천하의 파렴치한이 되거나 자기아이를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사회적 지탄을 받습니다.
상담기관은 예약없이 방문 가능. 상담, 검사비 무료. 서비스제공 차원. 시술 가능한 의사 연계, 관련정보 제공. 상담받았다는 증명서 가져가면 의사가 시술합니다. 시술비용은 250~600유로 한화 33만~80만원 사이. 개인부담이 원칙이지만 미성년자, 소득 160만 이하 여성은 전액지원.원치않는 임신 경우가 훨씬 적음. 피임실천 높아서. 파트너관계, 데이트상황에서 피임이 당연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분위기.
피임실패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죠. 원치않는 임신 있어도 여성에게만 부담이 지워지지 않고 남성 역시 긴장 걱정함. 책임이 남성에게도 강하게 부여되므로 유지 결정은 온전히 여성에게 있다.
여성이 아기 낳을 것을 결정하면 남성은 단 두가지 선택이 가능. 함께 아이아버지로서 양육하거나,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경제적 부양 의무. 여성은 아이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지정합니다. 아버지가 이를 거부하면 친자확인 검사 강제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남성의 챆임회피가 어렵도록 장치가 되어있음. 발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 남성이 더 큰 타격입음. 천하의 파렴치한이 되거나 자기아이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사회적 지탄을 남성이 받음.
- 용가리님(독일에서 줌으로 발언해주셨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토론수업이 기억납니다. 낙태에 대한 찬성 반대 토론이었는데요. 토론 전에는 교육영상이랍시고 다들 본 적 있을, 이제는 조작임이 밝혀진 ‘소리없는 비명’을 시청했어요. 예상가능하겠지만 저는 낙태 찬성편에 앉아서 목에 핏대를 세웠어요. 태어날 아이의 목숨이 소중한 만큼, 여성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5학년의 감수성으로도 충분이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그 기억이 선명한 이유는, 저는 끝내 복받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어 엉엉 울면서, ‘낙태를 한 여성은 평생 마음의 짐을 안고 죄책감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동일시 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로 ‘순결’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순결이 나오면 책을 덮고, 이렇게. 낙태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시작했던 거 같아요. 중학교 때 선생님이 낙태비디오 보여주면서 여자애들은 싸게 굴면 안된다, 이렇게 낙태하게 된다, 생명은 소중하다. 그런데 손바닥에 애기 잘린 발을 올린 이미지가 기억이 나는데. 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며 역한 느낌이 있어요. 마치 순결이라는 단어 떠올랐을 때, 성인이 되고 연애하고, 성관계 요구할 때 저는 딱 한가지 요구조건 걸어써요. 니가 그렇게 좋고 중요하다면, 넌 콘돔, 나는 피임약 먹어야 한다. 아니면 섹스는 없다. 그땐 현명한 조건이라고. 저는 피임약 먹고, / 근데 피임약 부작용이었던거 같아요. 저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병원에 갔어요. 근데 생리를 안한다. 의사 표정 굳더니, 임신가능성 있으니 초음파검사 해야한다. 근데 저 피임약도 먹었고 콘돔도 썼다. 그랬더니 섹스했으면 0% 없다. 너무 떨리는 거에요. 다행히 검사하고 괜찮다. 그런데 이미 검사비 다 쓰고, 멘탈 깨족. 근데 카톡답장. 오진잼.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이런거구나. 엄청 싸웠어요.
성인이 되어 연애하고, 상대가 성관계를 요구할 때 저는 요구조건을 걸었어요. 콘돔을 껴야하고 나는 피임약을 먹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섹스는 없다. (...)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병원에 갔어요. 피임약을 먹었고 콘돔도 썼다, 그런데 생리를 안 한다, 의사의 표정이 굳더니 임신가능성 있으니 검사해야 한다, 섹스를 했으면 임신가능성 0%는 없다고 했어요. 다행히 임신은 아니었지만, 저는 이미 멘탈이 깨졌죠. 소식을 전했더니 파트너에게서 온 답장이 ‘오진잼’.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구요. 엄청 싸웠어요.
