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제 머리만 처박은 꿩 같은 청와대가 안쓰럽다
머리만 처박은 꿩 같은 청와대가 안쓰럽다
청와대가 21일 “청와대는 KBS 사장 선임에 개입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브리핑했다. 경향신문이 이날 아침 신문에서 “응모도 하기 전 3명 압축,내정설…청와대, KBS 사장 선임 사실상 개입”이라고 보도한 데 대해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 곽경수 춘추관장은 “정정 보도를 요청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제 머리만 땅 속에 처박고 사냥꾼이 저를 발견하지 못할 거라 믿는 꿩을 보는 듯하다. 분노를 넘어 안쓰러울 따름이다.
KBS 사장이 청와대가 낙점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명제다. KBS 이사회가 독자적 공모를 통해 사장 후보를 선정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태다. 하지만 지금의 KBS 사장 선임 절차가 청와대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KBS 이사회가 얼마 전 정연주 사장을 불법적으로 해임 제청할 때처럼 그저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과연 있을까?
심지어 청와대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수구족벌언론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동아일보는 20일 아침 신문에서 “KBS 신임사장 김은구씨 유력”이라고 보도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의 입을 빌은 보도였다. 동아일보는 이전에 장관이나 청와대 인사 특종 보도를 한 것처럼 KBS 사장 인사도 특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KBS 사장도 장관이나 청와대 인사처럼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가 정하는 것으로 당연시했다. 이날 보도가 나온 시점까지 KBS 사장 공모에는 1명도 접수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동아일보 보도 이후 대부분의 기자들은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로부터 KBS 사장으로 누가 낙점됐는지를 취재하느라 경쟁을 벌여야 했다. ‘3명 압축설’, ‘유력 후보설’ 등이 청와대와 여권으로부터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중앙일보는 21일 아침 신문에서 여권 관계자의 입을 빌어 “이병순,김은구,손병두 KBS 사장 3파전 양상”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은 청와대 관계자가 “가급적 한국방송 출신을 새 사장으로 임명한다는 방침”이라며 “아직까지 누구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가 KBS 사장을 정한다는 걸 청와대도 알고 기자도 아는 가운데 취재가 이뤄진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KBS 이사회는 새 사장 후보를 선정하겠다며 호텔 등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가며 회의를 열고 있다. 시민들이 비웃는다. 그들이 논의는 무슨 논의를 하겠나? 청와대의 처분만 내려지길 기다리며 차나 마시고 있을 게 뻔하다. KBS 이사회 ‘방송 6적’ 이사들은 아예 청와대에 들어가서 회의를 열어라. 그들이 호텔에서 축내는 커피 값도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일 터다.
청와대와 KBS 이사회의 어설픈 연극을 더 이상은 못 봐주겠다. 땅 속에 머리만 처박고 있다가 사냥꾼의 총을 맞고 고꾸라지는 꿩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설픈 삼류 코미디를 당장 때려치워라. 국민들은 이제 넌더리가 난다. 지금이라도 청와대는 정연주 사장을 불법적으로 해임하기 이전으로 모든 걸 되돌리고 법적으로 보장된 공영사장 임기를 존중하라. 국민은 꿩보다 현명하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2008년 8월 21일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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