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성적수치심’ 괜찮지 않습니다” 토론회: 시민들의 목소리로 퇴장을!
[후기]“‘성적수치심’ 괜찮지 않습니다” 토론회: 시민들의 목소리로 퇴장을!
* 사진 : 온라인토론회 중계 현장 앞
안녕하세요! ^____^
지난 달 9월 28일 화요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적수치심’ 괜찮지 않습니다 토론회: 시민들의 목소리로 퇴장을!]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올해 3월부터 ‘성적수치심’에 대해 논의한 결과를 발표한 자리였습니다. 상담소는 올해 ‘성적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피해자의 이야기를 제한하는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이 단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올해 [‘성적수치심’에 빨강카드를!]이라는 사업으로 ‘성적수치심’이 법률에 존재함으로써 성폭력의 유무죄 판단근거로 강력하게 작동하는 현실에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이에 [‘성적수치심’에 빨강카드를 : 우리의 목소리로 ‘성적수치심’OUT!] 대중설문을 지난 여름에 진행했답니다.
503명의 대중 설문조사 결과 분석을 류벼리 활동가가 [숫자로 보는 ‘성적수치심’]이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발제를 하고, 최원진 활동가가 [‘성적수치심’ 괜찮지 않습니다: 36명의 이야기로 ‘성적수치심’에 퇴장을 고하다]라는 제목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리 한 두 번째 발제를 하였습니다.
토론으로는 권김현영(여성현실연구소 소장), 양지혜(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사무처장), 최김하나(서울연구원 성평등인권센터 인권전문관), 김두나(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장다혜(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자, 그럼 토론회 때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할까요?
* 사진 : 화면 왼쪽부터 류벼리 활동가, 최원진 활동가, 진행자 이소희 활동가. 류벼리, 최원진이 발제하는 모습.
류벼리 활동가의 발제에서 ‘성적수치심’이라는 표현을 일상에서 본인이 직접 사용한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예’라고 응답한 사람은 27.04%(136명)에 한했습니다. ‘성적수치심’이라는 단어를 접한 사람이 82.7%에 달하는 데에 비해 실제 사용해본 사람은 1/3 수준으로 적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어의 효용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이지요.
시민들은 “문제적 발언임을 지적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쓰이는” 단어로서 ‘성적수치심’을 사용하거나, 본인의 피해상황을 말할 때 “‘대중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해당 단어를 썼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대중설문조사에서 시민들에게 63개라는 다양한 피해 감정을 제시하였고, 이중 선택되지 않은 감정은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다양한 감정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명기한 사례는 각각 26개와 10개만 선택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는데요.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어떤 분은 “100명의 피해자가 있다면 100개 이상의 감정이 있을 수 있고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며 감정의 다양성을 말해주셨습니다.
상담소는 2021년 8월부터 9월까지 총 36명의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성적수치심’을 사용하게 된 맥락, 인식변화 지점, 피해 당시, 혹은 법적 대응 과정에서의 구체적 사례 등을 질문했습니다.
최원진 활동가의 발제에서 인터뷰 참여자들은 ‘성적수치심’이라는 단어의 낯섦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성적수치심’이라는 단어로 인해 수치스럽지 않은 나와 ‘성적수치심’이라는 사회적 단어 사이에서 스스로 “피해당했다고 씩씩하게 지내면 이상해지는 건가?” “내가 분노하는 것이 이상한 것일까?”라고 되묻게 된다고 답변해 주셨습니다.
몇몇 인터뷰 참여자들은 사건을 알리고 가해자에게 사과 요구, 조직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성적수치심’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한 사례에서 “다리 만진 거 다른 사람이 다 알 텐데, 너 괜찮겠어?”와 같이 ‘수치스럽지 않겠어?’라는 말을 하면서 피해자가 ‘성적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는 무언의 압박을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메시지는 폭력 경험이 공개되는 것 자체가 여성에게 ‘수치스러운’것이라는 가치 판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질문을 해 보게 되었답니다. 사실 수치를 느껴야 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를 저지른 가해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발제가 끝나고 패널분들의 토론회가 이어졌습니다.
* 사진 : 화면 왼쪽부터 류벼리, 최원진, 진행자 이소희, 토론자 권김현영, 양지혜, 최김하나, 김두나, 장다혜. 토론하는 모습.