안녕하세요, 서울에 사는 시민 중 한명입니다. 여아낙태가 극심했던 80년 말 ~ 90년초, 저는 드세다는 미신 때문에 여아낙태가 심각했던 백말띠로 태어났습니다. 제 초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이 “이 반은 특이하게 여자들이 더 많이 있네.”라고 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여자애들이 적어서 남자애들이 결혼을 못한다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이 배경의 여아낙태 역사는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이후 엄마가 아들을 낳기 위해 줄줄이 여자를 낳았다, 할아버지가 나는 미워하는데 오빠나 남동생은 예뻐한다는 말을 여자인 친구들로부터 종종 들었습니다. 제 친구는 언니가 셋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기 위해 딸들을 낳아놓고 입양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때 낙태수술 비디오를 수업시간에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밥먹기 전에 이런 거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반 학생들은 모두 구역질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또래친구들처럼 역겨워해야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할 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한번은 세 달째 생리가 나오지 않아 불안했습니다. 성관계는 없었지만 임신을 하면 생리가 멈춘다고만 배웠던 저는, 어린 나이에 수영수업을 하다가 임신이 된 것인지, 남녀공용 화장실을 이용했기 때문에 임신을 한 건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엄마에게 이것을 얘기했지만 데재로 설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배를 가격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생리를 하게 되었고 그때야 불안을 내려놨습니다. 10대 초중반 제가 임신으로 착각하고 혼자 자신의 배를 때려야 했던 것이 지금도 가슴아픕니다.
팔자 드센 90년생 백말띠인 저는 낙태죄 폐지를 위해 드세게 싸울 것입니다. - 발양님
며칠 전 정부가 낙태죄 존치 입법안을 발표했습니다. 임신중단을 한 여성에게 처벌을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폭발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꿈쩍 않는 사회에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한국이 성숙한 사회라고들 합니다. 자유와 정의가 넘친다고 합니다. 정말 맞습니까?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여 스스로 내린 임신중단 결정에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다. 상담과 숙고라는 미명 하에 스스로 내린 결정을 회유 받아야 합니다. 이번 입법안으로 대한민국이 여성에게 반쪽짜리 시민권을 들이밀고 있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낙태죄 존치를 옹호하는 시민 동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임신하기 전에 그 여성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여성이 사회를 살면서 겪어야 하는 구조적인 차별을 생각해 본 적은 있나요? 단순히 여성을 처벌한다해서 태아가 보호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으십시오. - 다른 님
저는 지금 임신중절을 경험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만들고 있어요. 저는 청소년일 때 원하지 않는 임신을 경험한 적이 있고 그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으려고 해요. 저는 당시에 18살이었고 집을 나온 상황이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고 당시 만나던 두 살 많은 애인과의 관계에서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 굉장히 고민을 했는데요, 낳아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왜냐면 자라면서 제가 받았던 성교육이 여학생들만 음악실에 모아두고 낙태영상을 보여준다는지 지나다니다 종교인들이 태아는 생명이다 피켓을 들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알고 컷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내 상황을 생각해보면 모아둔 돈도 없고 애인과의 관계에 대한 확신도 없었어요. 그래서 차츰 임신을 중단해야겠다는 쪽으로 기울었어요. 병원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제가 청소년이기 때문에 임신중단 수술을 하려면 부모님을 데려오라는 게 너무 당연히게 따라오더라고요. 저는 결국 임신중단할 병원을 찾을 수 없었어요. 정말 절망적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에도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절박했는데,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어요.
저보다 두 살 많은 여성인 친구에게 겨우 털어놓게 되어서 그 친구의 신분증으로 겨우 수술을 받게 됐는데 그 병원에서도 파트너의 동의를 요구했고, 저는 다행히 같이 가서 괜찮았지만 다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아찔했어요.
5~6년 전 80만원이라는 비용, 제 한 달 아르바이트비였는데 그 비용도 혼자 다 감당했어야 했어요. 이중삼중의 덫 때문에 더 막막했던 것 같아요.
