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언젠가 했던 말' 사진프로젝트 (2)
당신이 언젠가 했던 말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사진프로젝트 (2)
성폭력을 성욕의 문제로 보거나 피해자를 완전히 무기력한 존재로 그리는 이미지는 세상에 이미 많습니다.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사진 프로젝트 <당신이 언젠가 했던 말>은 성범죄 신고율이나 기소율 같은 통계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사진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스스로의 피해경험을, 혹은 조력자, 친구로서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15가지의 일상적인 장면을 재구성했습니다. 이 말들은 성폭력을 이야기 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공간에서 들을 수 있었던 ‘평범한’ 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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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끼어들었다가 너도 찍혀. 가만히 있어, 둘이 알아서 하겠지“
직장 내 성희롱은 개인간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다. 주변인과 목격자, 나아가 사회 전체가 ‘성폭력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집단적으로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면
피해는 계속 될 것이다.
_양광수
“걔는 그럴 애가 아니야”
지인이 성폭행을 저지르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상 그 상황이 되니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충격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처음 든 생각은 ‘걔가 그랬다고? 정말’이었다.
성폭력이 누구에게든 일어나고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늘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평범해 보이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은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통념이 있다. 현실은 그 반대인데…… 가해자가 멀쩡한 사람이라고 주장할수록 피해자만 의심하고 부각하게 된다. 피해자는 멀쩡한 사람을 ‘잡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부각되는 존재는 피해자뿐이다. 가해자의 죄는 그렇게 가려진다.
_라룰
“일을 크게 만들지 마. 너만 손해야”
엄마와 친구에게 성폭력 사건을 이야기해서 들었던 말은 이것이다. 나중에 다른 친구들이 자신이 성폭력 당했음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똑같이 말했다. 그땐 어렸고, 사건을 알리면 피해가 오히려 나한테 돌아온다고 배웠다. 그렇게 대처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성폭력은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여자는 물건이 아니어서 폭력을 당했다고 가치가 손상되는 게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자로서 받아야 할 지원을 받아야 하고, 가해자의 사과를 당당히 요구하고 받을 수 있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다.
_상희
"모텔에 따라간 여자도 잘못이야. 그 나이에 모른다는 소리가 말이 되냐"
‘여성이 모텔에 들어가면 섹스에 동의한 것’이라는 편견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모텔에 간 것 자체가 곧장 섹스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성적 접촉은 합의에 의해, 의사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합의 없는 섹스는 성폭력이다.
_라일락
“성폭력은 여자한테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건데…“
나는 아동성폭력 생존자다. 16년 동안 영원히 다가가면 안 된다고 강압을 가지고 살았다.
아마도 생각이 떠오를 때는, ‘들여다보아서는 안 된다, 외면하라, 묻어놓아라’ 이런 복합적인 강압이 나를 억누르고 외면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처음 진심으로
지난 그 날을 들여다 보았을 때, 바로 알았다. ‘직면할 기회도 주지 않아서 그 동안 내가 이렇게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라는 것을.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묶여있던 나의 마음을 풀어주기만 하여도 이렇게 치유 될 수 있는데 왜 그 동안 억압해왔을까?
스스로의 치유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피해자, 생존자는 치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나는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해,
‘우리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치유할 권리를 달라’고 외치고 싶다.
“피해자는 치유될 수 있습니다.”
_찬
“사과도 했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같은 지향을 공유한 조직 내에서 성폭력사건이 있었을 때 마음 속에서는 ‘가해자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야, 그래도 한때 동고동락한 사이인데 사람이 그렇게 매몰찰 수 있나’ 라는 생각이 꿈틀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피해자의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피곤하고 가혹하게 느끼는 동안, 가해자의 잘못은 흐려지고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공동체 내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한다는 것은 성폭력사건을 둘 사이의 사소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 계속 쉬쉬하고 은폐하면서 거짓된 평화를 연기하지 않는다는 것, 성폭력사건을 직면하고서 다시 살아내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_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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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 첫 번째 책은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분들과 ‘치유의 책’으로도 만나볼 예정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앞으로도 서로의 얼굴을 통해 힘을 확인하는 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2017년에 진행될 사진프로젝트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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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혜영
참여 나무, 도미, 데빈, 라룰, 라일락, 로이, 리차드
비홍, 상희, 수현, 양광수, 인혜, 찬, 혜진, 호요(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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