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여성대상 강력 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은 약자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할 뿐이다.
[ 성 명 서 ]
‘여성대상 강력 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은 약자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할 뿐이다.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한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추모와 증언과 분노의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포스트잇에 담겨 강남역 10번 출구를 덮었고, 자발적인 추모제가 이어졌다. 대규모 침묵행진, 달빛시위, 거울행동 등 시민들의 직접행동도 이어졌다. 이 움직임은 제주, 청주, 대전, 대구, 부산, 전주, 광주, 진주 등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온라인에서의 광범위한 ‘여성혐오반대’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6월 1일 정부는 ‘여성대상 강력 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종합대책은 △범죄안전 사각지대 해소 △ 정신질환자와 알코올 중독자 조기 발굴 및 치료, 공권력에 의한 정신질환자 행정입원 시스템 구축 △여성대상 범죄자에 대한 관리 강화, 처벌 가중 △ 피해자 지원 △ 양성평등문화 조성을 담고 있다. 이 대책으로 강남역 사건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두려움과 분노가 안심과 신뢰로 바뀔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발표된 대책에는 강남역 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증언과 분노, 성찰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사건으로 인해 터져 나온 여성들의 폭력과 침해에 대한 증언을 진지한 사회적 의제로 인식하고, 누구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침해당하는 사회에 살고 싶지 않다는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한 여성의 죽음을 자신의 문제로 느끼는지, 우리 사회의 무엇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대책 마련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 대책은 원인을 ‘정신질환자 문제’로 진단해 오히려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유발하고, 약자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다. 문제 진단이 잘못되어 있으니 대책의 방향도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단기 처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기 처방의 내용조차도 ‘기존 여성안전 관련 정책 짜깁기’와 ‘실효성 없는 처벌강화 남발’로 채워져 있다. 오히려 이 사건에 공분하는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체감하고 있는 ’여성과 소수자를 혐오하는 문화를 양산하는 온라인 공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대책에서 빠져 있다. 결국 이번에 내놓은 대책은 일단 시끄러운 상황을 덮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보여줄 뿐이다.
정부가 강남역 살해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문제로 진단하는 오류를 더는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이야기들 속에서 시민들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을 읽어내려는 노력이다.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정신장애인이 관리 감독 받는 사회가 아니라, 소수자 혐오가 없는 사회, 성평등이 체감되는 사회, 그래서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으로 희생되지 않는 사회이다. 정부는 강남역 사건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한 시민들의 움직임이 여성혐오 문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라. 강남역 사건 이후 열린 추모와 분노의 공간에 대한 이해 속에서 대책을 마련하라.
2016년 6월 2일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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