낙태죄 폐지 이슈에서 청소년, 장애인처럼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더 세심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애기하고 싶었어요. 이번 입법예고에서 가장 화가 난 것은 만16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임신중단에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고, 동의를 못 받으면 스스로의 학대경험을 입증해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내가 학대 받았다는 신고는 현실에서 정말 어려운 거고,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몸에 대한 결정인데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하나의 덫이 더 생기는 거거든요. 그런 제한과 조치들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세 이상의 청소년들에게도 상담을 반드시 받도록 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 제한을 더 둔게 너무 문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입법예고안을 만든 정부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5~6년 전 당시에 수많은 병원을 헤매야 했던 청소년인 나도 사람이고 우리는 그렇게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고. - 라일락님
저는 50대 두 자녀를 둔 기혼여성입니다. 그리고 저는 험난한 제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입니다. 저는 소소하고 그냥 50대 여성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낙태죄 폐지에 대해 생각했을 때 70년대 생들이 다 아는 표어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어요. “둘만 낳아 잘기르자”라는 순한 문구부터 시작해서, “무턱대고 낳고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제가 공교육 안에서 받았던 출산, 생명, 양육에 관한 모든 것은 정자, 난자, 수정. 그것밖에 없었어요. 학교 교탁 옆에 조그만한 티비가 이었어요.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틀어놓고 아무말 없이 그냥 나가버리셨던, 그래서 우리끼리 굉장히 많은 얘기를 했던. 점멸하는 흑백 역상으로 본 것. 저희에게 공포를 심어줬던 그 영상을 아무말 없이 틀어주고 나간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20대 후반에 교회에서 ‘시댁의 권유로’,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어서’ 낙태하신 여성 집사님들 대화를 들었었어요. 그 순간에 그 집사님들한테 있었던 위로, 연대가 기억이 납니다. 종교적인 위로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이유로, 동생이 너무 빨리 생겨서,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서 낙태한 여성이 집에 왔을 때 나이 드신 어머님이 끓여놓은 미역국을 챙겨먹고, 이튿날 바로 노동하는 이웃들, 친구들의 이야기. 둘째를 출산했으니, 불임 시술을 권유하는 동네 산부인과의 이야기.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당시에 출산하고 양육하는 모든 곳에 여자들만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자들끼리 하는 위로는, 그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제도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다르게는 위로할 수 없었던 거잖아요.
근데 사실은.. 너무 두서가 없지만, 출산에 생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은, 경이로움이나 감동보다 두려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중압감, 그 무거움. 그래서 지금 생명을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험한 말이 나와요. 생명에 대해서, 그 분들이 그런 공포를 느꼈을까요?
저는 반려동물을 키우자는 가족들의 말에 정말 집안에서 숨쉬는 건 인간 넷으로 충분하다. 하나의 생명을 더 내가 돌보는 것은 나에게 너무 지옥이라고 얘기해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생명을 말하는 것 같아요. 생명을 정말 생각해본 만나본 맡아본 사람들은, 그렇게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나이가 먹어서 이런 얘길 할 때, 또 하나는, 이게 반복되는 것 같아요. 저는 출산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있는 나이잖아요? 반복되는 것 같아요. 나는 벗어났지만, 아무 죄도 아니었던 것을 전 국민이 알고 있었고,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이 국가가 내려준 결정으로 확인 되었는데 다른 법들, 다른 공권력 같은 것으로 다시.
저는 허락도 처벌도 거부한다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우리가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여기서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는데, 그 분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성들이 10대부터 50대, 70대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올해 안에 뒷걸음이 아니라 정말 끝을 볼 수 있는 결과를 맺길 바랍니다. - 나비 님
저는 임신중단을 경험했습니다. 사문화된 법이라고들 하지만 당사자 여성에게는 사문화된 법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운이 좋아 4주차에 임신 사실을 알았고, 어차피 바로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에서는 2주 뒤에 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너무 작아서 ‘깔끔하게’ 수술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애를 좀 더 키워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생명생명하면서 지울 때는 좀 더 키워서 오라는 건 무슨 경우일까요.
처음 임신을 확인한 산부인과는 중절수술을 하지 않는 곳으로 아늑한 조명과 핑크색 벽지와 함께 친절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었고, 묻지 않아도 지금 시기에 먹어야 하는 영양제와 주의사항을 일러주었습니다.
