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성평등복지 세미나 두 번째, 〈공공임대주택 이렇게 바꿔라〉!
우리 삶을 이루는 다양한 영역과 긴밀히 연결된 복지제도.
그런 복지제도에 넓고도 촘촘하게 대응하기 위해, 올 상반기 성평등복지팀은 복지 주제별 세미나를 열심히 이어가고 있는데요.
복지팀의 두 번째 세미나 주제는 바로 주거입니다!
올해 상반기 주거 영역에서의 대응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 더 관심 가는 주제였어요. (어떤 활동일지 기대해주세요!)
3월 12일 금요일, 〈공공임대주택 이렇게 바꿔라〉(봉인식 외 11인 지음, 학고재 펴냄)를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사진1. 〈공공임대주택 이렇게 바꿔라〉 책 사진)
〈공공임대주택 이렇게 바꿔라〉는 12명의 주택 분야 전문가들이 1989년 시작된 한국의 현행 공공임대주택 정책(일명 ‘89 체제’)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7가지 혁신방안을 제시한 책이에요. 그 혁신방안이란, ①지역 중심의 공공임대주택 정책 추진 ②민간사업자의 참여를 포괄하는 새로운 임대주택 구상 ③도시재생과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연계 ④공공임대주택 유형 통합과 임대료 개편 ⑤대기자명부를 통한 공공임대주택 배분 ⑥공공재원의 효과적 활용과 민간자금 조달 모색 ⑦노후 공공임대 단지의 재생 정책 추진입니다.
각각의 문제에 대하여, 각자의 경험과 의견을 나누어보았어요.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해본 경험, 살아본 경험이 있어 더 생생한 토론이 되었습니다.
# 집은 땅 위에 세워지는 것이므로
“주택의 지역성이라는 특성을 짚어준 부분이 공감되었어요. 주거는 지역과 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방정부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저는 최근 평생 살던 지역에서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했는데요. 분명 더 좋은 환경의 집으로 이사했는데도 무척 외롭고, 일상이 틀어져버린 것 같아서 많이 힘들어요. 내가 사는 지역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삶을 계획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더라고요. 지역성 때문에 주거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주택이 가진 위치 고정성은 지역성을 형성하며, 주택시장은 지역시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 안에서 수요자 특성에 따라 다양한 하위시장이 나타난다. 주거에 대한 욕구와 비용이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주거정책은 이 같은 특성을 잘 반영해야 하는데 중앙집권적인 체계는 지역성과 하위시장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27p)
# 사회주택, 다양한 주거수요를 위한 대안이 될까?
“민관협력이라고 하면 막연한 거부감이 들기도 했는데요. 공공성이 보장되지 않고, 책임 소재가 모호해진다고 여겨져서 그랬던 것 같아요.”
“사회주택은 사업 주체에 따라 유지보수의 정도가 차이가 난다는 거주자들의 불만이 있어요. 제도보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사회주택은 보증금이 높은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진입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요.”
우선 가치 지향적인 민간 주체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조건에 맞는 민간 조직이라면 공공성 있는 임대주택의 공급 주체로서 참여시켜야 한다. 지원과 혜택 역시 공공 기여도에 알맞게 제공하여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민간 공급조직을 키워나가야 한다. (54p)
“사회주택이 충분한 수의 공공임대주택과 함께 공급될 때 복잡한 주택수요에 대한 보완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비혼공동체나 퀴어공동체처럼, 모여 살고자 하는 특정한 집단들을 위한 사회주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서 퀴어들이 함께 사는 사례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공공주택의 공급 자체가 한정적이다 보니, 사회주택의 입주자들도 가치 지향에 따라 선택을 해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서요”
“우선은 기본적인 선택지(공공임대주택)가 많아야겠네요.”
“우선 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오래 살 수 있게 해야 다른 조건들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 퍼져 있던 정부의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의 분양주택이라는 이분법은 주택과 도시를 획일화하고 경직시켰던 주원인 중 하나였다. 비영리 민간 주체의 참여에 의한 사회주택은 도식화된 기존 문법에서 벗어나 ‘사는(living) 곳’ 으로서의 주택과 도시에 다양성과 활력을 찾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책 수단이 될 것이다. (55p)
# 도시재생, 부딪히는 경험들
“인천이 도시재생사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동인천 쪽. 그런데 아무 준비도 없이 일단 들어와서 살라는 식으로 하고, 입주자가 직접 리모델링을 해서 살라는 사업도 있었어요. 청년이나 예술가들에게 와서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한 방식이에요. 그래서 지금의 도시재생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요.”
