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의료 행위 중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논평] 의료 행위 중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을 통해 바라본 의료 현장의 성폭력 문제
지난 6월 3일, 언론을 통해 의과대학생 3명이 동기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추행하고 동영상을 촬영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가해 학생들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몇 년간을 같은 공간에서 동거동락하며 지내온 동기들이 저지른 가해행위로 인해 피해자는 깊은 분노와 배신감, 상처를 경험했을 것이다. 성폭력 피해로 인한 후유증은 피해 자체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피해 이후의 처리 과정과 주위의 반응이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는 점에서 향후 처리 과정에서 대학 공동체와 사회 구성원들에게 부여된 책임은 막중하다 하겠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건과 같이 친밀한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행위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술, 분위기, 장소 등 갖은 핑계로 발생하는 ‘아는 관계에서의 성폭력’ 문제는 비단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집단 문화가 가진 병폐와 구성원들의 왜곡된 성 인식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 사건에 대해 보다 격한 반응들이 표출되는 이유는 가해자들이 장차 생명을 다루는 의사 지망생이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종은 그 전문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사회적인 존경과 신뢰를 받는 집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대가 무참히 짓밟힌 데에서 오는 충격과 분노가 더욱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사’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 기대, 그리고 그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지는 격렬한 반응들을 바라보며 본 상담소에 접수된 ‘의료행위 중 성폭력’에 대한 적지 않은 상담 사례들이 떠올랐다. 대체로 다른 의사에게서 비슷한 진료를 받았을 때에는 없던 행동이 유독 특정 의사에게서만 이루어졌다며 이를 성폭력으로 볼 수 있겠는지를 고민하는 상담 내용이다. 그러한 행동들로 인해 성적 불쾌감을 확연히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 당시의 상황이나 의사의 권위에 위축되어 즉시 문제제기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 의사의 행위가 진료행위를 빙자한 성추행이라고 확신할 지라도 행위 현장에 피해자와 가해 의사 둘만 있는 경우에는 가해 의사가 발뺌을 할 때 피해 입증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을 염려하여 대처 방안을 문의하는 내용 또한 많았다. 이렇듯 상담 현장에서는 의료 행위 중 성폭력 피해에 대한 적지 않은 사례를 접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일들이 잘 알려지지 않거나 처벌 사례가 적은 이유는 그만큼 의사의 전문성과 권위에 대항하여 개인이 문제제기 하기 쉽지 않은 의료 체계 전반의 구조 때문이다.
현재 의료법 상 진료 중 저지른 성범죄 행위는 의료인 결격사유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개정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다. 그러나 개정안 역시 결격사유 추가 사항에 진료 중 성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금고에 미치지 않는 형을 선고 받은 경우에는 가해 의사를 제재할 뾰족한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후 처벌 이전에 그 누구도 성폭력 피해에 대한 불안감을 안은 채 병원을 이용하기를 원치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비 의사 집단인 의대생들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격분한 여론이 출교 조치나 의사 자격 박탈 등을 거론하는 것 역시 그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의료 행위를 빙자·악용한 성폭력 가해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사전 예방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표명이 아닌 자정 작용이 가능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의료 행위 중 성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고 의료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의료인 집단의 자성과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
2011년 6월 10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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