임신중단을 하려고 어렵게 찾은 병원에서는 일단 의사를 만나보기 어려웠습니다. 모든 상담은 상담실장과 진행되었고, 처치에 대한 이야기는커녕, 현금결제 요구와 수술날짜 얘기가 전부였습니다. 병가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주말에 수술 받겠단 요구는 저만의 요구가 아니었고, 꽤 비굴하게 부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사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고 어떻게 처치하면 될지, 그런 설명은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주말에 출근하는 의사를 배정받았습니다. 의사와는 열 마디 남짓 나눠본 것 같네요. 여하간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핑크색 벽지와 아늑한 조명을 바란 것은 아니었으나, 창문 하나 없는 병실에서 눈을 뜨고 나니 내 처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내가 죄인이길 깨닫고 수치심을 느끼길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작년 4월 헌법불합치 결정에 뛸 듯 기뻐하며 14주라는 제한을 걸고 이미 사문화된 법을 되살리려는, 여성을 싸구려로 만들려는 수작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국가에게 묻고 싶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돈독한 사이였나요. 으슥한 골목길을 걸어갈 땐 있는 지도 모르겠는 공권력이, 여성에겐 무법 천지나 다른 없는 이 나라에서, 연말정산 때나 잠깐 만나는 이 나라에서 언제부터 저와 그렇게 돈독했다고 애를 낳으라 마라입니까. 인공임신중지는 대부분 10주 전후에 이뤄진다고 합니다. 임신을 확인하고 2주에서 4주에는 임신중지 결정이 이뤄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이 나뉘어지고, 몸과 마음 상태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영부영 14주 24주를 보내겠습니까.
국가가 정해준 14주라는 실금선에서 오가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전히 임신 중지와 유지 사이에서 전전긍긍해야 합니까. 임신한 여성만이 자신과 태아의 사정을 가장 심도 있게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당사자 개인의 결정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국가폭력이 아니란 말입니까.
저는 정의당 당원이기도 합니다. 정의당은 권인숙 의원의 발의안에 힘을 보탰습니다. 꼭 정의당이 아니더라도, 누가 여성의 결정을 신뢰하는 법안을 내놓는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 수진님
저는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60대 여성입니다.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낙태죄 형법 부활에 반대합니다. 저에게는 아이가 셋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국가가 인구통제를 위해 낙태죄가 있어도 공공연히 낙태를 조장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몸이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서 범죄가 되었다 되지 않았다, 이런 걸 언제까지 반복해야 합니까. 여성의 몸과 관련한 법률을 재개정하면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현실에서, 대체 누가 이것을 주도하고 있습니까.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낙태죄가 무서워서 아이를 낳을까요? 음성적으로, 더 위험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여성의 건강은 더욱 위협받겠죠.
정부는 낙태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단 약물인 미페프리스톤 등의 약물을 모든 여성에게 무료로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낙태가 가능한 조건으로 사회적, 경제적 요건을 들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국가가 정한 상담이라는 조건을 거쳐야 하는 여성의 심정을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국가가 여성을 인격을 가진 존재로 볼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생산관련 그 어떤 한 사람의 여성도 처벌받지 않는 그날까지 우리는 낙태죄 폐지를 외칠 것입니다. - 영순님
법이 실현하고자 하는 정의는 역사성, 사회성,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에 여성의 자율권을 보장하지 않고 이것을 범죄화할 수는 없습니다. 낙태죄는 포괄성과 보편성에서도 뒤떨어집니다. 저는 오랫동안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쳐왔습니다. 낙태죄는 더 이상 법적인, 윤리적인, 종교적인 판단의 문제가 아닙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라, 이것이 우리의 요구입니다. 이 싸움을 여기까지 이끌어오는 데 있어서 숱하게 거리에서 분투해온 후배 동료 여성들에게 존중과 감사, 연대의 마음을 함께 전합니다. - 유은주님
제 사연과 친구의 사연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가 잔상처럼 남아 있는 것들만 글로 옮겨봤습니다.
