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봄날의 멋진 하루 '10대 남성과 여성 교사의 연애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
섹슈얼리티로 놀아요~ 봄날의 멋진 하루!
지난 15일(화) 저녁, 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다양한 위치와 정체성을 가진 11명의 참가자와 함께[10대 남성과 여성 교사의 연애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을 주제로 알쏭달쏭한 마음을 나누고 복잡다단한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작년 10월 언론을 통해 남자 중학생과 여성 교사의 성관계 사실이 보도되면서 한동안 뜨거운 논란이 일었지요.
중학생을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당사자들에 대한 과도한 사생활 공개 행위(일명 신상 털기)가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고요.
워낙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사안이라 다들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터였어요. 그래서 이야기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몇 가지 문장 채우기로 시작해봤습니다.
- 처음 이 일에 대해 접했을 때 내 감정은 ~~~다.
- 오늘 오면서 이 주제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 이 이슈는 ~~~차원에서 바라볼 문제이다.
- 이 이슈를 둘러싼 가장 큰 문제점은 ~~~다.
각자 문장을 완성한 다음, 검열과 공격 금지의 규칙을 공유했습니다. 민감한 주제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드러내기에 어려움이 있었죠.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이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두려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해보자는 취지에 다들 동감했어요.
<문장 완성 1.> 오늘 모인 사람들이 처음 이 일에 대해 접했을 때의 감정은 ~~~다.
: 마녀 사냥 같다고 느꼈다
: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 올 때가 왔구나, 드디어 표면화 되는구나 싶었다
: 기분 나쁘고 배알이 꼴렸다 (10대와 성인의 연애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 복잡한 마음, 놀랍기도 했고 이제 어떻게 하지 싶은 생각
: 설레임과 놀라움과 당혹스러움과 걱정되는 마음에 두근두근 했다
: 아, 나도 선생님과 연애하고 싶다~ 부러웠다
: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인데 또 사람들이 생 난리를 치겠구나 싶었다
주로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많음을 확인하고 우리가 불편한 지점이 무엇인지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가 문장을 던지면 각자 동의하는 정도에 따라 0부터 3까지의 숫자로 생각을 나타내보았어요.
<* 10대 남학생과 여성교사의 연애는 걱정스럽다?!>
- 사회적 측면에서
: 10대 남학생보다 오히려 여성 교사가 더 걱정이다. 이 얘기가 언론을 통해 퍼졌을 때 남학생을 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여성 교사에 대해 '성인이면서 심지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판단력'을 비난하는 경우였다. 생각해보면 이 여성교사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모든 룰을 깬 셈이다. 성인여성으로서, 교사로서, 기혼자로서, 아이 엄마로서 사회가 부여한 역할 기대에 반하는 종합적 사례를 보여준 셈.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전혀 보호받거나 존중받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많이 염려된다. 이미 네티즌들을 통해 '신상 털린' 내역만 봐도 그렇다.
: '여교사'에게 부여되는 성적 이미지가 포르노로 인한 영향이 지배적인 측면이 있음. '연애'는 그 자체로만 보자면 좋은 건데, 두 사람이 사회적으로 간섭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탄압이 심할 것이다. 때문에 둘의 관계는 힘들어질 듯. 사적이고 내밀한 관계를 타인의 기준과 잣대로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식의 태도로 캐묻고 파헤치는 분위기가 판이한 현실.
- 당사자의 위치와 관계의 측면에서
: 학생-교사라는 수직적 관계를 볼 때 억압적 연애 관계가 될 수 있어 염려된다. 교사 위치에 있는 여성이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평등한 연애 관계에서 오는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
: 현실의 무리한 개입이 없다면 연애는 당사자간의 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걱정할 이유가 없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게 판단할 이유가 없음.
: 내 결정권이라고만 하고 그걸 편안히 볼 수 있을 것인가. 두 사람 사이에 권력 관계는 전혀 없겠는지? 내 경험만 봐도 학생 때 두근거리게 한 선생님 있었다. 용기 있고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였다면 선생님께 연애 제안했을 수 있었을 것.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후회했을 것이다. 그때는 볼 줄 아는 눈이 없었고 아는 세계가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 연애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도라는 것은 청소년-성인 여부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닐 것. 성인 중에도 성숙하지 못한 태도로 관계에 임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각 개인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인만큼 각자의 결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 청소년-성인 구도나 성별에 관계 없이 사제지간 연애 자체가 문제될 수 있다. 학교, 즉 배우고 가르치는 공간에서는 통제해야 할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 일종의 지켜줘야 하는 선이 필요하다는 생각.
<* 만약 10대 여학생과 남성 교사의 연애로 조건을 바꾸어 생각해본다면?!>
: 10대 남학생에 비해 10대 여학생의 사회적 위치나 자원이 훨씬 취약하게 느껴진다. 특히 성적 경험이 10대 남성에게는 자랑거리가 되는 집단 문화가 있는 반면 10대 여성에게는 숨기거나 비난받는 요소가 되는 현실이 있기 때문.
: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체크해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가장 걸려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나이의 문제 (성인-청소년) / 직업의 문제 (교사-학생) / 성별의 문제 (연상 여성 - 연하 남성) / 결혼여부의 문제 (기혼녀, 아이엄마)' 네 가지로 나누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여학생들과 교사들은 대부분 '선생님이라는 점'을 꼽았고, 학부모들은 '유부녀'라는 점을 꼽더라. 재미있는 건 남학생들은 이 네가지 요소 외에 공통적으로 집중하는 점이 있었는데 바로 '여성 교사가 예쁘냐'하는 점이다. 남학생들에겐 '여성은 다른 어떤 조건보다 그저 예쁘면 다 된다'는 식의 생각을 엄청 강하게,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야길 나눠보면서 사람마다 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지점이 굉장히 상이하다는 걸 알게 됐다.
