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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우회 ON] 춘천여성민우회 이사했습니다!
남궁순금(춘천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이사 당일의 소회
창립이후 한 곳에서만 살아온 민우회가 이사를 가야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처음엔 정말 막막했습니다. 이삼년 정도 기금을 마련한 후에 이사할 계획이었고, 그동안 리 모델링(건물주 동의하에)으로 사무국을 꾸미려고 진행 중이었는데 철거 통보를 갑작스럽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갈 곳도 재정도 마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6개월의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가 느닷없이 5월말까지 비워달라기에 황망했는데….
유은정 회원님의 기도 덕분인지(^^) 거짓말같이, 14년 동안이나 지냈던 후평동을 떠나 요선동으로 마침내 이사를 했습니다. 꿈만 같습니다. 좋기도 하고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기도 합니다. 어쨌든 새집이 생겼으니 또 열심히 정을 붙여야겠죠.
아침 아홉시에 시작해 12시 경에 짐을 모두 옮겼습니다.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이삿짐센터에 맡겨야하겠지만 재정을 생각해 회원들이 팔을 걷어붙여야 했습니다(이사에 땀을 뺀 회원 한 분이 회원만남의 날에 자신을 인부회원이라고 소개해 폭소~). 다행이 예행연습 한 번 하지 않았는데도 어찌나 손발이 잘 맞던지 다치거나 깨진 물건 하나 없이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살림을 열나게 닦고 조이고 기름칠(군대에서만 하는 게 아니지 말입니다^^)해 마치 새것처럼 만들었습니다. 놀라운 솜씨였죠. 옮겨올 수조차 없이 망가진 책상과 서랍장을 급하게 구입해 컴퓨터를 올려놓으니 사무실 분위기가 물씬 풍기더군요.
며칠 동안 짐을 싸고 정리하면서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 박스나 되는 사진과 섬섬옥수 만든 걸개그림을 저는 하염없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속의 아이들은 오종종 귀여웠고 젊은 우리들은 모두 웃고 있더군요.
이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한 때 사무국을 열심히 드나들며 같이 했던 초록의 시간, 그 열정들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는지요, 다들 어찌 지내고 계신지요?
이사를 하면서 평범한 진리 하나를 또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면 못할 게 뭐가 있어요? 뭐든 다 할 수 있지!”
모여 앉은 민우회 식구들을 보고 언젠가 운영위원 김아영 선생님께서 해준 말씀이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우린 해냈습니다. 누군가는 작은 일에 의미 부여한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함께 애쓴 우리 모두에게 고개 숙여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푹 쉬시길,
그리고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나갈 수 있길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장면 하나
이윤재옥 회원님의 1톤 트럭으로 몇 번을 왕복하며 짐을 나르던 중이었습니다. 마지막 이삿짐을 지키느라 대로변에 앉아있던 저는 오래 전 알고지낸 스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찾아뵙질 못해 죄송했는데 그분은 소식지를 통해 민우회활동은 알고 있었다며 오히려 저를 무척 반기셨습니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스님은 가던 길을 재촉하셨습니다.
그리고 넋을 놓고 회한에 젖어있는 제게 누군가가 다가왔습니다. 다시 그 스님이었습니다. 깜짝 놀라는 제 손에 뭔가를 쥐어주셨습니다. 직원들과 시원한 냉면이라도 먹으라며 건네 준 봉투엔 5만 원 짜리 지폐 두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분의 한 달 용돈이 몇 해 전만해도 20만원이었던 걸 기억하는 저로서는 받을 수 없는 거금이었습니다만, 더 이상 거역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민우회를 보고 준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같이 힘든 날 자신을 만난 건 다 이유가 있다는 말씀을 남기고 스님께선 이내 저만치 가버리셨습니다.
몇 해 전, 민우회를 처음 알려드렸을 때에도 제게 똑같은 액수의 돈을 주셨던 스님.
쏟아지는 햇살아래 지난 14년이 한눈에 아른거리던 저는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지요.
그 귀한 돈을 보태 책상 두 개와 작은 서랍장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정현스님, 따뜻한 마음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창립 준비를 하던 1998년부터 15여년의 짧지 않은 세월을, 후평 1동 686-3 2층에서만 지냈습니다. 세 평 남짓의 사무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주인장의 놀이공간이었던 옆방의 패 내려치는 소리와 담배연기는 어둑어둑하고 외진 이층의 결핍을 채워주는 위로이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이 음지의 놀이를 접고 귀가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그때까지도 여자 화장실이 없던 터라 될 수 있으면 오줌을 참아야했습니다. 큰 길을 건너 산림조합의 화장실을 가려면 너무 귀찮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막상 떠나려니 이것도 추억이라고 숱한 부침 속에서 제일먼저 떠오르는 건 웬일일까요.
30명의 창립회원이 300명으로 늘었고 200만원이던 보증금이 방 셋을 독차지하고 천만 원으로 오를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주인장은 2012년, 제가 다시 대표를 한다니 반갑다며 자발적으로 회원에 가입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여성’을 주제로 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춘천에서는 오늘 날 여성시민단체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고 감히 자부해봅니다.
이사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건물은 헐렸지만 회원 모두의 기억으로 후평동 시대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새 주소 : 춘천시 요선동 4-6번지 YWCA 1층 (☎ 033-255-5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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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님. 정말 감동이시네요. 그나저나 생각해보니 지난주 저희가 갔던 곳이 이사한 곳인데, 새집인데, 빈 손으로 갔군요.(혹시 뒤따마 했으요?샘?흐흐..해두 되요..)...앞으로 춘천민우회의 전성기가 또한번 도래할 곳이니 그 공간에 잘 하시길. 진짜루!
작삼 엠티에서 남궁쌤 이야기를 듣던 순간이 생각나요. 그 사무실에 깃들어 있는 오랜 기억들을 애정 듬뿍 담아 말하시던 모습이요. 한번 방문했을 뿐인 저도 그 공간이 사라지는 게 아쉽게 느껴지는데, 갑작스런 이사에다 건물도 헐리고, 만감이 교차하셨겠네요ㅜ 그래도 이렇게 이사하는 데에 좋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확 모이는 걸 보니 앞으로의 요선동 시대(?)도 힘차게 흘러가리라 생각됩니다. 화이팅이에요!
그리고 이 글 참 따뜻하고 좋으네요ㅎ
오옷! 춘천 이사했군요. 올해 작삼 엠티 가면서 후평동 시대를 볼 수 있었네요. 막상 떠나려니 온갖 시간 흘렀겠어요. 춘천민우회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함다 ^^