첫 번째
2007년. 1년째 연애 중인 여자. 친구와 대화 중 중절 수술을 3번이나 했다고 고백하듯 말을 한다. 왜 이런 내용은 ‘고백’의 형태를 띄는지 살짝 궁금해하다 생각을 멈춘다. 친구가 묻는다. 남자친구가 병원에 같이 가고 병원비도 내주고 했냐고. 여자는 3번 모두 병원을 혼자 갔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했다. 알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친구가 다시 그 이유를 물으니 한마디로 말을 자른다. “말하면 당장 결혼하자고 할 것 같아. 나는 이제 내 일을 찾았는데, 결혼하고 애기 낳으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자나.” 라고 했다. 그 마음을 백번 이해하는 친구는 “그렇지, 잘했어.” 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임신과 관련하여 연인과 그 연인이 남자일 때는 망설임 없이 상황을 이야기하고 책임을 묻고, 서로가 원하는 방향, 결정을 죄책감 없이 존중하는, 그런 관계를 상상하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걸까? 라는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두 번째
2003년 여자는 임신 6개월에 낙태를 했다. 3개월 째에 임신 사실을 알았으나 수술비가 없었다. 그 당시 남자친구는 여자를 떠나지 않았지만 수술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지도 않았고 그저 여자만 바라보았다. 둘이 만난 지 2년째가 되던 해다. 남자 나이 27세 사회적으로 어중간한 나이. 대학은 겨우 졸업했지만 취직을 못한 그는 집에서 게임만 주구장창 했다. 둘은 블리자드의 어떤 게임을 통해서 만난 사이였고 만나는 내내 함께 게임을 하면서 사랑을 확인했던 사이다. 여자는 취직을 했다. 남자는 집에서 하루종일 게임을 하며 여자만 기다렸다. 그 흔한 노가다 알바 하루도 하지 않던 남자. 여자가 퇴근해오면 혼자 게임 하기 너무 심심했다며 같이 게임을 하자고 조르는 남자.
수술비를 모아 6개월 째에 드디어 수술을 했다. 수술 이후에 통장이나 처방과 관련해서 의사도 간호사도 말이 없었다. 그날 밤 여자는 가슴이 미칠 듯 아파 밤새 뒹굴었다.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 야밤에 문도 안 열었을 약국으로 뛰어갔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남자를 보며 ‘멍청하게.. 그저 옆에 있어나 줄 것이지’ 라고 생각했다. 남의 고통을 올곧이 바라보지도 못하는 남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침까지 기다렸다 약국을 갔고 약사의 친절한 설명에 살짝 마음이 풀렸다. 그런데 산부인과에서 모를까? 6개월 째의 중절 수술은 실제 아이를 낳은 것과 다름없어 젖이 나오고 젖몸살을 앓기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한다는 걸. 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을까라는 궁금증을 여자는 가져본다. 물론 알려줬는데 여자가 정신이 없어 잊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한다. 1년 뒤 여자와 남자는 결혼 했다. 남자는 여전히 취직을 못 했고, 집에서 여자만 기다렸다. 말 그대로 기다리기만 했다. 가사 따위 기다리는 애절함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더 살다가 이혼했다.
세 번째
1994년. 산부인과를 나오며 생각한다. “마흔이 넘어서도 임신이 되다니. 그 새끼 자식을 또 낳을 수는 없지”. 이혼한 지 5년이 넘은 여자는 중학생인 첫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 얼마 전에 남편이 다녀갔고 임신이 되었다. 싸지르고 싶을 때 전 부인 찾아가면 된다고 누가 가르치기라도 하는지 궁금하다. 꼴도 보기 싫은 새끼지만 한 번 다녀가면 10만 원 정도를 주고 가니 죽어라 거절하기도 힘들다. 그 돈이면 한 달 월세다.
여자는 루프를 넣어야겠다고 생각 한다.