<문장 완성 2.> 이 이슈는 ~~~차원에서 바라볼 문제이다.
: 개인의 진실한 감정 차원 / 관계의 차원 / 단편적 2차원 / 10대에 대한 사회적 태도 / 개인의 인권 보장 / 우리 사회의 성 인식과 성 문화 / 청소년 인권과 성적자기결정권 /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존중이 언급되면서 이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특히 이번 일과 관련하여 한 국회의원은 의제강간규정(13세 미만인 여성과 성관계할 경우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무조건 처벌하는 규정)을 성별을 불문하고 연령을 상향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죠.
모인 참가자들의 의견 중에는 청소년을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제약하는 것이 문제라고 바라보는 입장도 있었고, 그렇지만 어린이의 성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다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고 존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않은 문제인 것이죠.
한 참가자는 '권리라고 하면 우선 좋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확보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얼핏 하게 되지만 사실 권리가 있다는 건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 역시 동시에 따른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충분한 성적 의사 결정 능력이 있는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성적 존재로서 인정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은 없으면서 권리만 주고 책임을 알아서 감당하라고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뒷받침 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성적 자기 결정 능력 기준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해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했어요. 이 사안의 문제점을 각자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마지막 문장 완성을 통해 살펴볼까요?
<문장완성 4.> 이 이슈를 둘러싼 가장 큰 문제점은 ~~다.
: 황색 저널리즘과 여론의 호들갑이다. 이미 그런 사례는 많았을텐데 새삼스럽게 성인 여성과 10대 남성의 연애 존재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차별적 소지가 드러난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는 성인의 기준을 어떻게 봐야할까 고민이 되기도 함. 성에 대한 주체성을 가지는 시기가 어느 정도 있을 것 같은데.. 성인에 대한 기준을 낮추는 방향으로 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꼭 성인-청소년 관계가 아니더라도 여성이 연상인 이성애 연애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하고 있다는 생각.
: 그냥 그렇게 자유롭고 당당하게 성적인 결정을 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람이 '교사'라면 여전히 극복을 하기 어려운 장벽이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논란 당시에도 여성 교사의 성적 매력에 대해 평가하는 반응들이 많았어. 심지어 외모가 출중하지 않으니 분명 성폭력일거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까지 있었을 정도. 나이 많은 여성의 성적 존재성/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각은 여전하구나 싶었다. 아무튼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에 충실하고 당당하게 연애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 사실 현실에는 10대 여성과 연애하는 남성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는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이중성이 드러나는 지점.
: 여성의 사적 영역에 대한 관심이 도가 지나쳐서 폭력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 연애는 개인의 선택인데 신분이 '교사'이기 때문에 직업적 자질 논란이 있는 거 같다. 정말 쉽지 않은 문제다 싶고, 내가 여성 교사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자문해보게 된다.
: 기존의 성적 금기가 포괄적으로 드러나게 된 사안인 듯. 솔직히 가장 큰 문제가 뭔지 꼽기는 어렵다. 각자의 무게가 있는 거 같다. 이 자리에서 더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특히 성적 자기 결정권의 문제에 있어서 나 스스로 나이주의를 반대한다고 하지만 나도 한편으로는 나이를 신경쓰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 주변 사람들이 당사자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이 본인들에게는 상처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0대로서 청소년의 얘기를 해야할 것 같은 강박을 스스로 느꼈다. 결국 내 위치에서 얘기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 청소년의 섹스를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의 성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이야기 한 뒤로 오히려 고민을 떠안고 가는 기분이다. 쉬울 줄 알았는데 어려운 문제이고. 청소년으로서 나이 문제에 대해 자기 방어를 많이 하게 된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나눠준 모든 분들께 반가웠다는 인사를 전하며!
참가자이자 현재 민우회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거부기의 후기를 나누며 마칠게요~
작년에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끼리 이것에 관련해서 얘기해봤는데,
너무 복잡해서 어찌어찌 썩 풀리지 않은 느낌의 결론이 나왔었어요.
그때도 우리끼리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여성단체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는 얘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이런 이야기 하는 자리가 있다고 했을 때
가고 싶다고 얘기했던 청소년 활동가들도 꽤나 있었어요.
아쉽게 그날 못 온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멋진 하루에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단체 활동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 이런 고민들을 가지고 있구나.. 끄덕끄덕...
청소년들끼리 모여서 했던 얘기와는 고민하는 지점이 살짝 달라서
나, 그리고 같이 왔던 친구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지 방향을 못 잡은 것도 있긴 했어요.
그래도 우리가 했던 이야기와는 다른 여러 이야기가 오가서 여러 생각거리가 던져져서 좋았어요.
덕분에 제 앞에 있던 종이는 낙서와 글들로 범벅이 되었죠.
시간이 좀더 길었다면,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
내가 이 분들이랑 쫌 더 친했더라면 쫌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다음에도 이런자리가 있다면 그땐 좀 더 친해져서 좀 더 잘 이야기하고 그럴 수 있겠죠??ㅋㅋ
그날 끝나고 저희 합정역까지 태워다주신 분 정말 감사했어요!!ㅋㅋ
그리고 몽쉘 맛있었고, 몽쉘만큼 맛있고 좋았던 시간이었다고 친구가 전해달래요♥
-거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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