여성실천연구소의 권김현영 님은 반성폭력운동의 감정언어를 중심으로 발제를 해 주셨습니다. “감정언어를 쓰기보다는 피해에 대한 반응은 개인마다 다르며, 이를 중심으로 판단근거가 만들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단일한 감정언어를 규범화하는 것은 동일한 족쇄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수치심을 느껴야 인정해준다는 법 언어에 저항하는 동시에, 공적인 장에서 성원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감정과 경험이 보여질 수 있게, 들려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우리에게 던졌습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양지혜님은 청소년의 삶에서 ‘성적수치심’은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용의복장 규제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품평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권력을 강화한다.” 이는 “교육현장에서 여학생들은 자신의 몸을 능동적이고 자유롭게 쓰지 못하도록 위축되고, 수치심과 콤플렉스를 경험케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여성 청소년이 성에 무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은 오히려 이들을 순결하기에 범하고 싶은 이중적 규범으로 성애화된다. (중략) 남성 청소년에게 2차 성징이 성적 주체로 자신을 확립하는 일이라면, 여성 청소년의 2차 성징은 성적 대상화를 경험하고, 남성 중심 사회가 제시하는 젠더 롤에 따라 자신의 몸을 맞춰가는 일인 것이다.” 라는 말을 해 주셨습니다.
서울연구원 성평등인권센터의 최김하나 님은 “성희롱/성폭력의 주된 정서를 피해자의 ‘성적수치심’으로 이해할 경우 피해자는 ‘부끄러운 일을 당한 사람’으로서 수동적 존재로 상정되고, 이는 ‘피해자다움’의 이미지로 박제되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발생 시 구성원들로 하여금 피해자 관점에서의 사건 이해를 어렵게 하기도 하고,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가로막기도 하며, ‘피해자다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피해자에 대한 의심, 비난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최김하나 님은 이에 ‘성적수치심’개념으로 인해 직장에서 성희롱/성폭력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시도와 노력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안해 주셨답니다.
“개별 사업장/기관에서 자체 규정 상 명시하고 있는 ‘성적수치심’을 삭제하도록 하는 흐름을 만들 필요가 있다”
“매뉴얼 등의 자료를 모니터링하여 상담 과정에서 성희롱/성폭력을 ‘성적 수치심’의 여부로 설명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희롱/성폭력을 ‘권리 침해’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강화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의 김두나 님은 수사재판과정에서 성폭력을 설명하고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성적수치심’이 작동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관행적으로 피해자에게 ‘성적수치심’을 느꼈는지 질문하고 이를 판단에 반영한다고 말이지요.
이런 상황으로 "피해자는 피해로 인해 ‘성적 수치심’ 외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더라도 범죄 성립 구성요건이나 수사재판 관행에 맞춰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성적수치심’으로 표현하여 고소장을 작성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성적수치심’이 초래하는 위와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우선 수사기관과 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성적수치심’을 느꼈는지 질문하고 이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 관행을 없애고 피해자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경청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셨답니다.
"변화를 통해 성폭력 법적 판단에서 ‘성적수치심’이 더 이상 범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수사재판과정에서 자신의 피해 감정과 경험을 ‘성적수치심’이라는 협소한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마무리 해 주셨습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장다혜 님은 ‘성적수치심’ 법적맥락과 변화모색을 주제로 법체계 내에서의 ‘성적수치심’위치를 찾고 해외에서는 어떻게 법적 용어가 개선되었는지도 짚어주셨습니다.
한 예로 "영국에서는 2003년 성범죄법 개정으로 ‘외설폭행’이라는 이름에서 ‘성적 폭행’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외설이라는 개념이 넓고 모호하여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사실 수치심이라는 표현을 제고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현재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성적수치심’을 ‘성적불쾌감’으로 변경하는 방향보다는 ‘성적행위’로 명기하면서 합리적 피해자 관점을 수사재판 기관에서 고민하며 성인지감수성 축적의 필요성을 말씀하였습니다.
온라인 토론회에 약 130여명의 참여자가 함께 해 주셨답니다.
참여자 분들께서 주신 실시간 온라인 피드백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수치심’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도 어렵지만 최고 권력자인 재판부, 판사들이 그것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을지 늘 의심스럽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범죄의 양상은 다양해지는데 법 규정이 너무 느려요.”
“(수치심은)가해자에게 가르쳐야 할 감정 아닌지”
“현실에서 ‘수치심’이 갖는 문제와 변화해야 한다는 맥락과 흐름, 법률이나 재판 과정에서의 ‘수치심’이 다뤄지는 방식의 간극이 많이 느껴지는데요. 공권력에서 처벌을 결정하는 이들이 분명 변화하고 업데이트 되야 하는데 사법부를 떠올리면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이번 온라인 토론회를 참여하면서 ‘성적수치심’이라는 단어는 그냥 ‘단어’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얼마나 촘촘하게 여성시민을 억압하고 제한하는지 느꼈습니다.
정해진 감정은 없고 100명의 피해자가 있다면 100개 이상의 감정이 있는 것처럼, 우리 이제는 ‘성적수치심’에 퇴장을 고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성적수치심’토론회 자료집은 발간자료집에서도 다운받아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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