네 번째
1997년 겨울.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고2가 되었을 여자는 제법 큰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임신한 사실을 안 친구들이 병원을 방문했다. 여자의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여자가 어떻게 이렇게 큰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는지 친구들은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간호사들의 눈초리, 병실 내 사람들의 눈초리가 왠지 축하를 해야할 분위기는 아니라는 걸 친구들은 알아차린다. 친구들을 그저 이런 상황에 여자가 친구들을 불렀고, 친구들은 그 부름에 응했을 뿐이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 과정인지 모른다.
며칠 뒤 여자는 아지트인 친구1 집에 왔다. 예전처럼 함께 볶음밥을 해 먹고 수다를 떨고 TV나 비디오를 빌려보며 시간을 보낸다. 친구1, 2는 학교를 다녀온다. 여자는 학교를 가지 않는다. 어느 밤 술을 먹고 여자가 말한다. 좋은 곳으로 입양 갔다고. 친구1은 좋은 데 갔을 거라고 잊어도 된다고 대답한다. 친구2는 그 이야기로 병원에 갔었던 날이 생각난다. 그 당시 간호사들의 눈초리, 다른 사람들의 눈초리가 떠오른다. 도대체 그런 눈빛은 무얼까. 여자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친구인 우리는 무슨 잘못을 한 걸까. 기분이 나빠진다. 계속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술을 마신다. 역시 술은 맛이 없다라고 생각하지만 왠지 지금 분위기에는 술이 가장 어울린다 생각한다. 여자가 말한다. “오빠가 연락이 안 돼. 그렇게 사랑한다더니”. 친구1이 말한다. “양아치 새끼..”. 여자가 두둔한다. “아니야 그래도 나 사랑한다고 했어” 친구2는 다시 생각한다. 사랑 도대체 뭘까..
- 하랑님(보내주신 글을 파인님이 대독하셨습니다)
지난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과에 너무너무 행복했는데...
한 발짝 더 앞서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고, 낙태죄 비범죄화 꼭 이뤄내면 좋겠습니다.
- 파인님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소식을 들었습니다. 헌법재판소앞에 모인 여성시민 및 여성단체 활동가들의 와아아꺄아악하는 함성소리를 들었습니다.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여성들은 헌번불합치 판결이 났을 경우와, 반대 경우를 대비해서 환영집회와 규탄집회를 모두 준비했었다고 해요.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감동스럽습니다.
그날 저도 헌법재판소로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환호하고 싶었습니다. 길거리로 뛰쳐나가 미친사람처럼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어요! 하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바랬던 결과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고 싶었습니다. 그 감동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38여성대회, 9월 28일 낙태죄폐지공동행동의 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교육과 워크샵, 캠페인 장소 곳곳에서 시위하고 퍼포먼스하고 거리행진하고, 낙태죄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보낸 시간이 응답받는 아주 기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4월 11일에 저는 장례식장에 있어야했습니다. 빈소를 지켜야했지만 저는 고인이 저의 여성운동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전하게 의료보험 적용을 받으면서 임신중지 시술을 받고, 시술외에 미프진이라는 알약을 복용할 수도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50여년간의 운동으로 호주제를 폐지시킨 선배페미니스트들에게 빚을 졌기에 낙태죄 폐지는 나와 동료페미니스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호주제 폐지에 비하면 시간이 단축된 것이 여성운동의 결과라고 기뻐했습니다.
시위용으로 만든게 참 많았습니다. 낙태죄를 폐지시키겠다는 결의에다 예술적 감수성까지를 담아서 만든 손피켓과 걸개드림, 스카프과 우산이 있었습니다. 골판지에 매직으로 구호를 써도 될 것을 재미있게 집회하기 위해 회원들과 더 멋지게, 더 창의적으로 시위용품을 만들었습니다. 시위에서 구호를 외치고 거리행진을 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회원들과 함께 시위용품을 만드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으니 그 물건들이 더는 쓸모가 없겠어서 버릴까 기념으로 보관할까 망설였습니다. 호주제 폐지, 낙태죄 폐지에 이은 또 다른 운동, 차별금지법 제정! 이라는 제 페미니즘의 목적이 또 남아있었기에 사무실을 이사하면서 아! 그만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필리버스터에 참여하기로 하고 그 손피켓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어디 잘 보관해두었을것만 같아서..
