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언젠가 했던 말' 첫사람 사진프로젝트를 공유합니다(1)
[당신이 언젠가 했던 말]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사진프로젝트 (1)
성폭력을 성욕의 문제로 보거나 피해자를 완전히 무기력한 존재로 그리는 이미지는 세상에 이미 많습니다.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사진 프로젝트 <당신이 언젠가 했던 말>은 성범죄 신고율이나 기소율 같은 통계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사진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스스로의 피해경험을, 혹은 조력자, 친구로서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15가지의 일상적인 장면을 재구성했습니다. 이 말들은 성폭력을 이야기 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공간에서 들을 수 있었던 ‘평범한’ 말들입니다.
*
“뿌리치고 소리를 지르든 신고든 뭐든 했어야지”
지하철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날 뻔 했을 때, 바로 들었던 생각은 ‘무섭다’였다. 도망칠 때 “아이씨” 하는 소리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옆 칸으로 도망쳤다. 막상 그 상황을 맞닥뜨리면, 격렬한 저항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_라룰
“그 정도라서 다행이다. 조심하고 다녀라”
내게는 이 말이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라서 더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더라도 말이다. 일상적일수록 나 자신을 탓하는 방식으로 내면화하기 쉽고, 상처도 자주 받게 된다고 생각한다. 조심하지 않아서 성폭력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조심한다고 해서 성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_리차드
“이제 무서워서 남자는 어떻게 만나?”
성폭력 사건 이후, 지금까지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무던하게 노력하고 있다. (...) 피해 후 내 생활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다고 성폭력이 내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지는 않았다. 내가 피해자스럽지 않게 행동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진정한 성폭력피해자’가 아닌 사람이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에 소리치고 싶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나는 내 삶을 잘 살아낼 것이라고.
_비홍
“아무래도 성경험 있는 사람이랑 없는 사람은 성폭력 당한 다음에 행동이 다르지”
이 말을 한 판사에게 묻고 싶다. 성경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성폭력 당한 다음에 행동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 성폭력을 마치 과격한 성관계쯤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 피해자는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적 사고, 편견이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게 한다.
_호요
“옷 그렇게 입고 다니면 ‘나 잡아잡슈’ 하는 거랑 똑같아”
피해자를 비난하고 자책하게 하는 말일뿐더러 일상생활까지도 억압한다. 치마가 너무 짧다, 속바지 입어라, 속옷이 비치니까 나시 입어라, 가슴 다 보여, 등등. 언젠가 “성폭력은 여자 쪽에도 조금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던 친구가 얼마 후 성추행을 당해서,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까 봐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_혜진
“그럴수도 있지 그런 일로 유난떨지마 네가 예민한거야”
중학교 때 남자애들이 여자 가슴을 만지고 브래지어를 풀고 도망가는 게 소위 유행으로 퍼진 적이 있었다. 가해 남학생들은 따로 벌을 받기는 했지만, 담임선생님은 여자애들에게 “그 나이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 그럴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성희롱, 성추행에 문제제기 하는 사람을 예민하다고 몰아가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잘못한 건 가해행위 한 사람인데 마치 문제제기 한 내가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다.
_수현
*
‘당신이 언젠가 했던 말’ 첫번째 책은, 올 한해 진행했던 재판동행 모니터링 내용을 담아 전국 경찰서와 검찰, 법원에 배포했습니다:-)
*
사진 혜영
참여 나무, 도미, 라룰, 라일락, 로이, 리차드
비홍, 상희, 수현, 양광수, 인혜, 찬, 혜진, 호요(가나다 순)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