“서울에 할머니께서 사시던 동네가 도시재생 구역인데요. 성곽길과 공원을 예쁘게 만들어놓고,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사니 좋아 보이긴 해요. 그런데 정작 주택가 진입로는 휠체어나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고, 원래부터 그 지역 사시던 어르신들은 무릎이 아파서 동네를 오르내리기도 힘들어하시거든요. 오래된 동네일수록 배리어프리 등이 갖추어져야 하고 너무 열악한 시설은 정비해야 하는데, 외형보존에만 집중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무조건 재개발을 했으면 하는 건 아니에요. 동인천 배다리마을 같은 곳은 동네를 철거하고 도로를 공사하려다가 주민들이 안 나가겠다고 해서 취소되었어요.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노인들이 아무리 편리한 곳이라고 해도 갑자기 다른 지역에 살 수 없기도 하거든요. 그 공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계획된 환경 속에 어느 정도 정형화된 형태로 공급되는 아파트와 달리 기성시가지에서의 주택 공급은 이웃의 삶의 질과 동네의 분위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후 주거지에서의 매입임대주택이나 소규모주택 정비사업은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공공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축 규제를 완화할수록 이웃의 주거환경은 나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72p)
# 공공임대주택 신청, 복잡하다 복잡해!
“행복주택 신청을 많이 넣어봤는데 과정이 너무나 스트레스였어요. 기준이 되는지 계속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고, 서류를 살펴보면서 뭘 내야 하는지 하나하나 알아봐야 해서. 공공임대주택 유형마다 기준이 달라서 통합해야 한다는 내용이 책에 나오는데, 공감해요. 저는 그나마 인터넷 접근성이 좋아서 편하게 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포기하게 되겠다고 생각해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새로운 유형이 도입되었다고도 지적되는데요. 그렇다보니 사람들이 표를 줄 만한 예쁘고 좋은 말로 이름이 붙었잖아요. 국민이니 행복이니. 유형이 다양하면 이름으로라도 누구를 위한 어떤 성격의 유형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주변에도 신청 자격이 될 텐데도 각각의 제도를 알아보는 것이 피곤해서 안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복잡해서 신청 안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기준을 통합하고 대기자명부를 만들자는 5장의 의견에 동의해요.“
혼란스러운 공공임대주택 유형을 통합하기 위한 논의가 신속하게 진전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기존의 체계가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그 자체가 일관되고 이해하기 쉽게 정책을 정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혼란의 가짓수가 변화를 시도하지 않아야 할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95p)
# 소셜믹스, 임대주택에 대한 낙인을 없앨 수 있다면.
”직접 살아보니 매입임대주택은 관리가 잘 안 되어 쉽게 엉망이 되는 상황이 있어요. 주변 분양주택과 금세 비교가 되고요.“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것도 영구임대주택 같은 경우에는 평생 같은 이웃과 살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낙인효과로 사회통합에 방해가 되고.“
”임대와 분양이 단지가 아니라 가구 단위로 섞여야 하지 않을까요? 임대주택 안에서 대상별로 임대료를 다르게 하는 것도, 건강보험료를 적용하듯이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고요.“
”돈 버는 방법이 부동산투기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집값이 오르지 않는 단지에 산다는 것에 대한 불만과 박탈감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주택이 당연히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아파트 층수에 따라 입지가 다져지고. 아파트에 너무 자신을 투사하는 게 아닌지.“
“최근 페미니스트들도 ‘내 집’ 마련 얘기를 많이 하는데, 주거가 꼭 소유 개념이어야 할까요?”
“가령 비혼 여성 1인 가구라고 했을 때 남성과의 임금 격차도 심하니 경제력 취득의 욕망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또 사람들의 자가에 대한 욕망은 임대차법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도 있는 것 같아요, 갑을관계에서 불안을 느껴서. 임대인의 권리가 잘 보장된다면 이렇게까지 분양아파트를 사려하고 임대아파트와는 섞이고 싶지 않아 하는 일들이 안 생기지 않을까.”
무엇보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완화하고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입주 대상 계층의 보편성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취약계층에게는 최종 주거 안전망으로서 공공임대주택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또한 일반 국민이 보편적으로 접근 가능하고 정서적 이질감이 없는 일반재로서 위상 재정립이 필요하다. (134p)
이렇게 공공임대주택과 관련하여 주제별로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껏 막연히 문제적이라고만 생각하던 현상들의 원인과 대안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듯했습니다.
분양 전환되는 ‘가짜’ 공공임대가 아닌 살고 싶은 만큼 살 수 있는 공공임대. 반지하, 1인가구 대상 초소형 원룸, 노후주택 아닌 적정주거로서 공공임대. 모두의 보편적 권리로서 공공임대에 대한 지향점이 더 명확해졌어요.
한편, 주거 문제는 보편적 권리의 문제이기에 젠더 관점으로 비판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주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번 세미나 도서인 〈공공임대주택 이렇게 바꿔라〉도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문제를 젠더 관점으로 접근한 내용은 특별히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이 있었어요.
세미나를 통해 쌓은 공공임대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바탕으로, 젠더 관점에서 공공임대 주택의 공급과 배분의 문제를 날카롭게 톺아보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겠지요?
다음 세미나 후기와, 복지팀의 성평등 주거를 위한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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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팀 내부 세미나를 진행하시는 건가요?! 젠더 정책이 빠져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공임대주택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책인 것 같아 저도 관심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