아, 속은 느낌ㅠㅠ. 여성의 ‘성‧ 재생산권’이라는 이 멋들어진 개념을 드디어 남성가부장사회가 알아들을 만큼 귀가 트였구나 했다가 뒤통수 맞은 기분이랄까요?
이놈의 남성가부장사회가 여성 억압을 포기하지를 않네요. 낙태죄를 존치시켜서, 낙태한 여성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을 틀어쥐고서, 국가가 보호하고자하는 게 무엇일까요? 출산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 기분 드럽드럽.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1년 반의 시간동안 무얼했나 했더니, 낙태죄를 존치시켜 여성의 임신중지를 처벌하겠다고 하는 이 나라는 민주주의 대한민국입니까? 여성 몸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남성가부장국가입니까?
끝난 줄 았고 있었는데 다시 컴백입니다. 딸들이 살 세상을 위해 한 번 더 파이터가 되어야겠네요!
낙태죄 전면 폐지, 안전한 임신중지와 성과 재생산권리 보장! - 이든 님
안녕하세요. 민우회 회원이자 학생인 로예입니다.
사실 오늘 다른 분들을 보려고 참석만 하고자 했는데 참석하는 방법이 참여인 것 같아서 발언에 동참하게 되었어요… 낙태죄와 임신중지에 관해서는 할많하않, 그러니까 저에 관해서나 저의 가까운 친구들에 관해서나 그 부작용에 관한 일들이 쌓여 있지만 저는 오늘 프라이버시를 노출하고 싶지는 않아서 최근에 읽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해요.
마거릿 애트우드의 <그레이스>라는 소설인데요,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에요.
1800년대 캐나다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요, 열여섯 살의 나이에 캐나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여성 범죄 자가 된 그레이스 마크스에 관한 이야기에요.
그레이스는 하녀였는데요, 가난과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쳐서 돌아갈 곳이 없는 셋방살이 식의 하녀 일을 전전하게 되어요. 그녀는 애정같은 것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다가, 첫번째 주인집에서 가장 친한 동료 하녀 그러니까 베스트프렌드를 만나요. 그레이스와 메리 둘은 미래의 남편 같은 것을 점치고, 동시에 “남자들”이란 것에 대해 서로를 주의시키면서 노는데요. 그레이스는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메리에게 주로 배우는 쪽이었고요.
가족애를 넘어서는 깊은 사랑과 우정으로 둘이 연결되었을 때 즈음, 그레이스의 첫 친구인 메리는 주인집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하녀 업무를 비롯한 일체의 일자리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조용히 불법 시술을 받고 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과다출 혈로 사망해요.
그 이후로 그레이스는 주인집을 옮기게 되고, 1년 여만에 주인나리와 마님을 살해했거나, 그랬다는 누명을 쓴 소녀범 죄자가 됩니다. 그 진실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지만, 소설에서 취하고 있는 설정은 그레이스가 이중인격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입니 다.
일과 사회생활에 능하고 들풀처럼 어느 곳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고분고분하게 적응하며 지냈던 그레이스가 어떤 순간에는 메리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메리의 인격은 그레이스를 철저히 냉소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메리의 인격은 사실 주변의 어떤 주인나리들이 하녀들과 자기 위해 고용한다는 것을 알았고, 메리의 인격은 자신에게 접근하는 많은 남자와 언론과 정신과 의사들이 그녀를 성적인 매력의 소녀 이상 이하로도 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메리의 인격은 어떤 여자들이 철저히 여자들의 편이 아닌 걸 알았어요.
그레이스는 살인을 했을까요?
그녀는 정말 범죄자일까요?
그런데 그러한 판단은 더이상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이러한 맥락들 속에서요. 판단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1800년대 캐나다의 실정에서도요. 여자들은 이 사실을 알았고 이런 소설을 쓰게 만든 것이겠죠.
2020년의 한국에서는 판단이 중요한가요? 아마도 그렇다고 하네요. 여자들에게 14 주를 주겠다는 판단입니다. 그 14 주는 어떤 의미의 14 주일지…. 저는 말할 수 없을 뿐더러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고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에요. 그런 식의 판단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가능하지 않다고, 철저히 이성적인 판단을 지닌 메리의 인격이 말씀드립니다.
낙태죄는 필요없습니다. - 로예 님
우리는 추운 겨울,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에 나가 간절한 마음으로 불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염원이 담긴 촛불들이 이루어 낸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낙태죄를 유지할 뿐 아니라, 형사 처벌하려는 퇴행적 입법 예고를 한다는 것에 놀라움과 실망, 그리고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신 중단을 결정하는 세상의 어떤 여성도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한 결정을 내리지 앉을 것입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려는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합니다.
임신 14주 이후, 조건부 24주 이후의 임신 중단을 결심하고 행한 여성들을 낙태죄로 처벌함으로써, 형사 처벌을 빌미로 여성들을 겁박한다고 해서, 세상의 낙태는 줄어들까요? 14주, 24주가 지나 미프진의 처방을 받지 못한다면, 합법적이고 안전한 낙태 수술을 받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건강을 위협받으면서도 비합법적인 시술을 음지에서 받을 수 밖 에 없을 것입니다.
임신 중단을 결심한 여성들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기 이전에, 여성들이 왜 임신을 중단하려 하는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 보아야 할 것입니다.
피임에 대한 교육은 청소년기에서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콘돔과 같은 피임도구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지, 사후피임약과 미프진에 대한 정보는 피임 교육에서 제공되고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 미혼모를 보호하여 안전한 출산을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지, 결혼이라는 제도적 테두리가 없이도 아이를 낳아 국가의 복지 시스템 안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 그리고 미혼모와 미혼부에 대한 편견과 낙인은 바뀔 수 있을지,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여성들이 교육이나 일을 포기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아 키우려는 용기를 낼 수 있는 환경인지
임신 중단은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우리 모두가 할 때,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처벌만으로 임신 중단에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될 수 없습니다.
낙태죄를 되살려 여성들을 처벌하려는 퇴행적인 법의 제정을 당장 멈추십시오.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만 있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저의 작은 목소리를 보렵니다. 대독해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 유효숙 님(최양희 님께서 대독해주셨습니다.)
몇 년 전 <있잖아 나 낙태했어> 인터뷰에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인터뷰를 하러 오셨던 활동가 분이 저에게 “그때의 선택이 선생님의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었어요. 제가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던 그 말은, 마음 깊숙이 새겨졌던 상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경험을 말하고,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낼 수 있게 되었어요. 작년에 4월 11일 딸에게도 이야기를 했는데, 딸이 “엄마 그 때 많이 힘들었겠다”고 말해 많이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태아는 소중하다고, 14주 이내의 낙태만 허용하겠다고 합니다. 생명이 소중하다면서,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는 정부에 화가 납니다. 정부의 입법안은 여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있습니다. 지금 존재하는 여성도 생명으로 존중하십시오. 우리는 허락도 제약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낙태죄를 처벌할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낙태죄 개정안의 즉각 폐기를 촉구합니다. - 오리건 님
밤 11시 15분
오후 5시에서 10시까지, 5시간으로 예정되었던 필리버스터는
6시간을 넘겨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 마무리는, 현장에 함께 남아 계신 분들과
유튜브 생중계 댓글창에 모여 계신100여 분의 참여자들과 함께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 라는 구호를 외치며 마무리하였는데요.
낙태죄를 둘러싼 여성들의 이야기는 이렇게나 차고 넘친다는 것,
"낙태죄를 폐지하라"라는 짧은 구호 안에 응축된 사연과 마음이 이렇게나 가득하다는 것을
가장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국가, 정부 각 부처, 국회가
지금 가장 이 목소리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분개스럽습니다.
많은 참여자분들이 외쳐 이야기했던 것처럼,
여성의 결정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사회, 안전한 임신중지를 낙인 없이 여성의 요청만으로 지원하는 사회,
생명과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사회를 위해
낙태죄를 전면 폐지 할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두 달여 남은 연말, 낙태죄 폐지의 그 날까지 끝까지 계속해서 함께 힘 모아주시길 부탁드리며
긴 후기를 닫습니다.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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